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자살 보조업자'이다. 그는 고객이 될 만한 의뢰인을 검색한다. 도서관에서, 미술 전시회에서, 극장에서, 길거리에서 그는 의뢰인에게 접근하여 계약을 맺는다. 의뢰인이 하는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의뢰인에게 맞는 자살 방법을 가르쳐주고 그것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친절하게, 따뜻하게.. 그래서 의뢰인은 자신이 원한 대로의 죽음을 맞이하고, 그는 그것을 한 권의 소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주인공이 자살 보조 일을 하는 이유는?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은 '나'는 압축할 줄 모르는 자들을 뻔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너저분한 인생을 하릴없이 연장해 가는 자들도 그러하다. 압축의 미학을 모르는 자들은 삶의 비의를 결코 알지 못하고 죽는다.--10쪽--

이 부분이, 이 소설의 맹점이자, 매력이라고 생각된다.

맹점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정말로 너저분한 인생을 압축의 미학(죽음)으로 승화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와 같은 주인공들에게서 죽음의 미학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게다가 등장 인물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인생의 비의 품은 듯 비련 어린 면모를 보여 주고 있지 못한데 말이다. 너무 억지스럽다.

그렇다면 이것이 이 소설의 이러한 설정이 매력이 되는 이유는?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자살 보조업'이라는 설정 자체가 세상 속에서 상식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다고 믿는 통념상 '살인'의 의미,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는 '자살'의 의미의 그 경계를 교란시키기 때문이다. 즉 이 작가의 이런 방식은 기존 작가들의 죽음에 대한 접근과는 달리 새로운 방식인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려 했던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말하던 맨 처음 얘기로 되돌아가 본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고 조금은 냉정을 찾게 되었다. 아무런 교훈도 훈계조의 따끔한 충고도 찾아 볼 수 없는 이 소설 속에서 '냉정함'이라는 요소를 꼬집어 내어 내 것으로 취하다니. 모순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느끼고 있는 무기력증, 집착증은 '멈춰져 있는 기억' 속에서의 허우적거림이 아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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