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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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을 잡고 읽기 시작하면 어떤 책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완독하기까지 1~2주가 흘러가고, 끝까지 읽지 못하는 책도 허다하지만, 삼분의 이가 넘어갔으면, 읽은 걸로 친다.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5월 연휴의 어느날 정오에 잡아서 2시에 덮었다. 보통 흡입력이 좋은 작품이 아니라서이기도 했을 것이고, 중편이어서 그랬던 것도 있을 것이다. 중편 분량에 하드커버라니, 고급스럽기도 하고, 이렇게 할 것까지야, 싶기도 했다.

장 도르메송의 서문을 보면 이 책은 전혀 무게감이 다른 두 이야기 즉 청소년기의 우정과 나치즘의 발흥에 대한 이야기를 똑같은 감정을 실어 결합하여 매혹적인 필치로 다루었으므로 기적에 가까운 위업을 달성했다고 했는데, 음 왜 아니겠냐마는 ㅎㅎ

이 리뷰는 세치의 혀에서 나오는 짧은 단상이기는 해도 온전히 나의 생각으로 말을 해도 되는 자리이니, 두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태생이 귀티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주인공 한스의 친구 호엔펠스(아 이름도 어려워.. 독일인은 다이럼?)의 곁에는 남다른 공기가 흘렀다. 아니 무엇보다도 한스는 그렇게 느낀 듯하다.

둘째 유대인과 나치라는 역사적 맥락에서도 읽히지만, 우정이라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한다. 비단 청소년기의 우정만이 아니다. 한스에게 호엔펠스는 처음 열여섯살 그의 삶 속으로 들어와서 세월이 많이 흘러도 떠나가지 않았다. 큰 행복과 큰 절망의 원천이었다. 친구란 어떤 존재인가 마흔이 지난 이 시점에서 더듬어보니,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이다. 시간과 관심으로 공을 들여야 할 대상이다. 저절로 내 속마음을 알아준다는 지음이라는 성어가 있기도 하지만, 저절로 시간을 들이고 있고, 관심을 갖게 되는 그리하여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들의 우정을 이어간 시기는 그 강렬함에 비하자면 짧다. 어른들에 의해 끝이 난 우정이지만, 끝이 난 것이 아닌 것. 한스와 호엔펠스가 아니어도 우리는(일반화할 게 아닌가? 다시 말하면 나는?) 갖고 있다. 예민한 청소년기에 강렬한 우정~ 그러나 지속되지 않았던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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