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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자서전 - 상
버트런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 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어려운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마치 거센 바람과도 같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나는 사랑을 찾아 헤매었다. 그 첫째 이유는 사랑이 희열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얼마나 대단한지 그 기쁨의 몇 시간을 위해서라면 남은 생을 모두 바쳐도 좋으리라 종종 생각한다. 둘째 이유는 사랑이 외로움 ― 이 세상 언저리에서, 저 깊고 깊은 차가운 무생명의 심연을 들여다보며 몸서리치게 하는 그 지독한 외로움 ― 을 덜어 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성인들과 시인들이 그려 온 천국의 모습이 사랑의 결합 속에 있음을, 그것도 신비롭게 축소된 형태로 존재함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추구한 것이며, 비록 인간의 삶에서 찾기엔 너무 훌륭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나는 결국 그것을 찾아냈다.
내가 똑같은 열정으로 추구한 또 하나는 지식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보고 싶었다. 하늘의 별이 왜 반짝이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삼라만상의 유전(流轉) 너머에서 수(數)들이 힘을 발휘한다고 설파한 피타고라스를 이해해 보고자 했다. 그리하여 나는 많지는 않으나 약간의 지식을 얻게 되었다.
사랑과 지식은 나름의 범위에서 나를 천국으로 가는 길로 이끌어 주었다. 그러나 늘 연민이 날 지상으로 되돌아오게 했다. 고통스러운 절규의 메아리들이 내 가슴을 울렸다. 굶주리는 아이들, 압제자(壓制者)에게 핍박받는 희생자들, 자식들에게 미운 짐이 되어 버린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 외로움과 궁핍과 고통 가득한 이 세계 전체가 인간의 삶이 지향해야 할 바를 비웃고 있다. 고통이 덜어지기를 갈망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나 역시 고통받고 있다.
이것이 내 삶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다시 살아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