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서주의자의 책 - 책을 탐하는 한 교양인의 문.사.철 기록
표정훈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10월
품절


지금 혼자인 사람은 오랫동안 그렇게 혼자일 것이며, 깨어나 책을 읽거나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날릴 때면 가로수 사이를 이리저리 불안하게 거닐 것입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가을날>


-51쪽


물론 좋은 부모라는 게 반드시 아이 마음에 쏙 드는 부모는 아닐 터이니, 나름대로 설정한 최선의 부모를 머리 속으로 그리며 일관성을 지켜 나가는 수밖에 없다. 아버지는 자신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기준으로 자식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어머니는 있는 그대로의 자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둘 사이에서 중용을 지키는 것이 중요할 듯....


-75쪽

책과 마주치는 기쁨은 사람과 마주칠 때의 기쁨과 똑같다. 독서의 기쁨은 해후의 기쁨이다. 그런데 모든 역사적 사건이 단순한 우연이 아닌 것 같이 독서에서의 해후도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해후란 말은 한편으로 어느 필연성을 뜻해야 한다. 완전히 우연하게 마주친 것 같지만 그것이 역시 필연이었다고 끄덕일 수 있는 것이 해후이기도 하다. 그것은 단순히 외적인 필연성이 아니라 오히려 내적인 필연성이다.
이리하여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해후했고, 괴테와 실러도 해후했다. 독서에서도 똑같이, 혹은 스승으로서의 혹은 친구로서의 책과 해후하게 된다. 일생 이런 해후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책을 읽어도 결국 아무것도 안 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런 해후를 경험할 수 있을까? 스스로 구해야 한다. 구하는 것이 없는 자는 마주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가령 마주친다 해도 그것임을 모르고 지나칠 것이다. (미키 기요시 <독서론>)
-121쪽

사람이 의자에 앉는다는 것은 안락과 능률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그가 의자에 앉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런 때 의자는 형이상학적인 존재가 된다. 모든 형이상학이 다 그러한 것처럼 의자의 형이상학적 의미도 처음부터 분명하거나 명백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자에 대한 각종의 음모와 와 유혈이 인간의 역사와 함께 이어져 내려오는 것일까. 의자란 자리를 의미하며, 자리란 자기가 있어야 할 위치와 장소를 의미한다.
이것이 의자가 상징해 주는 사회적 지위와 직능적 성질의 구체적 의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있어야 할 장소에 있지 않으면 자기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자기의 의자를 갖는다는 것은 자기의 존재를 갖는다는 뜻이 된다. (조연현 <의자의 사상>)-179쪽



개념 공부는 개념들의 뿌리의 갈래에 관한 지도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자, 그 지도를 길잡이 삼아 그물을 던져 새로운 개념을 포획하는 일이며, 이는 바꾸어 말하면 곧 독서가 된다.

-225쪽

과거의 자유 사회가 보여 준 중요한 미덕은 지적 생활의 다양한 형태를 가능하게 해주었다는 데 있다. 열정에 사로잡힌 반항적인 인물들이 있었는가 하면, 기품과 화려함을 뽐낸 인물도 있었고, 꼬장꼬장하고 엄격한 인물도 있었으며, 무척이나 영리하면서 복잡한 인물, 근면하면서 현명한 인물, 다만 묵묵히 바라보면 인내하는 인물도 있었다. (미국인의 반지성주의)

-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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