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 힘이 되는 생각들
엄기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29쪽
분열적인 삶이란 무엇인가. 전교조 교사가 자기 아이에게 사교육을 시키고, 공교육이 싫어서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낸 학부모가 방학이면 아이를 불러 선행학습과 과외를 시킨다. 직장을 때려치우고 나와 카페를 차리고 공동체 운동을 하는 후배는 주식 투자로 생계를 이어간다. 양심적으로 살아가며 많은 시민 단체를 후원하는 친구는 들어가 살 만하면 투자 가치가 있는 아파트를 보러 다닌다. 살기 위해서는 삶이 분열되어야 한다. 이 분열의 빈틈에 적당한 합리화와 죄의식이 뒤죽박죽 엉킨 채 우리는 살아간다.

80쪽
<< 품위 있는 사회>>에서 마갈릿은 버나드 쇼의 "구시대의 처벌 방식보다 현대의 처벌 방식이 더 모욕적"이라는 말을 인용하여 모욕의 특징을 설명했다. 구시대의 처벌은 피해자의 고통을 숨기기보다는 공개함으로써 한편으로는 구경거리로 삼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통에 대한 다른 사람의 연민이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처벌은 범죄자를 대중으로부터 숨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감옥을 경험하지 않는 한 고통받는 이들의 고통ㅇ ㅔ절대 공감할 수가 없게 된다.

159쪽
1999년 미국의 초국적 농업 자본인 몬산토는 자신들의 유전자 조작 유채 종자를 무단으로 이용했다며 캐나다의 농부 퍼시 슈마이저를 고발했다. 사실 슈마이저는 자기 밭에 몬산토의 유채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이웃 농부가 몬산토의 종자를 밭에 뿌렸고, 그 씨가 바람에 날려 길가와 슈마이저의 밭에 날아들어 번져나갔을 뿐이다. 사실 진짜 피해자는 슈마이저였다. 평생을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어 온 자신의 밭이 졸지에 유전자 조작 유채밭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몬산토가 슈마이저에게 15만 달러에 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 맞서려고 슈마이저는 은퇴 자금으로 모아두었던 돈 전부를 변호사 비용으로 대야 했다. 하지만 몬산토는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미국과 캐나다에서 수십 명의 변호사를 고용했다. 결과는 뻔했다. 슈마이저는 패소했다. 법원은 몬산토의 손을 들어주었다.

239~240쪽
"선생님꼐서 하시는 이야기는 다 알겠는데요. 근데 대안이 뭡니까? (...)
이런 경험을 오래전부터 하면서 도리어 나는 '무엇이 대안이냐'는 질문 자체를 의심해왔다. 저 말은 정말 대안을 찾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지금 자신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합리화하는 말인지에 대해 의심을 거둘 수가 없었다. 게다가 대안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상당히 공격적이기도 하지만 대단히 수동적인 말이다. 대안이 자기 손에 구체적으로 주어질 경우에만 자신은 움직이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대안이 무엇이냐고 묻는 말에는 자기가 나서서 대안을 생산하고 실천해보겠다는 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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