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원할 자유 - 현대의학에 빼앗긴 죽을 권리를 찾아서
케이티 버틀러 지음, 전미영 옮김 / 명랑한지성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8쪽
저자는 자연사를 막는 과잉치료의 원인으로 치료에 따르는 경제적 보상을 많이 받으려는 의사들을 꼽고 있다. 우리나라도 여기서 일정 부분은 자유롭지 않겠으나, 저자가 한 가지 잘 모르고 있는 점은 의사들이 죽음을 의료의 패배로 여긴다는 점이다. 의사들은 환자가 사망하면 자신이 해온 치료가 실패하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끝까지 치료에 집착하려는 경향이 있다.

10쪽
스콧 니어링은 100살이 다가오자, 마지막이 오면 자연스러운 죽음의 과정을 겪고 싶다면서 스스로 음식과 물을 끊길 원했을 뿐만 아니라, 죽음의 과정을 예민하게 느끼고 싶기 때문에 진정제나 진통제, 마취제 같은 약물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죽음은 광대한 경험의 영역이다. 나는 힘이 닿는 한 열심히 충만하게 살아왔으므로 기쁘고 희망에 차서 간다. 죽음은 옮겨감이나 깨어남이다. 모든 삶의 다른 국면에서처럼 어느 경우든 환영해야 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90~91
심장의 천연 심박조율기인 '동방결절'이라는 원뿔 모양의 신경섬유다발은 정상적인 노화 과정을 겪으며 전기 신호를 보내는힘을 상당 부분 상실한다. 심장의 우심실 윗부분 꼭대기 근처에 위치한 동방결절은 연필 끝에 달린 지우개 크기인데,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밤낮으로 극소량의 전기 신호를 일으켰다 멈추고 다시 일으킨다. 이 신호가 심장 근육 및 신경 섬유를 타고 심실들로 전달되면 양쪽에 나란히 있는 아래쪽 심실ㄹ 두 곳이 동맥으로 혈액을 쏟아 내 사지 및 주요 장기들로 보낸다. 인간이 일흔다섯살이 되면 노화 및 세포 사멸로 인해 동방결절 세포의 90퍼센트가 없어진다. 심장의 다른 부위에 있는 전기전도 관련 신경세포들 역시 위축된다.

119쪽
새로운 기계장치들은 몸의 의미에 변화를 초래했다. 몸은 이제 영혼이 거하는 사원이 아니라 여분의 부품처럼 제거, 변경, 대체 가능한 장기들이 모인 곳으로 변했다. 지혜, 사랑, 용기가 자리한 신비한 기관이자 단단해지고, 깨지고, 부드러워지고, 두드리고 열 수 있는 마음이었던 심장은 단순한 펌프로 전락했다. 폐는 풀무, 신장은 체가 되었다. 전에는 죽음의 무대에서 임종을 앞둔 사람이 주연이었지만 이제 영웅은 의사로 바뀌었다.

187~188쪽
노화는 유전자, 습관, 환경에 의해 7천 가지 이상의 개별적 신체 퇴행 과정이 별개로 진행된 결과가 축적되어 나타난다. 혈류 속의 감시세포들이 잡아먹는 침입 미생물 수가 감소해 독감, 기관지염, 요로감염, 폐렴 등에 갈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심지어 체온을 유지하는 능력마저 떨어진다. 낙관적이며 과학을 숭배하는 우리 문화는 노화를 치료하려 든다. 노화를 의학이 예방하거나 고칠 수 있는 낱낱의 질병으로 쪼개고, 그런 특정 질병들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설사 악마와 계약을 맺더라도 우리는 자연을 이길 수 없다. 죽음을 미룰 수 있을지는 몰라도 노화를 치료할 수는 없다.

261쪽
병원 이외의 곳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은 사람의 8퍼센트만이 살아서 병원을 나가며, 대다수는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뇌손상을 입은 채로 요양원으로 옮겨진다. 아버지 연령대에서는 병원 밖에서 심폐소생술 처치를 받은 사람들 중 단 3퍼센트만이 독립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만큼 회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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