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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닮은 사람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89
로알드 달 지음, 윤종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평점 :
찰리와 초콜릿 공장만을 생각하고 읽은 로얼드 달의 단편집 <당신을 닮은 사람>은 좀 의외다. <찰리~>에서 대가족주의를 지향하면서 손자들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느껴졌다면, 이 단편집에서는 좀더 사특한 인간의 심리에 치중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동화틱이냐, 추리물틱하냐를 놓고 ‘좋고, 나쁘고’를 가리기는 힘들 것이고......
찰리와 초콜렛 공장을 디비디로 빌려다 보고, 디비디 속에서 작가에 대한 자료를 통해 그를 처음 보았다. 재기와 상상력으로 충만한 꺽다리 소년의 할아버지 모습이라고나 할까.
<남쪽에서 온 사나이>는 도박에 빨려 드는 인간의 심리, 마음 속에 깃든 인간의 공포를 여실히 보여 준다. 뭐, 그닥 심각하지 않게 말이다. 그의 도박 행위는 전형적인 도박 중독자의 일면을 갖고 있었다. 도박 중독자들은 억제할 수 없는 도박 충동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 '비결'이나 '전략'을 믿는 특징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단순히 '정신을 바짝 차리고 흥분하지 않음으로써' 내기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근데 이 이야기가 심상치 않은 것은, 캐딜락과 새끼 손가락 잘리는 내기라는 데 있다.
로얼드 달의 이 작품집에서는 크게 두 가지를 느낄 수 있다. 도박에 쏟는 인간의 열정, 그리고 인간의 무서운 상상력. 실제로는 아무 현상도 일어나지 않는 곳에서 그 상상력으로 인해 무서운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바로 그것이다.
<사랑스러운 아내 나의 비둘기여.>에서는 남의 대화를 엿듣는 하찮은 작은 악마와도 같은 장난을 하다가 허를 찔리는 내용.
<잘 나가는 폭슬리>는 나의 어린 시절 작은 일화를 떠올리게 해 주었다. 난 초등학생 시절 눈에 띄지 않고, 풀 죽어 있는 아이의 전형이었다. 그런데 4학년 때 나의 짝은 키는 나보다 조금 크지만 덩치는 내 1.5배인데다가, ‘나’를 자기 밥으로 알며 괴롭힘을 일삼는 그런 보신탕집 딸래미였다. 나는 그 친구에게 항상 얼먹었었는데 그 친구에게 교내 육상 선수 오빠가 셋 있다는 것도 그 이유들 중에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그 친구는 가뜩이나 행복하지 못했던 내 어린 시절에 잿빛 추억을 더해 주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아이의 그늘에서 벗어난지 20여년이 지났지만, 난 가끔 그 아이와 마주치는 생각을 한다. 거기에 보태 가끔 심술궂은 상상도 한다.
<고별> 같은 것도 재밌는 단편이지만 여자에게는 좀 가차없는 작품이었다. 여자를 묘사하는 경우에는 늘 남자 측에 서서 잔혹하게 쓰는 작가인 듯 하다.
<위대한 자동 문장 제조기> 글 쓰는 사람의 노고를 알게 해 주는 글이다. 대박나는 작품에 대한 집착이 지나치면 저런 신경증과 광기를 보일 수 있다는 암시랄까.
보통 소설집의 제목을 달 때는 작품 가운데 하나의 제목을 따다가 표제로 달기 마련인데, 이 책은 모든 작품들을 아우르는 제목을 갖다 부친 거 같다. 당신을 닮은 사람이라니. 내가 저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