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을 위시한 아시아의 대중문화계에는 한류 바람이 불고 있다지만, 오히려 한국의 문학계에는 일본류의 바람이 세력을 얻은 것 같다.

(아싸) 가오리의 전작 "냉정과 열정 사이"를 사 읽고, '그야말로 상품이군!'라며, 또 본전 생각 운운하면서 그의 다른 책 낙하하는 저녁(가오리의 책 중 그래도 나에게 가장 괜찮지 않았을까.)을 또 사 읽었다. 뿐만 아니라 책보다는 다른 콘텐츠를 향유하는 일을 더 즐기는 비독서취향인 여성에게 책을 선물할 일이 있을 때도 가오리 것을 고르는데 별 주저함을 느끼지 않기도 한다.


도쿄 타워는 별점을 주기에 인색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똑똑하고 아름다우며 게다가 돈까지 많은 중년의 기혼녀 시후미와 스무 살이 청년의 사랑이야기에 공감도 못하고, 이 책 광고문구처럼 "특별하고 쓸쓸한 사랑이야기"라서 사람을 확 미치게 하는 요소라는 걸 도통 잡아낼 수가 없으며, 스무살 청년 토오루의 집에서 창 밖에서 바라보면 보이는 짙은 보랏빛 하늘 아래 이제 막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도쿄 타워의 이미지를 덧입혀서 연하남과 중년유한부인 사이의 사랑을 아름답게 채색하려 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카오리의 책이 나올 때마다 꼬박꼬박 사 줌으로써 일본류 바람에 본의아니게 동참하는 내 자신에 조금은 오호 통재라....하게 한 책이다.


시후미가 손목에 차고 있던 로렉스 시계 이야기는 왜 이렇게 많이 언급되나, 그리고 도심을 벗어나 훌쩍 떠날 수 있는 시후미 부부 소유의 가루이자와의 고즈넉한 별장도. 시후미가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회가 둘의 데이트 코스이기도 한데, 시후미는 음악에 흠뻑 빠지고 토오루는 음악에 몰입한 옆에 앉은 시후미에게 온전히 빠져 들곤 한단다. 시후미가 사 주는 저녁은 와인 몇 병과 치즈와 카나페, 훈제 연어, 과일(그녀는 레스토랑에서 밥을 사준다. 그녀는 직접 요리하는 것을 싫어하니까.)이 있고 게와 야채 등을 넣어 만든 딤섬이라든지, 오멀 새우즙으로 찐 앵미 리조또가 있는 식사를 하고, 블라블라(??) 이후 아무튼 이들의 데이트 코스는 시후미가 만엔과 함께 토오루를 택시안으로 밀어넣어 주는 것으로 마감된다.


토오루는 시후미에게 쏙 빠졌다. 빠짐의 증거는 도처에 수두룩한데, 대표적인 것은 시후미가 골라주고 언급하는 책들(시후미가 토오루 나이쯤에 읽었다는 그레이엄 그린의 <정사의 끝> 그밖의 기타 등등) 을 열심히 읽는 것, 시후미가 좋아하는 빌리 조엘이나 롤링스톤즈의 음악을 마저 좋아하는 것. 그런데 읽다보니, 토오루는 시후미라는 사람을 사랑했다기보다 시후미라는 중년의 국화꽃 같은 여성이 누리고 있는 재력과 취향을 아끼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그래서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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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 2006-02-26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오랜만이잖아요. ㅠ_ㅠ
잘지내신거여요?? 궁금궁금.

kleinsusun 2006-02-26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caru님 리뷰 정말 오랜만에 읽네요.^^
맞아요..... 사람 자체를 사랑한게 아니라 재력과 "취향"을 사랑한 것일 수 있어요.
실제로 주위에서 이런 애들 많이 봐요.
재력있고 관대한, 하지만 나이 디따 많은 남자를 한번 사귄 애들은
그들의 세련된 취향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또래 남자애들한테 적응을 하지 못하더라구요. ㅠㅠ

오랜만에 쓴 리뷰지만, 역시 예리해요.ㅎㅎ
icaru님, 언제나 홧팅!

히피드림~ 2006-02-27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반가워요 ㅠㅠ ㅠㅠ 이 야심한 밤에 서재브리핑에 뜬 거 보고 잽싸게(?) 왔다는... 근데 이 책 허명만 요란한가보군요. 하긴 배용준 좋아하는 일본아줌마들이 대리만족하기에 적당하지 않을까 싶은데요.-_-

이리스 2006-02-27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즐겁게 읽었어요. ^^ 재력과 취향이기는 하지만 그 자리에 하쿠미가 아닌 다른 사람을 넣어도 그렇게 되었을것 같지는 않아뵈요. 시후미가 지닌 모든 것에 빠져든것일테지요. 시후미가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꽤 맘에드는 설정이었습니다. 돈많고 외모 빼어난 여자가 요리까지 수준급이라고 하는 건 남자들의 기대치를 진뜩 높여 놓는 결과라서. 하하핫... 작가가 여자다 보니 어쩌면 그런 배려를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icaru 2006-02-28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비 님~ 저 잘 지낸답니다~ 시간이 안 가는 거 같으면서도 훌쩍...

수선 님.. 리뷰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지나치게 투덜댄 리뷰가 아닌가 하고 있었는디.. 헤...

펑크 님 잽싸게!! 역시 고마워요~

낡은구두 님 반갑습니다~ 이해인 시인의 시가 생각나는 닉네임이세요.... 정말 좋아하는 시 중에 하나였어요... 낡은구두... 그 시와 상관이 있으실까~
시후미가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마음에 드는 설정 이란 말에 동감여요.... 아닌가....... 돈많으니까 사먹으면 되는 팔자라 그렇겠지 뭐...하면서 퉁을 놓았던가.. 님도 영화 보셨어요? 영화 보고 나니까... 시후미 하면 책 속의 인물보다 영화 속에서 본 그 여자가 먼저 생각나는거 있죠... 성현아가 곱게 중년이 되면 나올 것 같은 얼굴상..

humpty 2006-03-03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독서취향, 그렇게도 사람을 분류할 수 있겠네요. ㅋㅋ
책에 대해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님서 그냥 오랜만의 리뷰가 반가워 댓글 하나 덧붙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말이 좋아요.^^

2006-03-06 2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6-03-09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리뷰가 갑자기 이렇게 쏟아질 수도 있군요! 와~ 가오리의 소설은 좀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곤 반짝반짝을 사두고 아직 못 읽었어요. 그냥 들면 바로 읽힐 것 같은데 그거 드는 데 시간이 좀 걸리네요. ^^ 요즘은 자꾸 우리 소설들 빈틈으로 일본소설이 치고 들어온다고 하도 걱정들을 해서인지 잘 안 읽게 돼요. 뭐가 문젤까, 좀 생각하고 있어요. 그다지 우리 소설이 어렵지도 않은데 주제나 소재가 좀 좁아들어 있는 것이 치명적일까 싶기도 하고.

픽팍 2006-04-03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소설 읽으면서도 참 감정이입이 안되어서 정말 힘들더라구요. 돈이 아까워서 결국 다 보기는 했지만, 역시 너무 작가만 믿어도 안되는 것 같아요, 반짝반짝 빛나는을 능가하는 재치를 에쿠니 에게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