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일도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인가 보다. 도통 기록을 하지 않은지 오래 되다 보니, 아무리 인풋량이 있어도 아웃풋 하는 일을 차일피일 하게 된다. 자판을 어떻게 눌러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당황스럽다. =.+)

6, 7월은 직장에서 바빴다. 한결같은 나의 서재이웃 책나무 님이 서재마을에 재입성했는데도, 서재에 들러볼 여유도, 아니 들러보기는 하는데, 내서재에 이웃서재에 글 한줄 달 수 있는 마음의 솜털같은게 꽁꽁 숨어들어간 상태였다. 8월이라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항상 마음의 갈등을 겪고는 하는,,, 두구두구 아이들 방학이 되었다.

 

마음의 갈등이라, 내가 써놓고도 고개를 갸웃한다.

겨울방학과 달리, 여름방학은 아이들이 신나게 놀기에 딱 좋은 계절인듯하다. 우리아이들은 산으로 들로 물가로 뛰어놀기도 하겠지만, 티비 만화 완전학습 프로젝트를 실하게 일굴 예감이 든다. 곶감 빼먹는 빼먹어서 남은 연차가 없는 와중의 휴가 나날을 다 모아 이 여름에 쓰고 싶은 마음. 이런 염원에 극대화되는 날은 일을 관둬버릴까, 까지 가는데,,, 애들 하루종일 만화 시청하는 게 싫어서라는 게 이유라면, 좀 이상하지??

 

지난주 휴가지에서 두 세권의 책을 돌려가며 읽었다.

 

미움받을 용기, 심리학이 어린 시절을 말하다, 육아 전쟁

 

 

 

 

 

 

 

 

 

 

 

 

 

 

 

흉보다가 닮는다, 라는 옛말이 있다. 나는 어릴적에 깐깐한 완벽주의 성향에다가 엄마와 사사건건 부딪치는 아버지와, 잔소리 많고 까다로운 남편에게 휘둘리는 듯 하지만 세상에 이보다 더 느긋할 수 없을 듯한 엄마를 보며 자라왔다. 두 분 성향의 간극만큼이나 충돌 또한 잦았는데, 지금껏 그렇게 아옹다옹 하시며 지내신다. +,,=) 나는 커서 자식에게 우리 부모님 같은 부모가 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아버지. 그 욱하시는 성미, 꼬아서 몰아부치는 잔소리, 세상에나. (나는 어른이 되어서, 아버지에게 왜 우리 자랄 때 엄마와 우리에게 그러셨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아버지 말씀이 그때는 먹고 사느라 아버지들은 다 그랬다고 하신다. 게다가 아버지는 어릴적 처자식을 부양하기보다 당신 술 자시고 노세노세 하는 아버지를 보고 자라면서, 당신의 아버지처럼 되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했다고 하셨다. 우리 아버지는 술을 한모금도 안 하신다. 평생을 그러셨다. 주당 사위를 둘 씩이나 두었는데...)

'공격자와의 동일시'라고 심리학에서는 말하던데, 자식을 낳아 키우던 어느 날 자각이 왔다. 아버지의 모습을 똑같이 재현하고 있는 여자 사람이 '나'네. 어린 시절에 겪었던 어른과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물론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나도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싶어서, 지금 이 나이 되도록 '심리학이 어린 시절을 말하다'와 같은 류의 책을 본다. 그리고 어떻게 하다가 미움 받을 용기도 주문해서 거의 동시에 읽고 있었는데, 미움 받을 용기, 쪽에서 해법을 본다. 미움 받을 용기는 오스트리아의 당대 명성을 장악했던 프로이드와는 대치되는 철학파의 거장, 아들러의 철학 해설서로 볼 수 있겠다. '트라우마'를 다루는 관점에서 그러하다. 세상이 프로이드 쪽에 온통 조명을 향하는 통에, 과소 평가된 학자?랄까?  ( 이건 뭐, 에디슨에 의해 시대 비운의 아이콘이 (?)된 테슬러도 아니고.. )

미움 받을 용기의 두 가지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언제까지 어린시절의 불행탓 할래?", " 공헌감이 곧 행복이다."

이 내용을 소크라테스와 제자들의 대화 형식을 빌려온 것처럼,  청년과 철학자의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꽤나 도전적인 청년이 질문을 하면, 그에 답을 주고, 청년이 다시 반박을 하면 또그에 답해 주는 형식.

저서가 아닌 제자들과의 대화로 철학을 나눈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플라톤이 저서로 엮었듯이, 아들러의 철학을 후대 아들러 심리학에 관한 일본 제일의 철학자(저자인 기시미 이치로)가 해석하였고, 그 철학자(기시미 이치로)의 해석에 '청년과 철학자의 대화'라는 형식으로 베스트셀러 라이팅 프리랜서(고가 후미타케)가 맛깔스럽게 엮어냈다.   

 

  여성과 정치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미국 저널리스트의 책이다.

 

"현재 가족을 부양해야 할 의무와 가족과 함께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욕망 사이에 끼어, 과중한 부담을 떠안고 사면초가에 몰린 사람들의 수가 어마어마하다(주로 여성들이지만 이 책에서 언급했듯이 남성들도 있다). 이 책을 쓰면서 보낸 지난 3년 동안 나는 이런 처지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보낼 여력이 없는 부모들, 자녀가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할까봐 형편없는 직장이라도 꾹 참고 다니는 부모들, 애초에 보험이 적용되는 직장을 구할 수 없었던 부모들, 또는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너무 열심히 일하다보니 가족들과 함께 보낼 시간조차 없는 부모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 책에서는 미국과 상반되는 나라들로, 자녀가 질병에 걸려 부모가 경제적으로 파산할 염려가 없는 나라, 아이를 가졌다고 해서 여성이 직장 생활을 그만둔다거나 경력에 방해가 된다거나 하지 않는 나라, 5세 이하의 어린이들에게도 양질의 교육을 받게 하는 나라, 여성들이 가족을 거의 보지 못하든가, 아니면 겨우겨우 살아가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없는 나라. 실제 공공정책을 통해 이를 구현하는 나라들을 언급한다. 미국은 여전히 이런 나라가 되기에는 한참 멀었다는 게 요지이다. 과연 우리나라는 어떤가? 더도덜도 말고, 이런 주제의 글을 냉철하게 조사하여 쓸 수 있는 저널리스트들이라도 많이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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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3 2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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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4 09: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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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4 09: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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