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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농담 - 개정판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월
평점 :
2005-02-11
이 책을 읽기 전, <그 남자네 집>을 단숨에 재미나게 읽어냈으니, 이 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도 그래질 것 같았다. 멀리 사는 친척, 애어른 할 것 없이 왁짜하게 모여 득시글한 시댁에서 음식 준비하고 설거지해대는 짬짬이, 부엌데기가 잠시 일손 놓을 때의 소일거리로 하는 십자수 놓듯, 그리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골랐다. 이 판국에 다비드 브르통의 <걷기 예찬>이나 베르나르의 <나는 걷는다2>를 읽는 것은 망쪼고 분명 산만한 읽기의 대마왕 사례를 보여 줄 것이기에.
이 책 꼬박 이틀 동안 명절의 전야와 이후 초절정의 시기에 읽었는데 역시 예상대로 느슨하고도 지릿함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지루해지지 않을 책을 고르기 위해였다지만, 정말이지 어른들이 모인 명절 즈음에 이 책을 읽은 건 좀 아이러니 같다. 왜냐 하면, 어른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오는 (주로 50~60대 아주머니 친척들이 나누는) ‘뉘집 이야기’ 그것 말이다. 뉘집 자식 돈 있는 집으로 시집 장가 갔으나, 있는 집에 간 탓에 시댁 눈치에 맘대로 외출도 못하고 매여 사는 이야기. 있는 집에 장가 든 탓에 처가 손에 쥐락펴락하는 청맹과니가 된 뉘집 아들이야기. 뉘집 땅 사둔 걸로 갑자가 돈벌었는데 하는 모양새가 무식한 졸부 못 벗어난다고 비꼬는 이야기, 어느메 집은 어떻게 땅을 사두었는데 요즘 한참 망해 먹어가고 있다는 이야기 .. 누구네 집 아들이 의사가 되었다고 그 집 어머니 떵떵거린다는, 어머니의 지위가 아들을 통해 나타난다는 의식의 반영된 듯한 튀틀린 이야기들 말이다. 돈에 관한 헤프닝들이다. 비뚤어진 가부장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이 책에도 나온다. 딸만 둘 나은 며느리에게 어머니는 은연중에 아들을 바라, 그 며느리는 남편 몰래 뱃속 아이를 낙태시키고 나이 마흔에 세 번째아이(사내 아이)를 임신한다.) 이 소설 속의 내용과 어른들의 이야기가 몽롱하게 섞여드니 당최 이야기가 책이야기같고, 그게 그것 같고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경이 되었다.
이 작품에서는 자본주의라는 제도 속에서 돈에 의해 굴절되고 변형된 인간의 사랑과 애정을 이야기한다. 사랑과 애정이라 했나, 초등학교 동창과 바람난 의사가 주인공이기도 하니, 세상사 이야기는 다 하는 셈. 어른들 모인 자리에서도 조강지처 집나가고 딴 여자와 바람난 누구 이야기가 곧잘 등장하듯이.
어른들의 이야기, 그 요점은 ‘돈이 제일이고, 세상을 호령한다’ 에만 있는 것이 아닐거다. 돈의 물신성이나 가부장적 이념이 사람의 죽고 사는 문제를 얼마나 무력하고 허망하게 만드는가 하는 좀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자본주의와 물신주의의 폐해 같은 것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이 책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그리고 부러 자본주의의 썩어빠질 노름을 이야기하기 위해 인물들을 선별했다고 보여 진다. 소시민의 모습을 보여 주는 이야기라고는 평생을 치킨 만드는 일로 직업을 삼아 어렵게 자신의 치킨 가게를 연 치킨 박의 죽음에 관한 것. 나머지 등장 인물들은 드라마 속 인물들처럼 돈으로 위세를 떠는 직업군과 자칭 재벌 집안의 인물들이다.
작가는 ‘뭘 자본주의 씩이나,’ 라고 말했다지. 후기를 보니 재미와 뼈대가 함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희망은 어느 정도 이룬 셈이다.
하지만 소설 속, 죽어가는 아들을 치료하는 데도 돈과 권력의 과시가 앞서는 속물성, 돈에는 돈으로 갚음을 하는 영빈의 형의 처세 등등. 작가의 너무나도 정곡을 찌르는 필력으로 그려낸 우리 생의 허위 의식은 글쎄,,,, 이것이 세태라면 어쩐지 너무너무 씁쓸해지는 것이다.
누구는 이러한 박완서의 글쓰기가 굳은 살 베어나가고 새살이 차오르는 느낌을 준다고 했는데, 새살 차오르는 느낌을 잘 챙기는 것은 독자가 알아서 잘 할 나름인지, 나에겐 담배잎을 타놓은 물을 마신 듯, 입안 그득 쓴 느낌이 먼저이다. 구두를 신은 채, 가려운 발등을 긁는 것 같은 답답함도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