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푸트니크의 연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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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9 20:23



 

 


스푸트니크 여인에서 넘실대는 농밀한 언어의 바다에 빠져서 술 취한 사람처럼, 뼈가 노골노골해지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그렇게 취하게 만들더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면, 뭐라 딱이 말로 답하긴 어렵다. 음.....굳이 이 소설 속의 맛깔나는 문장을 맛보기로 들자면, ‘사람은 누구나 어딘가 이상한 거야.-(앞으로 누군가 나에게 “너 보기와 달리 특이한 데가 있다” 라고 말한다면 나는 하루키의 이 문장으로 점잖게 대구해 줄 것이다’)라거나 ‘책장에 들어가지 못한 책들이 지적(知的) 난민처럼 바닥에 쌓여 있다.’ 같은 것.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아도 도수높은 알콜이 혈관으로 스미는 것과 같은 체험을 하게 된다. 아 나는 확실히 표현이 딸린다.

스미레는 소설 쓰는 일에 골몰해 있는 22살의 여자였다. 작중 ‘나’는 스미레를 좋아, 아니 사랑했지만, 스미레는 ‘나’를 좋아했는지 몰라도 사랑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성욕을 몰랐다. 그러던 그녀가 자기보다 17세 연상의 여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이들은 첫 만남에서 음악 이야기를 하며 마음의 교감을 이루었다. 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스미레의 동성애 성향이 아니다.
스미레의 꿈, 그러니까 스미레가 결국 만족할 만한 소설을 완성을 할 수 있게 되었는가...   스미레는 글을 쓰고 또 썼지만...아직 미진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녀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경험과 시간이었다. 그녀가 쓴 문장에는 독특한 신선미가 있고,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뭔가 중요한 사실을 정직하게 표현하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적어도 그녀는 누군가의 모조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손끝만으로 잔재주를 부려 완성시키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진정한 소설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연결해 줄 수 있는 주술적인 세계가 필요하다. 그녀는 17세 연상의 여인과 나누는 즐거운 시간들과 상처가 된 경험들 이 모두는 사실 주술적인 힘을 얻기 위한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단 소설이 아니다. 진정한 ‘나’를 찾는 것에도 이모든 아픈 경험과 시련의 시간들이 필요한 것이다.

이 소설은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처럼 이 쪽 세상과 저 쪽 세상을 사이에 둔 ‘나’에 관한 이야기이다. 현재는 이쪽 세상에 살고 있지만, 본래는 저 쪽 세상의 출신인 것 같은 우리 자신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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