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하면서 쓰고, 쓰면서 여행하는 벅찬 즐거움 하루키의 여행법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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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움베르트 에코의 <전날의 섬>을 집어 들어 읽다가, 에코가, 중세 이후의 프랑스 왕정에 대해 그야말로 해박한 썰을 푸는 부분에서 나의 짧은 지식이 글줄을 따라가질 못하여, 그만 앞부분에서 그대로 책을 덮었다. 나의 세계사적인 지식이 어느 순간 안개 걷히듯 환해지는 날이 오면 그때나 읽어 볼까 하고, (그런 날 안 올거다...아마..)

그리고는 언제나 그렇듯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찾았다. <하루키의 여행법>이 눈에 콕 박힌다. 이 책의 표지는 노몬한 전쟁의 전장터였던 어느 몽고의 내륙에서 찍은 사진이라는데, 녹슨 탱크 위에 서서 찍은 것이 아주 가관이다. 양손을 허리에 놓고, 엉거주춤하게 잡은 포즈에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그 얼굴의 절반을 차지하는 듯 뵈는 썬글라스하며, 약간 심술스럽게 쳐진 볼의 사진 속 하루키는, <아기공룡 둘리>의 고길동을 연상시킨다. 여기에 나오는 기타 등등의 사진들은 이 모든 여행(고베 도보 여행제외)을 하루키와 함께한 사진사 마스무라 에이조가 찍었다는데, 이 사람은 하루키의 편안한 여행 동반자처럼 보인다. 복받았네 하루키)

이 책은 차례부터가 참 두서없다. 뉴욕의 이스트햄프턴으로의 여행이 처음 장에 나오다가 그게 끝나고, 일본의 어느 무인도 체류기 다음은 멕시코 여행기가 나왔다가 또 느닷없이 일본의 우동 맛 기행을 했다가 다음 편에 몽고 여행, 그 다음에 또 아메리카 대륙 횡단 등이다. 여정 순서가 아니라, 잡지에 기고한 연대 순서에 따른 차례라서 이런가 하고 살펴봤더니 그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편이 엮인 것이 특별히 읽는 데 지장을 주진 않는 것 같다. 워낙 전체적으로 널널하고 편안하게 투덜 댄 그야말로 에세이(잡글)이라 그런가보다.

그 일곱 편의 여행기 중에서도, 아메리카 대륙 횡단기가 제일 싱거웠고(읽는 사람은 싱거운 재미로 읽었지만, 글을 쓰는 하루키는 퍽이나 지루하기 짝이 없어 하고 있었다.), 맛있는 우동집을 찾아 다닌 기행들과 고베까지의 도보 여행 기록이 읽는 맛이 있었다.

왜 재밌다고 생각됐을까? 먼저 우동집 순례는 그 내용을 보조하는, 코믹하고 자세한 삽화가 곁들여져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던 거 같고, 고베 여행은 그야말로 자신의 유년의 기억을 찾아 떠난 도보 여행이라, 마치 맑은 우물에 자신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담담한 필치의 문장이기에 그랬던 것 같다.

하루키는 물건들을 수시로 도난당하고, 연거푸 식중독에 걸려 혼쭐이났던 멕시코 여행을 기록하면서 '여행의 본질'이라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행 중의 물건 분실과 구토와 설사 등 인간을 피곤하게 하는 온갖 것들을 자연스럽고 묵묵히 받아들여 가는 단계가 바로 여행의 본질'이라고. 그런데 이 말은 너무 극단적이다. 왜냐 하면 이런 종류의 피곤은 구태여 멕시코까지 오지 않더라도 어디서든 얻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멕시코까지 왔던가. 그 물음에 하루키는 또 다음과 같은 명쾌한 답을 내린다. '왜냐 하면 그런 피곤은 멕시코에서 밖에 얻어낼 수 없는 종류의 피곤이기 때문에'라고

생각해 보면 여행은 환상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환상을 좇아 어딘가로 가서 그 환상을 손에 넣는다. 그들은 그 환상을 좇기 위해 적잖은 돈을 쓰기도 하고 시간을 들이기도 한다. 환상을 좇아 다니는 그 사람들. 잘못 되었나? 아니지. 사람들에겐 물거품 같은 그 환상을 누릴 권리가 있다. 있고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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