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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여인 ㅣ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윌리엄 아이리시 지음, 이은선 옮김 / 엘릭시르 / 2012년 7월
평점 :
추리소설은 현실을 도피하고 싶을 때 읽으면, 마침맞다. 도피하고자 할 만큼 권태롭고 싫은 상황에 처해 있지 않음에도,, 잘 읽히는 것은 작품이 워낙 출중했기 때문일까?
윌리엄 아이리시라는 필명을 사용해 작품을 발표했다는 이 사람. 코널 조지 호플리 울리치. 라는 작가에 대한 호기심을 거둘 수가 없다. 1903년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님이 어렸을 때 별거하였고,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와 함께 멕시코에서, 나머지 생의 대부분은 뉴욕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호텔들을 떠돌며 살았다고 한다. 삼개월인가 결혼생활을 했지만,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동성애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당뇨 합병증으로 인한 괴사로 한쪽 다리를 잃고 휠체생활. 6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을 때는 그의 시체 겨우 사십 킬로그램밖에 안 되었다고.
그의 소설들이 고독하면서도 달콤쌉쌀한 페이소스를 주는 것도, 평생 그가 산 삶과 무관하지 않은 느낌이다.
도입부에서는 지난해 말에 봤던 영화 <나를 찾아줘>가 자꾸 오버랩되었다. 아내를 살해하지 않았는데, 협의 추궁받는 설정이 그렇다. 굳이 공통점을 또 찾아보자면, 아내가 양처良妻는 아니라는 점?
"맞아. 할 말이 없겠지. 하지만 나는 주어진 증거에 따라 내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야. 만약 내일 똑같은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나의 수사 방식은 변함이 없을 걸세. 내 개인적인 느낌은 배제해야 하니까. 구체적인 사실들을 놓고 판단하는 게 내 임무니까."
주인공을 기소한 형사가 주인공에게 하는 말이다. 주인공 핸더슨이 자기 방어랍시고 '여자', '모자' '희한하다' 세 단어만 이야기하면서 설득력없고 허술한 알리바이를 댄다. 주어진 증거에 따르자면, 핸더슨이 용의자인데, 형사 버지스의 직감은 핸더슨은 진실을 말하고 있다, 라는 것.
사실, 날조된 알리바이는 아주 교묘하며 매끄럽고 세세한 부분까지 그럴듯하기 마련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직관력을 억누르고 주어진 사실들로만 판단해야 하는 종류의 것이라면, 이또한 괴로운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수제 구두를 신고 있었지만, 굽이며 광택을 보면 낡은 티가 났다. 드레스도 싸구려 옷가게에는 찾아볼 수 없는 맵시를 뽐냈지만, 너무 자주 입은 티가 났다. 이 모든 것이 가장 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눈빛이었다. 일정한 직업 없이 임시방편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 특유의 비정상적인 긴장감으로 번뜩였던 것이다. 어디에서 어떤 식으로 찾아올지 모르는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는 눈빛이었다.
그의 다른 작품을 더 읽어보면 알 일이긴 하지만, 이것이 작가의 여성관이 아닐까 싶다. 이와 유사한 여성들이 필시 많이 등장할 것이다. 아니면, 그의 어머니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나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