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상스러움 - 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
진중권 지음 / 푸른숲 / 2002년 4월
절판


집단과 하나가 되는 한에서만 개체는 안전하다. 그리하여 부조리한 실존들은 괴상한 집단주의 속에서만 구원을 찾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필사적으로 자기를 집단과 동일시하려 한다. (...) 집단과 동일시에 실패하는 자는 공동체의 성스러움을 지키기 위한 희생양이 된다. 그러다가 희생자가 사라지면? 문제없다. 개별자들은 집단 속에서 기어이 또 하나의 '모난' 놈을 찾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또 하나의 희생양이 선택되면, 적어도 그가 존재하는 동안은 개별자들은 다시 안심하고 살아간다.

-p.21쪽

보수적인 사람일수록 사형에 찬성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사형제도 존속론의 바탕에 권력 의지가 깔려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자기들이 가진 권력의 행사 범위를 타인의 생명에까지 연장시키고 싶어한다.-p.152~153쪽

주관적 호오의 감정에 기초한 이 미학적 논변에 대해서는 이렇게 반박할 수 있을 게다. (1) 먼저 그 "감정"의 근거가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감정에도 원인이 있는 법. 그렇다면 동성애자에 대한 이 혐오감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자기가 그것으로부터 자유롭다고 강변하는 바, '동성애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2) 자기 맘 속에 동성애에 대한 혐오감을 품는 것은 자유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을 공적으로 표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것을 표출하는 순간 동성애에 대한 차별을 이미 실행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3) 동성애에 대한 감정이 일종의 취향 판단이라고 한다면, 자기와 다른 취향에 대해서 톨레랑스(관용)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동성애자는 이성애자를 혐오하지 않는데, 왜 이성애자는 동성애자를 혐오하는가?-p.169쪽

패거리에는 개인의 '주체성'도, 집단의 '사회성'도 없다. 패거리의 권력 구조는 패거리의 정체성을 위해 개인의 선택을 무시한다. 그 안에서 지켜야 할 개인 윤리는 아부와 맹종이다. 동시에 패거리의 목적은 사회성을 배반한다. 패거리라는 이익 집단은 공적 영역에서 부당 이득을 취하며 부당 권력을 행사한다.

(...)

우리 사회에서도 패거리를 짓고 다니는 인간늑대들이 외치는 애국적 목소리 역시 시끄럽기 그지없다. 우연히 국적이 같은 골프 선수의 우승을 제 일처럼 기뻐하고, 우연히 국적이 같은 야구 선수가 던지는 공 하나에 전국이 떠들썩하다. 주체성이 없는 사람들은 이렇게 집단과의 동일시 속에서만 자아실현을 하는 법이다. 한편으로는 극단적인 이기주의, 다른 한편으로는 크고 작은 집단주의. 이 둘의 기괴한 결합이 평균적 한국인의 '정체성'이다.-p.249쪽

흔히 '자유=민주'라 생각하나 실은 양자는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다. '자유'는 본질적으로 불평등을 함축한다. 예를 들어 시장에서 경쟁의 자유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낳게 된다. 그리하여 평등 없는 순수한 자유란 현실 속에선 결국 "다리 밑에서 잠잘 자유"를 의미하게 된다. 나아가 평등 없는 자유가 보수주의와 결합하여 정치적 자유마저 포기할 때 나치즘과 같은 또 하나의 '멋진 신세계'가 펼쳐진다. 한편, '민주'는 본질적으로 평등의 이념이다. 경제적 평등의 요구가 나아가 자유를 억누르며 관철될 때 공산주의라는 극단이 성립한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라고 자유와 민주를 붙여서 말할 때, 이는 위에서 말한 극단을 피하기 위함이라라. 자유와 민주는 서로 보완해야 한다.
-p.97쪽

그러잖아도 대한양계장 수탉들. 남의 사생활 무시하기를 밥먹듯 한다. 가령 O양 비디오, B양 비디오. 남의 사생활 들여다보지 못해 환장한 집단 관음증 환자들 같다. 동료 인간의 인권이 침해되는 걸 보면 적극적으로 뜯어말려야지. 그 정도의 사회적 연대의식은 있어야지. 비열하게 실실 웃으며 침이나 잴잴 흘리고. 그러면서 삐딱하게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말해. 너도 보고 싶지?" 그래, 보고 싶다. 안 보고 싶다고 하면 너희들이 믿어주겠니? 그런데 너는 은행에서 본 돈을 훔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정말 훔치니? 이런 전근대적 관음증 환자들이 넘치는 사회에서 애꿎은 "사생활"을 공격하는 게 과연 얼마나 진보적인 짓일까? 주책 없이 공권력이 남의 사적 영역에까지 수시로 쳐들어오는 이 문화적 전체주의 국가에서 "사생활의 욕망"을 버리라고 요구하는 게 과연 얼마나 혁명적인 짓일까?
-p.116쪽


댓글(7)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히피드림~ 2005-08-28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 책 갖고 있어요.^^ 진중권은 참 똑 부러지는 사람이죠?
오랜만에 잘 읽고 갑니다.~~

icaru 2005-08-28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루 참 똑부러지죠.. 읽어 주시고...추천(?맞지요?)도 해 주셔서...고마워요~

비로그인 2005-08-28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옳소! 옳소! 좋은 책을 읽으셨군요. 아, 그나저나 큰일났습니다. 읽으면서 감동하고 즐거워했던 좋은 책은 쌓여만 가는데, 엑기스만 모은 리뷰는 언제 다 써야 할런지..

잉크냄새 2005-08-29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 전반을 비판할수 있는 힘과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건가요?

icaru 2005-08-29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언니... 기대하겠시유...
사실...저도...마찬가진디... 기껏 밑줄긋기밖에 하지 못하는...흠...

잉크냄새 님.. 글쎄요...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세상사와 이웃들이 사는 모습에 대한 부단한 관심..? 그럴려면... 생각은 깊게 생활은 단순하게? 쉽지 않지만요...

2005-08-29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8-30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과 저는 삘이 통하는군요... 사실...거기다가 끌어다 붙이는 것은 많이 억지 같았는데...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