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지위가 건강과 수명을 결정한다
마이클 마멋 지음, 김보영 옮김 / 에코리브르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제목이 결론을 다 말해주는 책이니까, 응당 결론을 뒷받침하는 통계 혹은 연구 결과들이 빛을 발해야 읽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은근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문맥을 100프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가보다. 어떤 수치나 말 논리에 대해서 저자는 탄복하는데, 독자는 멍 때리는 상황..

아무려나 중간에 놓지 않고, 끝까지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힘은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110~111쪽

우리는 정치를 잘해야 계급적 이익을 도모하는 것으로 보거나, 가장 나쁘게는 정치인의 탐욕에 영합하는 타락한 행위로 보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 우파는 낮은 세금과 자유로운 이익 추구권을 위해 논쟁하고, 정치적 좌파는 짓밟히고 불이익 받는 사람들을 보살피고 경제적 불평등의 피해를 막기 위해 논쟁한다. 이때 각 정파는 당파적 충성심이나 탐욕에 바탕을 둔 것이아니라 '사상적'을 논쟁하는 것이다.

이것을 센은 어떻게 설명하는가? 그는 두 정파가 노골적인 자기 이익이나 악덕을 초월해 무엇인가의 평등을 위해 논쟁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각각 다른 쪽의 평등을 위해 논쟁하고 있기 때문에 충돌한다. 국가가 너무 많이 관여한다는 이유로 소득이나 행복의 평등을 공공 정책 목표로 두는 것에 반대하는 자유주의자는 사실상 개인적 자유의 평등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권리의 평등이 중심이기 때문에 소득이나 행복과 같은 다른 것의 평등은 중요하지 않다. 대조적으로, 조건의 평등이 최고라고 주장하는 정치 철학은 개인의 권리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아무 규제 없이 재산을 축적할 수 있는 권리는 삶과 죽음의 질에서의 평등, 혹은 적어도 기회의 평등을 위한 요구보다 아래에 있다. 그러므로 정치인들 사이의 싸움은 당파적 충성심이나 계급적 이익에 대한 것일 수도 있지만, 정치 철학 사이의 싸움은 어떤 평등의 척도가 우선이어야 하는지와 관련이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이런 주장은 공중보건에도 적용된다. 불소가 함유된 물을 마시지 않아도 되는 개인의 권리와 충치를 예방하려는 공동체의 희망, 그리고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려는 개인의 권리와 교통사고의 피해를 막기 위한 노력 등이 그런 사례다.

센은 평등을 측정하는 '공간' 개념을 도입한다. 그 공간을 점령하는 관심 사항은 정의나 사회복지, 생활 수준, 혹은 삶의 질일 수 있다. ....소득은 그 자체가 하나의 목적이 아니라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121쪽

소득 재분배 정책은 분명히 건강의 이익을 가져올 것이다. 물론 그것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 부유한 자로부터 1000달러를 받아 그것을 가난한 자에게 주는 데는 돈이 든다. 행정적인 비용은 차치하고라도 부유한 사람들은 세금을 피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극단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우파들은 이 재화의 손실이 주는 영향을 과장하려 하고 좌파들은 그것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어쨌든 그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진화론적 심리학자인 스티븐 핑거는 이렇게 적었다.

 

"자연선택은 종의 구성원들이 똑같은 적응 속성을 지니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다. 다른 것보다 더 좋은 것이면 어떤 식의 속성이든 선택될 것이고 다른 속성을 소멸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진화론적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조직적인 차이는 환경에 기인하고 그렇지 못한 차이만 유전자에 기인한다고 여긴다."

뒤르켐은 사회적 환경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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