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아이처럼 - 아이, 엄마, 가족이 모두 행복한 프랑스식 육아
파멜라 드러커맨 지음, 이주혜 옮김 / 북하이브(타임북스)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에 동생이 '부모 혹은 선생님의 체벌이 허용되는 나라가 프랑스'라고 해서 뜨악했던 기억이 있다. 길거리에서 부모가 아이의 뺨을 올려 부쳐도 용인하는 분위기 정도 읽혔다.

내가 읽었던(프랑스 문화에 대한 식견을 높여주는 책을 읽었을 턱이 없고, 오로지 애들 동화책으로...그러니 함량미달) 것들 중에, 마늘렌느와 주네비브, 혹은 마늘렌느의 000  하는 시리즈류가 있는데, 거기서는 프랑스 파리, 덩굴로 뒤덮인 오래된 기숙사에 열두 여자아이가 나란히 살고 있다며 시작한다. 그러니까 프랑스는 좋은(?) 교육 받게 하기 위해 여자아이들을 기숙학교에 보내는 나라. ㅋ 히야~

지금껏 아이들 키우면서 여덟살 될 때까지 단체로 수련하는 캠프나 여행 같은 프로그램에 1박도 시킨 적이 없다. 의지였다기 보다는 기회가 없었다고 해야 하나. 기회가 있었더라도 주저했을지 모른다. 나이가 어려서... 프랑스에서는 아이 혼자 해결해야 할 소소할 일들이 많음에 분명하다.

 

지난 여름 큰애 유치원 방학을 했을 때의 일이다.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와 만나 서울랜드에 갔다. 아이들을 데리고 만나는 것은 또 처음이었다. 우리가 만난다면, 남편에게 혹은 친정엄마에게 아직 아가인 아이를 맡겨 두고, 나오는 식이어야 했다. 걔는 우리 큰애 동갑 아이를 데리고 왔고, 나는 우리 두 아이를 데리고 갔다. 동갑내기 두 아이는 처음 2분간은 멋쩍어 했다. 그러니까 분수대 앞에서 만나 쭈볏대다 코끼리열차를 탔을 때는 이미 오랜 지기였던 양 친해졌다. 내가 지켜봐온 우리 아이는 낯선 친구와 만나서 무장해제되어 놀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는 녀석인데, 친구의 아이가 한눈에도 점잖고 다정하며 놀이상대 친구에게 맞추어주는 편이었던 거 같다.

내 친구와는 너무 간만이라 할 말이 많았다. 조금은 아이들은 뒷전이고, 이야기에 집중했던 것도 사실. 친구네와 코스를 맞춰야 하니까. 친구 말에 따라 움직였던 것도 사실. 잘 놀다가 오후쯤 되었을 때 동전 넣으면 살살 움직이는 아가들이 타는 차 앞에서 큰아이와 한바탕 했다. 자세한 상황은 기억이 잘 안 난다. 요지는 아이는 엄마 마음대로 놀이 코스를 주도한다고 왜 엄마마음대로 하냐고 했던 거. 날은 덥고, 애는 얼굴 뻘개져서 엄마 마음대로 하냐고 대들고, 하는데 그만 친구 앞에서 아이 등을 쩍 소리 나게 때렸나, 부릅뜬 얼굴로 무섭게 바라봤나. 둘 다였나 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어색한 중간지대에서 엄하게도 그렇다고 모든 걸 허용하는 태도로도 이도저도 못하는데 비해, 아이에게 권위의 울타리를 쳐 주고, 엄하지만 그 안에서는 너그러운 스타일의 엄마였다. 놀랍게도 친구의 아이는 고분고분하고 설명을 해 주면 곧 수긍하는 것이다.


나중에 이 일을 두고, 친구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자기 아이가 외동이라서인지 다른 친구를 좋아하고, 잘 맞춰주고, 늘 양보하며 놀고, 또한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중에는 끼어들지 않고,,,, 하다고. 한편으로는 자기의 욕구나 요구 등을 지나치게 자제하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이렇게 아이가 고분고분해진 것은 아이가 더 어릴 적에 훈육을 강하게 하고, 고집을 부리면 강압적으로 자제를 시켰던 데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내가 지켜본 바로는 일곱 살 아이기는 했지만, 또래보다 성숙해서 그런 것 같았다. 무탈하게 잘 크고 있는데 자기 아이를 두고 엄마들은 별 걱정거리를 다 찾아낸다고도 생각했다.ㅎ

우리 아이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 아이의 모습. 이 친구 눈에는 참 버릇없이 보였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자기 막내 이모의 아들 이야기를 한다. 막내 이모가 일찍 혼자 되어서 어린 아들을 키웠는데, 너무 오냐오냐 키우더란다. 저만 아는 버릇없는 아이의 전형이었다고 한다. 혼자 된 막내 이모가 어린 아들아이를 쩔쩔 매며 키우는 게 조카 눈에는 안 되어 보였었다고. 그런 이종 사촌이 지금은 육사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자기의 의지대로 놀고 싶어하는 아이를, 엄마 지금 엄마친구 만나서 이야기하고 있잖니, 이런 땐 고분고분할 수 없겠어!!!! 하며 훈육해서 육사를 들어갈 수 있는 싹을 잘라냈나???

니 맘대로 놀도록 해 라며, 졸졸 따라다니고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고, 해 주는 게 아이의 행복 추구권을 지켜주는 걸까? 버릇없는 아이로 만들어버리는 걸까?


“부모 다음이 아이들이에요. 프랑스에서는 아이들과 권력을 나눠 가지는 부모는 없어요.”

부모가 자신감이 있어야 아이가 안심한다는 믿음에서 출발.

이 권위의 테두리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매우 혹독해도 보이는 이 과정. 모든 일에 ‘안 돼’를 연발하고, ‘결정은 네가 아니라 (부모가) 한다’고 윽박지른다고 해서 생기는 것은 당연 아니겠고, 프랑스 부모는 이것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아이와 함께 ‘어떤 일은 허용되고, 어떤 일은 허용되지 않는가’에 대해 대화를 많이 한다고. 그리고 아기들도 다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제한을 둘 때도, 권리 라는 말을 사용해서 호소한단다. “때리지마”가 아니라 “너는 때릴 권리가 없어”라고 말한다. 또한 ‘동의하지 않아’라는 말을 쓰는데, 이런 어휘들은 ‘안 돼’ 이상의 의미를 지닐 듯 하다. 이러한 단어를 통해 아이는 ‘어른도 자신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이성을 지닌 사람’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역으로 ‘어른도 나를 이성을 지닌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으로 대한다는 의미도 들어 있을 것이다.


어떤 일을 금지할 때는 항상 그 이유를 설명해 주어야 하고, 쓸데 없이 무익한 이에 규칙을 강제하지 말고, 몇 가지 중요한 일에만 엄격해야 아이들도 부모의 말에 더 잘 따르게 된다는 뜻일까. 이 때 프랑스 부모들이 절대 참아주지 않는 영역은, ‘타인 존중’과 '물리적인 공격성'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미국인 여성이고, 전직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였으며, 회사에서 해고통지를 받은 이후 일하다가 알게 된 영국인 기자와 프랑스에 정착해 아이 셋 키우며, 겪고 찾아가 듣고, 보고 한 것들의 기록이다.  저널리스트로 살아가면서 이 책이 세 번째인가 네 번째라고 한다. 살고 있는 프랑스에서의 지인들의 아이키우는 이야기, 미국에 있는 지인들의 육아이야기를 절묘하게 비교 대조하는 글쓰기 스타일과 미국이든 프랑스든 국적 불문하고 어떤 문화나 양육의 토대가 되었든 간에 보고들은 내용을 통해서 편견없이 좋은 점을 가려 추출하는 글쓰기 스타일이라서 읽는 재미가 배가하지 않았나 싶다. 또한 전직 기자여서 그랬는지, 보고 듣고 한 것을 넘어서 과학적인 데이터의 결과를 신봉하는 스타일이라, 포브론슨과 에슐리 메리먼 공저의 <양육 쇼크>에 대한 인용을 자주한다. 함께 읽으면 참 좋았겠다 싶은데, 완독이 끝나기도 전인 반년 전에 중고샵에 팔았다. 그 책 또한 목차가 내용의 절반을 이야기해 주는 책이었던 것이다.

  

그 책에도 나오지만 칭찬을 많이 받은 학생이 대학에 가면 ‘모험을 꺼리고 자율의 의식이 부족해진다’는 연구 결과를 알려 준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평범한 점수를 받느니 차라리 수강을 취소하고, 전공을 선택하는 것도 어려워한다. 성공하지 못할까봐 뭔가에 헌신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나 또한 아이가 아이 스스로의 삶을 살았으면 한다. 지나친 칭찬으로 아이의 동기를 왜곡거나, 본질적인 즐거움을 보지 못하고 칭찬에 목말라 하는 아이가 되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그래서 칭찬을 좀 아낄까 한다. (사실 이 부분에서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큰아이에 얽힌 일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우리애가 남이 뭐라 하건 자기가 좋아야 행동하는 다소 쿨한 데가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림일기를 그릴 때 바탕색을 꼼꼼히 칠해야 선생님이 A+을 준다며 갖은 애를 쓰며 하얀 바탕을 메우고 있었다. 교실에서 공작하는 시간 이야기를 쓴 거였는데, 책상도 갈색이고, 마루바닥도 갈색이니, 딱 책상과 인물들만 색칠했을 때가 더 나았던 거다 ㅠㅠ) )

 

학교에 보내고 보니, 비로소 드는 생각은 아이가 앞으로 겪을 거절과 배제됨과 그로 인해 겪게 될 실망 기타 등에서 아이를 보호해 줄 수 없을 날이 많아질 것이고, 이에 대한 스스로의 단련이 필요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아이가 잘하든 못하든 아이가 스스로 해냈다고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하고, 마음 저편으로부터 항상 지지하겠지만 말이다.

 

"우리 아이들은 부모의 야심을 위한 창고가 아니며, 부모가 완수해야 할 프로젝트도 아닌 것이다. "

 

이 말은, 아이에게 딱 붙어서 숙제를 봐준다고, 다그치고 묻고 시원찮은 대답에 간간이 뒷목잡는 나를, 밤참으로 우동을 끓이느라 주방에 서성이며 지켜보던 남편이 한 말이기도 하다. 저기에다가 남편은 더 심한 말을 덧붙였다. "그런 식으로 하면,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취향과 즐거움, 삶의 경험을 지닌 개별적이고 유능한 존재다. 엄마에게는 말해 주지 않는 비밀도 갖고 있을터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번을 마음을 내려 놓는다. 지금 여덟살, 다섯살 이 아이들을 20년 후면 떠날 손님처럼 대하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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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3-07-03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아이들 교육에 대한 글 언제나 좋아요~~~~.^^

icaru 2013-07-03 14:48   좋아요 0 | URL
이모든걸 먼저 겪으신 님이라서 공감을 잘 해주신거겠다는요~~~ㅋㅋ

blanca 2013-07-03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공감가요. 특히 학교에 대한 이야기. 좌절과 때로는 자기한테 호감적이지 않은 상황 등을 통해 단련되는 장으로서 유치원과 사실 격차가 아주 큰 것 같아요. 저도 아이가 지금 일곱 살이라 훈육 고민중입니다. 이 책 읽었을 때 아주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저도 사실 어릴 때에는 버릇없는 행동을 많이 했는데 커서는 문제 없더라고요 ㅋㅋ 장기적으로야 다 건강하게 클 것을 아는데 무조건적으로 얌전한 아이로 키울 것인가, 그렇다고 다 놓고 자유롭게 해 줄 것인가, 항상 딜레마입니다.

icaru 2013-07-03 14:49   좋아요 0 | URL
저는 블랑카 님에 감사하는 마음 갖고 있어요. 페이퍼 통해서 이 책을 소개 받았으니까 ^^;;
보통 책을 읽다보면, 절반까지 읽고나면 저끝 내용이 투시되어 살짜 김이 새가는 책들이 많았는데,, 이 책을 뒤로 갈수록 궁금해지고, 내용도 좋았고 했어요!!

프랑스의 고자질하지 않는 문화도 기억이 나네요. 울 아이들도 가끔 얼굴에 할퀸 자국이 있거나 상처가 나서 올 때가 있는데, 누가 왜 그랬는지 물으면 입에 자물쇠를 달아요. 그게 다 사회적으로 성장하는 와중에 엄마아빠의 개입없이 사건을 해결하려던 의지였던 거였나 싶고,,, ㅎ 울 아이들 앞으로도 얼마나 비밀이 많아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