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공감 - 김형경 심리 치유 에세이, 개정판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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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의 일이다. 중3 담임인 동생은 이미 방학이 시작되었어도 마음은 그닥 홀가분하지 않아 보인다. 입시에서 떨어진 아이들의 원서를 써 주어야 하는 것도 그렇고... 어느 날인가는 수심이 얼굴에 가득해서 물어보니 한 아이의 아버지가 자식이 입시에서 떨어지면 다른 지역에 다시 지원하지 않고, 아예 고등 학교를 보내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댄다. (이 아버지는 딸아이가 공부를 못한다고 애를 심하게 때려서인지, 아이에게는 멍이 가실 날이 없으며, 어딘가 늘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거나 속없이 배시시 웃는다고 한다.)

그 동안은 아이의 어머니와 상담을 했었는데, 지난 신정에는 집에 방문한 친인척들을 등에 업고 엄마가 넌지시 ‘딸아이가 다른 지역에 원서를 넣어야 할 것 같다고, 이 지역(과천안양)에 넣으면 떨어질 거라고 선생님이 전하더라’는 말을 했었나보다.

그러자 되려 친인척들 다 보는 앞에서 아이를 뺨과 몸을 무차별적으로 때리기 시작했다고. 그러면서 만약 아이가 선생님이 하는 말과 달리 학교에 붙기라도 하는 날엔 떨어질거라고 말한 담임도 가만 놔두지 않겠다고 했단다.

 

동생은 이 아버지를 어떻게 설득하여, 아이를 고등학교에 보낼지 고민하였다.


“아버님, 정신 분석가에게 상담 한번 받아 보시라고 해.”


딱! 이 말을 해 주고 싶었다.


비단 이 아버지만의 특별히 앓고 있는 질환이라 그런 게 아니고 모든 인간들에겐 마음 관리가 필요하고 자기 치유의 경험을 여러 차례 갖는 것이 중요할 터. 게다가 이 경우 딸과 아내의 관계까지 두루 행복*불행이 엮여 있지 않은가.


아이는 부모로부터 그토록 폭력적인 일을 당해도 분노를 표출하지 못하고(아버지의 학대를 회피하기 위해 가출을 하고 무단결석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분노를 참고 마음 깊숙이 억누른다. 분노를 품고 있기가 너무 고통스러우면 아예 분노가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에서 지워버린다.


사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그런 분노가 있다. 이런 분노 때문에 아이는 전적으로 무력하고 의존적이며 미숙한 생존법을 가진 성장기를 보내게 된다.


내면의 분노는 분석 치료의 출발점 혹은 중점에 두어야 하리라는 생각이다. 내면의 그 분노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질은 판이하게 달라지니까.


 

억압된 내면의 분노는 생의 에너지를 앗아가며, 일하는 분야에서 능력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게으르고 무기력한 일상을 영위하거나, 타인을 의심하고 세상을 믿지 못하거나, 냉소적이고 신경질적인 말투를 갖거나, 자신과 무관한 일에서 이유 없이 화를 내는 이유가 된다. 무엇보다도 가장 믿을 만한 사람에게 표출되어 친밀한 관계를 망가뜨리곤 한다.


 

이 책은 분노를 해결하는 방법을 의식적으로 행하는 단계를 보여 준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표현하기 그 단계 다음으로 타인에게 표현하기, 타인에게 표현하기의 좋은 예로 텔레비전 토크쇼에 출연해 대중들에게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눈물을 흘리는 이들을 들었다.


모든 인간은 얼룩덜룩하고 울퉁불퉁한 내면을 가지고 있는 불안하고 부족한 존재이지 않은가. 때로는 ‘좋은 사람’이라는 자기 이미지를 적극 포기할 줄 알아야 하고, 순진하고 순수하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은 아니라는 것도, 또한 우리가 생각만큼 긍정적인 존재는 아니기에 우리의 부정적인 면을 성숙한 자아가 알아차리고 돌봐줄 필요도 있다. 내면에서 시기하고 분노하는 마음은 성장기에 상처 입은 어린 자기라고 하니까.


내가 나인 것이 좋아야겠다. 주변 정리정돈을 잘 못해도, 엄마 노릇 제대로 못해도, 직장에서 유능하지 못해도 괜찮다. 설령 남들로부터 비난이나 비판을 듣더라도, 남들이 하는 그런 종류의 얘기는 대체로 그들 내면이 투사된 현상이거나 그들의 시기심일 뿐인지 모른다고도 생각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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