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taro - Best Of Silk Road
키타로 (Kitaro) 연주 / 티엔터테인먼트/코너스톤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초등 학교 고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텔레비전에서 시리즈물로 실크로드 다큐멘터리를 방영해 주었던 것이.... 아이들이 보기에는 좀 늦은 밤 시간에 방영을 했었고, 기타 등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그 프로를 진득하니 앉아서 제대로 보지는 않았지만, 장엄했던 테마 음악만큼은 뚜렷이 기억한다.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 때, 키타로의 실크로드 음반 테잎을 샀고, 정신 몽롱해지고, 테잎이 느슨해질만큼 자주 들었다. 그 당시에 소지로의 대황하나, 기타로의 실크로드처럼 오카리나 소리에 신디사이저 음이 더해진 것 같은 음반들이 인기였었다.
키타로의 실크로드는 새벽에 듣고 있으면 딱 유치환의 '생명의 서'라는 시가 생각났다.

 
생명의 서(書)       유 치 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 ㅡ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기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먼지가 일어나는 실크로드 사막에서 운명처럼 본연의 ‘나’와 만나는 느낌. 칡흙처럼 짙게 조용한 동굴 속에 혼자 들어 앉아, 동굴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앉아 있는 것과 같은 느낌. 모두가 잠든 새벽에 실크로드를 듣고 있으면, 어떤 땐 무서워지기도 했다. 끝 간 데 모를 명상의 자리가 그리고 뼈가 시리도록 고독해지는 듯한 이 느낌이, 결코 가벼울 수 없지 않겠나. 

어느덧 15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실크로드. 이 앨범은 22년만의 오리지널 실크로드와 , 그 출발점인 서안에서의 음악 봉납시의 연주를 수록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와호장룡이나 영웅과 같은 중국물 영화에서 오리지날 사운드 트랙으로 쓰였을 법한 중국풍의 새로운 음악도 몇 개 들어 있고, 나머지는 기존의 실크로드를 리마스터링하여 새로운 느낌을 주고 있다. 하지만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싸아~함이 예전 것만 못한 것도 같고, 그런 대신에 화려한 기교와 스케일 때문에 더 세련되어진 것도 같고 여러 느낌이다.

 

특정 버섯 속에 들어 있다는 실로시빈이라는 환각제. 예전에 심리학자 매슬로가 대조군 실험을 신학생 20명을 대상으로 했었는데, 25년 후 도블린이 이 실험에 참가했던 19명을 수소문하여 인터뷰를 했다. 결론은

“실로시빈 복용자들은 이휘의 장기간 후속 연구에 참가했을 때에도 하나같이 잣니들의 애초 경험에는 진정 신비한 부분이 있었으며, 그것이 자신의 영적 삶에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소중한 기여를 해주었다고 여겼단다. 다음은 한 참가자의 그 때 경험담.


“어느 순간 갑자기 제가 몸에서 쓱 빠져나와 무한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제 마음과의 고리가 툭 끊어져 버렸어요. 저는 삼라만상의 광대한 세계 속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 때로 기도를 하러 갔다가 고개를 들어 제단 위의 불빛을 올려다보면,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빛에 눈이 멀어버리는 듯한 순간이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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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2-22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카리나는 소지로의 대황하로 알게 되었어요. 그 당시엔 거의 환장했죠. 고 작은 물체에서 영혼을 울리는 듯한 소리가 난다는 것에 금방 매료 되었는데, 키타로도 거의 마찬가지였습니다. 님도 좋아하신다니 괜히 제가 흐뭇합니다.^^

잉크냄새 2005-02-23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다큐멘타리 저도 기억나네요. 역동하는 대황하를 떠올리면 소지로의 오카리나 소리는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참, 유치환의 < 생명의 서 > 오랫만에 읽는데, 예전에는 단락의 마지막 구절만을 외웠던 기억이 나네요.

2005-02-23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2-23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 님 님도 음악 실크로드 좋아하셨다니... 우째 이리 반갑습니까...으쓱으쓱... 바로 그 현장에 가서 ... 이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원이 없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잉크냄새 님..생명의 서, 이 시는 마지막 구절이 결정체 같아요...그런 마지막 구절만이라도 우짠튼 외우셨다니..역시 방랑자 김 삿갓이셨던게야..
...사실...전...한 줄도 외우는 구절은 없고...이미지만 뭉뜽그려 생각나...적어와 봤다지요...

속삭이신 님... 너무 반가워요... ㅠ.ㅡ* 이 시가 한때 님의 키우셨다니...갑자기 생명의 서가...더 사랑스러워지려 합니다.... 요즘 글렌 굴드의 책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만만찮은 내공을 뿜어내는 책입니다...자켓 위에 뽀얗게 먼지만 싸여 가던 ...굴드의 골드베르크를 먼지를 싹 걷어내고... 요즘...집에서 한참을 넋을 팔고...듣고 있는 저를 보게 되네요...!

2005-02-24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7-22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변 사람들에게 ... 내가 실크로드를 좋아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해 주면...곧잘들 이런다...
"너는 조그만할 때부터 애늙은이 같았구나!"

조용히살자 2006-03-14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시절 추억으로 실크로드 다큐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저말고도 많은 것 같아 기쁩니다. 늦은 밤 뭐에 끌렸길래 드라마, 코메디도 아닌 프로를 어린 제가 그리 손꼽아 기다려가며 봤을까요... 장엄한 목소리의 남자 나레이터의 나레이션 아래 흘러나오는 오카리나의 선율이 지금도 귀에 선합니다.

icaru 2006-03-16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용히 사시는 님이시군요~
아! 맞아요맞아요~
근데 요전날에도...한참... 신 실크로드라고 해서... 3개국 방송사(우리나라 일본 중국) 합작 다큐를 해 주는 거 같던데... 제가 또 일찍 잠자리에 드느라 챙겨 보진 못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