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우체국 - 황경신의 한뼘스토리
황경신 지음 / 북하우스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황경신이 그가 편집장으로 있는 잡지 <페이퍼>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은 책이다. 수필집은 아니고, 시집도 아니고, 한편 한편이 너무 짧아서 소설이라 하기도 뭣하고, 동화라고 하기엔 음,,, 군더더기가 너무 많은 동화 아닐까 싶다. 미사여구로 조금은 사치스럽게 소녀 취향으로 꾸민 구석들이 느껴지는 문장들이 많다.  (음, 내가 느끼기에는....)

그리고 페이퍼 잡지처럼 책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따라 색깔이 파스텔톤으로 되어 있어 참 예쁘다.

음, 이 책을 대하면서 자뭇 나는 슬퍼지기까지 했다. 이 책에 나왔던 비 오는 평일에 동물원에서 혼자 서성거리고 싶은 사람, 서른 개의 종이컵에 서른 송이의 장미를 꽂아두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 나는 이미 그런 사람이 아니며, ‘이미’가 아니라 과거에도 아니었다는 것을 아프게 깨달았다.
지금 내게서 여운이나 감상 따위가 그 자취도 없이 스스르 사라졌다는 것을 쓸쓸하게 감지한 것이다.

생각해 보니까, 나는 밥을 먹을 때도 급하게 먹고, 컴퓨터 자판을 누를 때도, 자판이 부서질 듯, 피아노교본 하농의 십육분음표짜리 스타카토 연습하듯... 요란스럽게 때리고, 사탕도 오래 빨아먹지 못하고, 입에 넣는 순간 씹어버리는 사람이었다. 음식도 두어번 씹고, 삼켜버리기 급급한 사람이었다.
나는 급한 사람이다. 오래 음미하는 법을 잘 모른다. 나는 본래 이렇게 급한 사람이었는지, 살다보니 이렇게 바뀌어 버렸는지 알 수가 없다.

이토록 급한 사람이 이렇게 여운을 두어야 하는 책을 만나니, 속에서 답답증이 일렁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먹고 살기도 죽겠는데, 이렇게 폼 잡을 시간이 없어, 사과나무가 뭐 어떻다고, 레인 샤워 라는 맥주를 사줬던 그 남자가 지갑도둑이라는 거야, 아니면 언젠가 만났던 첫사랑이라는 거야, 그래, 나에겐 낭만이 없어.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건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줬음 좋겠다.’ 나는 지금 이런 식으로 작가에게 초조함을 내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심각한 것은, 이런 내색을 비치는 내 자신에게 연민이 생긴다는 것이다. 뭐에 그리 쫒겨 살아가는가. 무엇을 위해서 조바심을 떠는가. 그래,작가가 곳곳에 심어놓은 알레고리를 풀지 못하는, 풀 시간이 없다고 정색을 하는 삭막한 내가...안타깝다.  
 
이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챕터가 있다. 봄편에서 <곰스크로 가는 기차> 이야기, 그리고 가을편에서 <완벽한 룸메이트> 이야기는 베스트 극장에서 보았던 내용이다. 두 편 모두 베스트 극장에 방영되는 내용치고는 참으로 럭셔리하다고 생각했었다. 고풍스러운 집, 와인바구니, 오래된 하드 커버가 빼곡히 꽂힌 서재가 나오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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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6 2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5-02-17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리뷰를 읽다 보니 이거 내가 쓴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랑 비슷하시네요. 쫓겨 살고 있는 건 분명한데 정작 무엇에 쫓기는지도 모르고 있는 게 바로 저군요. 그런데 참 님 글이 콕콕 찔러대는 게 아파죽겠는데 예쁘고 고맙고 웃음도 비질 나오고... 책이야 어떻든 님 리뷰는 참 훌륭하군요. ^^

2005-02-17 0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여우 2005-02-17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이 다섯개나 되는군요. 지난번 발렌타이때도 초코렛을 하나밖에 못 먹은 저는 이 리뷰를 보면서 추천이 다섯개인게 아주 거시기합니다. 이젠 추천까지 님 혼자 다 드시겠다니요..흑..그래도 또 하나의 추천이 느는군요...정말로..흑

호밀밭 2005-02-19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안 읽었지만 님의 리뷰는 공감이에요. 저도 점점 성격이 급하게 변하는 것 같아요. 행동은 아직도 재빠르지 않은데 생각이나 화가 나는 속도가 빠른 편이지요. 표지가 예쁜 페이퍼 잡지 가끔 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정작 한 권도 사 보지 못했네요. 잘 읽고 가요. 정말 빛나는 글이에요.

humpty 2005-02-18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사람이 공감을... 저도 거기에 한 공감을 더하고~
책 놓고 별로 안 좋은 소리 못하는 편인데(제가 이해가 더뎌서리), 이거 보면서 그런 느낌도 받았어요. 스스로에게 많이 취해 있는 게 아닌가 싶은...
그래도 이야기 중 하나, '거짓말'에 관한 거 보면서, 싸했드랬죠. 사랑한다는 사람이 하는 말도 거짓말이라고 하고, 나중에는 내 마음도 거짓말처럼 느껴지고, 이 마음이 과연 내 마음이 맞나... 하던. 읽을 때 마음이 좀 그랬나봐요. 마음이 휑할 땐 붙잡아 맬 말뚝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던, 김형경 글에서 본 그런 비스무레한 귀절이 문득 떠오르네요.
왜 이렇게 횡설수설하고 있는 거지? ^^;;

icaru 2005-02-18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전 정말 낭만도 뭣도 모르는 것 같아요~ 이 책 보면서...잠깐 여유 좀 갖어보자했는데..그 마저도 안 되더라고요 ...허걱이어요... 님이 말씀하신 그 호수... 가 보고 싶어요... 겨울 호수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이상하게도 차분해지더라고요....겨울바닷바람보다야 약하지만... 호수에서 부는 바람을 맞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고프네요.. 거기엔 뽑아먹는 따뜻한 커피를 후후불며 서서 마시면 딱!!!일듯해요 ^^...

이안 님...히히... 님도 저처럼, 쫓기는 그 정체모를 느낌은 안고 사신다니, 참참참..절 보세요...이 순간 안도하는 저를요.. ‘아 님도 그러시구나...’함서요...
근데...제가요... 푸념조 비슷하게 리뷰를 써서...책을 나쁘게 말한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내 취향이 아니었다고 해서,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이 책 속엔 있더라구요~

파란여우 님... 저 책 제목 이쁘죠..초콜렛 우체국~ !! 님...저도 마음 속의 초콜렛 말고요오~ 입으로 들어가는 초콜렛은 주지도 받지도 않은 나날이었답니다.. 삭막시럽죠? 히히.....초콜렛은 아니지만...추천은 님께 해 드릴께요.... 드리러 지금 갑니다...슝슝...

호밀밭 님은 어떤 분일까~? 가끔 저 혼자 해보는 상상입니다. 님의 글을 통해, 조각조각 퍼즐을 맞추듯 재현해 보기도 합니다. 히히.... “행동은 아직도 재빠르지 않은데”라는 님의 말씀에 친근함이 한 움큼 묻어납니다. 그리고 칭찬해 주셔서 고마워요~!

humpty님 ^^
님은 ‘거짓말’에 관한 것...그 이야기에 싸~~~했군요. ^^ 전...사과나무 이야기요... 지구가 한 달 후에 멸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사람들은 더 이상 도시에 있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가지요... 지구가 한 달 후에 멸망한다면... 나는 어떻게 그 한달을 보낼까 생각함서...좀 싸했어요.. 마음이 휑할 땐 붙잡아 맬 말뚝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던, 하하... 이 책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읽느냐에 따라...그 느낌이 확연히 달라질 것 같아요..제대로 읽기 위해 명심해야 할 것은 천천히....천천히...읽어야 한다는 것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