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다 1 - 아나톨리아 횡단 나는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임수현 옮김 / 효형출판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걷는 것은 꿈이 담겨진 행위이다. 그래서 논리적이고 치밀한 사고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시간도 많이 들고, 다리도 아프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계속 걷는가?  걷는 일은 알 수 없고, 그래서 정의 내리기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걷는 일은  행동이고 도약이며 움직임이다. 부지불식 간에 변하는 풍경, 흘러가는 구름, 변덕스런 바람, 구덩이투성이인 길, 가볍게 흔들리는 밀밭, 자줏빛 체리, 잘려나간 건초 또는 꽃이 빈 미모사의 냄새, 이런 것들에서 끝없이 자극을 받으며 마음을 뺏기기도 하고 정신이 분산되기도 하며 계속 되는 행군에 괴로움을 느끼기도 하는.
이 책을 잡기 전에 나는 이 책이 두 가지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걷기’에 대한 이야기이거나, 실크로드 지역 여행에 대한 이야기일거라고. 그런데 결론은? 음 그건 이러하다.(너무 당연한가??)  이 책은 걷기와 실크로드 길에 대한 여행서, 두 가지 모두를 버무린 두루뭉실한 혼합이면서도, 세세하고 꼼꼼한 기록의 여정이었다. 그러니 단순한 여행서라고 하기 어렵다. 이 책이 낯선 곳의 사람들과 경치와 풍습들을 다루는 책이 분명 아니다. 그 흔한 사진 조차 없다.


이 책에는 터키에 대한 저자의 경제적, 정치적 해석들. 등이 얼핏얼핏 보인다. 극심한 빈부격차와 도처에 존재하는 종교 분쟁으로 폐쇄되어 가는 현대의 터키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토착인도 아니고, 역사학자도 아닌 이 필자의 조금은 이중적인 견해에 독자인 내가 무턱대고 딴지를 걸기는 좀 무색했다. 어차피 그는 터키의 역사적인 맥락을 벗어나 있고, 터키의 과거 역사에 흥미를 갖는 것이지, 현재의 터키를 사랑하는 사람은 아닌 것이다.


걷기 여행에  따르는 위험과 사고들이 그에게만 예외를 둘 리 없다. 강도를 만나기도 하고, 예기치 못한 순간( “태양도, 죽음도 뚫어지게 바라볼 수는 없다.는 프랑스 속담이 있다고 한다. 너무 강렬한 것이라 다가오는 것조차 직시하기 어렵다는 뜻일거라...)에 목에 총구가 들이밀어지는 것과 같은 아찔한 경험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불행한 순간은 자기 몸이 자기를 배반할 때일 것이다.

 

그는 이란의 국경 앞에서 악성 이질에 걸려 저승사자에게 혼쭐이 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스탄불까지 송환되는 달리는 엠뷸런스 안, 간호사 앞에서 엉덩이 걷어부치고 연신 변기통에 설사를 해야 해도, 품위고 뭐고 가릴 개제가 없을 만큼 상태는 위중해진다. 그래서 마지막에 실크로드 걷기 대장정에 잠깐 쉼표를 찍게 된다. 고국으로 돌아가 수술을 받아야 할 상황이므로. 그래, 웬만하면 실크로드 도보 여행은 이쯤에서 접을 법도 하건만, 저자에겐 다음을 기약하는 어느덧 고집스러운 의지가 비친다. <나는 걷는다2, 3집>을 후속으로 내야만 하기 때문이어서일까? 흐...

 

내 생각엔 그가 이 고독한 걷기 여행에서 맡아지는 삶과 죽음 사이의 강렬한 향기를 맡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어떤 고통을 넘어서면 죽음도 두렵지 않듯이, 자기가 자기 자신을 이기는 그 순간을 맛본 사람들은 꾸준한 시련과 예외적인 일들을 통해서 순열한 기쁨을 느끼기 때문인가보다. 아나톨리아의 거대한 초원 걸으면서 자신의 지난 인생을 반추하는 저자의 모습이 가물가물.....  


“무척 오래 전부터 나는 자아를 탐구해왔는데 이 여행이 나에게 보여준 것은? 나는 내가 변한 것이 없음을 겸허하게 인정해야만 한다.”

 이상하게 나는 저 한 줄이 이 책의 모두를 짤막하게 담고 있는 핵심 문장 같다는 생각이다.



* --- 누리끼리하면서도 회색빛이 감도는 투박한 맛의 재생 종이에, 땅의 색깔과 가장 가까운 갈색 표지. 빛좋은 개살구라는 속담은 이 자리에서 조용히 물러가 주어야 한다. 책의 겉모양이 가진 컨셉이 책의 속알멩이와도 잘 어울린다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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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12-04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알 태그들과의 징글한 싸움들....이제는 그만 하고파요...지기님!~~ ~~

내가없는 이 안 2004-12-04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언론에 나오기 전인 듯했어요, 서점에서 본 건. 아! 이 책 봐야겠다, 생각하고 왔는데 복순이언니님이 차력도장 책으로 선정했다는 얘기가 들리더군요. 반가운 마음이 굴뚝 같아서 당장 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거 볼 여유가 없어서 님의 리뷰를 대신 열심히 봤답니다. ^^ 2편 3편도 읽고 리뷰 써주세요! 아니, 정말 알라딘 아직 오류 못 잡았나봐요. 답답타...

icaru 2004-12-06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렇더라구요.. 돋움체가...이상하게... 가독성이 떨어지는거 같아서요...그래서...한글 신명조체로... 글을 쓰고 여기다 복사해 붙이면... 한 줄만 띄었을 뿐인데... 화면상으로는 저렇게 십리나 떨어져 보이고... 아무리 수정을 해도...비알테그들을 없애도.... 저 간격들은 좁혀질 줄을 모르더라구요~



저도 이 책... 티비 책을 말하다 에서 보고... 읽어보자 했었죠~

마음 관리해 주고 싶을 때...한장한장 넘겨 읽으면...딱일듯해요^^

hanicare 2004-12-06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천천히 읽고 갑니다.(뜬금없이) 복순이 언니님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

icaru 2004-12-06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어떤 부분에서 하니케어 님께 제가... 점수를 얻은 것일까요~~

좋은 사람이라는 말...! 제겐 과분하지만 무척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