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 - 곽세라 힐링노블
곽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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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옆에 부제로 곽세라의 힐링 노블, 이라고 되어 있다. ‘힐링 노블’ 처음 들어본다. 직역하자면, ‘치유 소설’

정말 그랬던 것 같다. 치유 받을 작정을 했었던 것은 아닌데, 좀 그런 날 읽게 되었다.  쉴틈이라고는 평일보다 더 없었던 주말을 보낸 일요일 밤에 읽기 시작했으니.

애들 데리고 동네 공원에 갔다가, 점심 먹였다가, 도서전에 갔다가, 시댁 갔다가 다음 일요일 과학관 수업에 갔다가, 평일 일용한 찬거리를 준비하기 위한 주일행사 장보기를 마치고, 저녁을 먹고. 그렇게 허둥허둥하는 하루를 보내고 나서 이제 좀 쉬어보자 할 겨를도 없이 찾아온 밤. 불현 듯 잊고 있었던 월요일부터 처리해야 할 회사일과 회의 등이 돌덩어리 얹듯 철푸덕 내려앉는 소리가 배경 음악이 된다.


힐링이 필요한 순간이지 뭐냐.. 그래서 잡은 이 책 읽다 보니 더 밑줄 박박 긋게 됐나 보다. 딱 맞춰 책 속에 나 대신으로 몸의 밧데리를 방방전하고, 푸~~~~~욱 쉬어 주고 계시는 미용사인 주인공 엄마가 등장해 주시는 이 부분에서.

“엄마는 두 주일에 딱 하루뿐인 휴일엔 세상과 연결된 온몸의 플러그를 모두 뽑고, 철저하게 쉬었다.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은 물론 티비를 보거나 음악을 듣지도 않았고 몸에는 팬티조차 걸치지 않았다. 밥도 먹지 않고 따뜻한 꿀물만으로 목을 축이면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처럼 굴었다. ”


이 책은 뭐랄까 현실을 뿌리에 두고 있지 않은 지극히 비일상적인 것이었고, 생존에 대한 갈망이 너무 치열해서 감동을 주는 그런 류의 소설이 아니었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고, 부서지기 쉬운 고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치유받은 느낌이다.


티비 채널 다큐 프라임 같은 데서 ‘내 속의 또 다른 나’와 같은 주제로 방영한 프로그램을 봤었다. 그중에 하나가 이런 거였다. 젊은 여성을 전시실 같은 작은 공간에 들여보낸다. 그곳엔 10여명 정도가 되는 여러 남성들의 프로필 확대 사진 액자들이 걸려 있다. 젊은 여성이 해야 할 미션은 이 남성들의 얼굴 가운데에서, 가장 호감이 가는 쉽게 말해 이상형 의 남성을 골라 내는 것이다.

여기엔 트릭이 있는데, 10여명의 인물가운데, 한명은 사진 조작을 하였다. 실험녀 본인의 얼굴(눈코입귀?)을 합성해서 남성의 실루엣에 넣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조작한 것이다.

결과는 어떠했을 것 같은가? 그랬다. 이 여성은 (그녀는 모르고)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그녀 자신과 가장 닮은 조작한 사진'의 얼굴을 골라냈다. 이 여성의 남성 취향이 자기와 닮은 사람! 이었나 보지. 라고 말할 수조차 없는 것이, 이후의 실험녀들 또한 모두 자기 사진을 합성한 남성의 얼굴을 골라냈다는 점이다.

보면서 정말 신기하고 의아했다. 정말 인간은 어쩔 수 없는 나르시시스트일 수밖에 없는 것이가.

이 책을 읽어보면 이런 식의 해석도 가능하다.

지구인의 65퍼센트가 환생을 믿는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전생에 심장을 태워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한다. 지금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에 보이는 저 여자는 내가 전생에 아주 많이 사랑했던 여인이었던 거? 내가 전생에 남자였다는 것이고, 지금 이 얼굴이 좋아서 결혼한 우리 남편(나는 그렇게 알고 있어! 당신.)은 전생의 나와 같은 부류의 여자를 사랑할 운명이었던 거네. 그럼, 당신의 전생이었던 여자와 나는 남성 취향이 비슷했던 것이고... 앗 여기까지만 하자!

하하... 이렇게 이 책은 즐거운 지적(? 분류 카테고리상 지적인 게 아니면, 뭘까 애로틱? 플라토닉?) 자극 또한 선사한다.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의 주인공 류짱은, 극단의 미나 선생님의 표현에 의하면  ‘뮤토’이다.  '변화하는 자'라는 뜻의 라틴어로, 상대방의 머리카락에 담긴 기억 속으로 들어가 그의 과거와 미래를 '연기' 할 수 있다.

길 위에서 저마다의 사람들에게 별처럼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는 작가는 여기에 주인공 류짱을 통해서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뮤토에게 플레이를 의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또한 재밌었던 이야기,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해서 프로그램 절차에 따라 200개도 넘는 설문 항목에 답을 하고,  ‘또 다른 나’를 받는다. ‘아바타’ 같은 것이라고 해두자. 이야기란 생각보다 힘이 세서 생생하게 말로 듣는 것들은 한창 민감한 시절에 사실과 혼동될 정도로 리얼리티를 갖는 게 사실이다. 

어쩌다 들어선 ‘뮤토’로서의 생. 미나 선생님의 가르침.

"상대역이 없으면 우린 어떤 것도 될 수가 없어. "  누군가가 되쏘아주어야만 ‘그것’ 되는 뮤토. 류짱은 뮤토가 되려 해서 된 게 아니었다. 극단의 미나 선생님에게는 특별한 관객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위한 연기를 하는 자는 오로지 미나 선생님의 간택과 그녀의 길 안내가  필요하다.

“미나 선생님은 노련한 손끝으로 나를 땅 위의 삶으로부터 떼어냈다. 미세하게, 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래서 내가 겁을 먹고 무대 위의 시소에서 뛰어내리지 못하도록, 달이 차고 기우는 만큼씩만. 그런데 어느 순간 시소는 휘청거렸고, 겁에 질린 나는 내려 오려고 했지만, 내가 춤추던 저울판은 이미 너무 높이 올라가 있었다. 현기증이 났고 땅을 그리워했다.  두려움과 흙의 세상은 남루한 것이고, 그걸 느끼지 않으려면 두 번 다시 아래를 쳐다보지 않으면 된다고 미나 선생님은 가르쳐줬다.”


그리고 뮤토의 순간 고통스러울 만큼 몰입한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감정의 수위를 이토록 높이는 것은 자해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런 식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서는 안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두 편의 작품이었지만, 단연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 쪽이 묘하게도 매력적이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치히로가 그랬던 처럼. 뭔가를 훅 건너뛴 것 같은 작품의 마지막도 근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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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2-06-29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 샘앤파커스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대한 서평입니다

책읽는나무 2012-06-29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을 닮은 모습의 이성을 이상형으로 꼽는다,
그리고 전생에 심장을 태워 사랑했었던 사람의 얼굴로 태어난다..
으~ 소름이 오싹하네요.
영혼에 관한 얘기가 강력한 추리소설 못지 않겠어요.ㅋㅋ
오늘 오랜만에 새벽족이 아닌 야밤족이 되어보네요.
재밌긴한데..모두들 잠들어 있는 것같아 좀 심심하군요.ㅠ

2012-07-02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2-06-29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속의 또 다른 나, 저도 봤어요. 이카루님이 언급하신 내용 자신의 얼굴을 합성해서 남자모습을 만들어낸 사람에게 호감을 느꼈다는 결과를 보고 좀 놀랬던 기억이 나요.

맞벌이라서 더 힘드시죠. 저는 집에서 놀아도 매일매일이 힘든데,,, 요즘은 더군다가 더 힘들었어요. 어제 오늘 좀 나아지긴 했는데(아마 며칠 전에 사서 마시는 홍삼덕이 아닐까~ 싶기는해요), 하루종일 사람들에게 치이고 일에 치이는 맞벌이 엄마들은 얼마나 힘들까 짐작이 되요. 저는 살면서 참 무관심한 주제가 힐링이에요. 과연 치료가 될까 하는 의구심이 많아서~

icaru 2012-07-02 11:46   좋아요 0 | URL
아! 그거 보셨구나~ 다큐 프라임이었나 저는 본방 못보고, 재방하는 거 본 거 같은데,, 그게 3년전인거 같아요. 2009년인가 2010년인가!

회사 다녀도 힘들고, 다니지 않아도 힘들었을 거예요. 회사 다니니까 핑계댈수있어서, 몸은 덜 힘들지도 모르겠고..

힐링~ ㅎㅎㅎㅎ 댓글 너무 웃겨요! 들었다는 의구심 때문에..

전 책 받기 전에 에세이인줄 알았죠. 자기 독백을 해야 하니까. 근데 힐링이라는 게 소설이라는 장르로 나올 줄은...

기억의집 2012-06-29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나무님 지금 들어왔죠. 완전 평행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