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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뒷면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9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4월
평점 :
달의 뒷면 하면, 핑크플로이드의 명반이 떠오른다. 시계추가 똑딱거리고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가, 서정적인 반주로 노래가 시작되는. 그러나 핑크플로이드의 노래가 말하는 것처럼 달의 이면에는 온통 어둠 뿐이며, 우리의 이상과 트랜드는 고귀한 빛을 잃어가고 있다는 비극적이 서사시. 이 작품은 그것과는 다르다.
일본에 실제로 있다는 물의 도시 야나가와를 배경의 소재로 삼았다.
어중간한 상태를 견딜 수 있을 만한 사람, 회색의 상태도 앞으로도 찾아올 회색의 상태에서도 그럴 사람. 말하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잘 듣고, 혼자 있기보다는 남들과 같이 있는 쪽을 좋아하는 주인공 '다몬'은 스승님의 부름을 받고, 이 도시를 찾는다. 수로를 끼고 집들이 있는 평온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마을에 희대의 사건이 숨어 있었는데, 노인 몇몇이 몇일동안 실종되었다가, 아침에 자신의 집에서 깨어난 일이었다.
실종된 동안 몸도 기억도 도둑맞은 셈인데, 그 이후의 기억이란, ‘평온한 핵 같은 게 생겨서 늘 거기 바짝 붙어 있는 듯한 기분.’,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자기들이 마땅한 곳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것을. 거대한 의사가 존재하고 그에 합류해 들어가는 느낌’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실종되어 있는 동안 몸도 의식도 수로를 따라 흘러가 어떤 창고에 집결된다. 시종일관 모니터로 누군가의 수술 장면을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흑백 필터이기 때문에 피의 섬짓함 같은 것은 희석되었겠지만, 적나라한 것은 별반 덜어내지지가 않는 그런 장면.
애어른, 여자남자 미추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도둑맞은 동안'.
이 경험은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인간이 얼마나 기억을 마음대로 수정할 수 있는지 통감하게 한다. 그때 분명히 다몬은 일행의 도둑맞은 동안의 모습을 보았다. 그 녹색의 걸죽한 혹은 복잡한 유기체 같은 그것을 보면서 그는 이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직 많이 있다고 생각하며,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텐데도 지금 여기서 다시 돌아온 작중 기자 본인을 앞에 두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했다고 생각한 인생도 대부분 자신이 날조한 망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
‘도둑맞은 동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고, 푹 잤다는 생각만 든다!는 경험자의 이야기. 아울러 덧붙이는 다음과 같은 말....
“모든 사람이 우주 여행을 할 수 있게 되면, 다들 그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게 될 겁니다. 제 생각엔 그것하고 똑같은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 못했던 것은 경계로, 갑자기 할 수 있게 된다. 할수없을 때는 어떻게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단 말이죠. 비결이 뭔지 알 수 없어, 그게 엄청난 일처럼 여겨져요. 그러나 일단 성공하고 나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 중 하나가 되고 말거든요. 특별히 음미할 일이란 생각이 안 들게 됩니다. "
친했던 친구와 다른 반이 되었을 때, 전학 갔을 때, 가업을 잇는다며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그때까지 가깝게 지냈던 사람이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었을 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