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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 장정일 단상
장정일 지음 / 행복한책읽기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내 생각이 변해 간다 혹은 굳어간다, 혹은 나이를 먹는 증거다, 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다음과 같은 점들 말이다. 장정일의 독특한 생각과 라이프 스타일에 어떤 것은 궤변 이상으로는 의미를 부여하기가 힘든 것, 내가 장정일 마누라였다면 1년도 못 채우고 이혼했겠다 싶은 것.
그러니까 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고, ‘괴짜구나, 파격미가 있구나, 발상 재밌구나’ 뭐 이랬었다는. 그럼에도 옮겨온 구절들...
"해변가의 모래밭에서 햇볕을 쬐거나 물장구치기, 산에 올라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는 거나 절 구경을 하는 것, 강아지나 고양이와 뒹굴며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맛있는 음식이나 술을 마시며 담배를 피우는 것, 공원의 벤치에 누워 햇빛에 물든 나뭇잎의 변화무쌍한 푸름을 즐기는 것, 낯선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며 이야기하는 것, 분홍신을 구해 신고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갈 정도로 춤을 추는 것,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도록 세 끼 식사를 걸러가며 사랑하는 사람과 긴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온종일 입맞추는 것 등등. 음악은 좀 다른 경우에 속하지만 책이나 영화에서 훔치고자 하는 즐거움은 앞서의 즐거움을 대신하는 빈약한 대체물일 따름이다. 열거한 즐거움들을 이웃과 함께 나누거나 다른 사람들도 누릴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확고한 원칙과 각오만 되어 있다면 철저히 개인적으로 사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오직 개인적인 만족과 즐거움만을 위해 주위에 눈을 돌리지 않고 사는 일이, 민족과 국가의 이름을 빌어 개인적인 사욕을 키우는 사람들보다 더 신뢰가 간다."
"마빈 해리스라는 꽤 저명한 인류학자는 <음식문화의 수수께끼>라는 책에서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다.’고 장담을 한 바 있다. "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많은 해석이 있어 왔지만, 나에게 영화란 명확하게 규정된다. “두 번 본 것”만이 영화다. 한번 보고 만 것은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길거리에서 우연하게 목격하게 된 교통 사고와 같은 것. "
"또 다른 탈주의 방법으로서 수면의 리듬을 바꾸는 것은 사회적 고립의 가장 중요한 수단 들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의 내적 시계는 취침과 기상 시간에서 조금의 변화밖에 용납하지 않는 커다란 규칙성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거나 단계가 늦는 경우, 일상적으로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이때 몇 시간 앞서거나 늦는 것이다. 단계가 앞선 것은 20시나 21시로 잠을 앞당기는 것에 해당하는데, 이것은 오히려 사회 질서에 극도로 순응하거나, 삶의 어려움에 복종하거나, 아니면 잠속으로 도피한다는 징후이다. 반대로 단계가 늦는 것은 밤을 지새우며 밤에 어떤 활동을 추구하고, 매우 늦게 또는 새벽에 잠자리에 들고 낮에 잠을 자는 것으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사회 생활의 리듬과 양립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단호한 의지나 어떤 필요성에 의해 많은 창조자들이 영감을 되찾기 위해 밤의 침묵이나 불면의 순간을 이용하여 단계의 늦음을 나타낸다. (...) 평생 고용주의 노예로 살기로 작정한 사람만이 일찍 일어난다.
- 천재와 광기, P브루노(동문선) -
"핸드폰에 벨소리로 저장해 놓는 음악들은 모두 잡음이다.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른다. 그게 어떤 것이건, 그게 음악으로 들릴 리가 없을 게 분명한데도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음악을 잡음으로 만든다. 대체 그 잡음들을 들려 주면서, 당신은 당신이 어떤 사람으로 비쳐지기를 원하는 거야? 나는 뚜~뚜~뚜~ 하는 단순한 신호를 좋아한다. 그 계측 가능한 신호음은 음악을 똥으로 만들지도 않으며, 당신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도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