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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인문학 - 클레멘트 코스 기적을 만들다
얼 쇼리스 지음, 이병곤.고병헌.임정아 옮김 / 이매진 / 2006년 11월
평점 :
33~34쪽
국가가 어떤 이유에서든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에 관심을 두게 될 때마다 쓰는 방법은 항상 똑같다. '훈련'이 바로 그것이다. (...) 복지 정책이 이런 식으로 흐르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란 일반인들과는 뭔가 다른 존재, 즉 능력이 부족하거나 별 가치가 없는 사람들, 또는 이 두 가지 문제를 모두 가진 존재라는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편견에 기초한 복지정책은 그 사회에 매우 분명한 이득을 가져다 준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쥐꼬리만한 임금으로 부려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시키면서 말이다.
(...) 인문학을 부자와 중산층이 독점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으로 만들어 놓은 채, 그저 훈련만 시킴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을 계속해서 순종적인사람들로 묶어놓는 것이 가능해진다. 가난한 사람들이 때때로 물건을 훔치거나 심지어 다른 사람을 해치는 사건(이것도 대개는 그네들 사이에서 발생한다)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교육받지 않은 가난한 사람들이 세력들에게 경제적이거나 정치적인 위협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172쪽
가난의 이유에 대한 비니스의 대답 속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진짜 이유는 바로 '가난한 사람들은 움직일 수는 없기 때문이라는 현실 진단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진단은 거꾸로 그들만 움직여질 수 있다면 가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암시가 된다. 즉,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비니스는 직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196~197쪽
인문학과 성찰적 사고, 그리고 정치라는 세 가지 개념을 하나로 통합한 말이 많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한 공적인 인간 세계의 기질이나 경향을 잘 나타낸 '자기 통제'만한 개념이 없는 것 같다. 인류가 주어진 운명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던 상태에서 벗어나 '자치'를 실행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정치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 그 역사를 '자기 통제'의 개념에서 추적해낼 수 있다. '자기 통제'라는 개념 속에는 인문학, 평온함, 그리고 인간의 삶에서 지워낼 수 없는 어려움들을 성찰을 통해 극복하는 것 등과 같은 뜻들이 담겨 있다. '자기 통제'는 무력에 맞설 수 있는 방어 수단이며, 진정한 '힘'에 대한 정의이고, 인간다움 그 자체이다.
418쪽
사실 우리는 눈송이들만큼이나 차이가 나면서도 눈만큼이나 흡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