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보수 일기 - 영국.아일랜드.일본 만취 기행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온다 리쿠 씨네 집에는 나무가 하나 있는데, 이 나무에는 주렁주렁 탐스러운 소설 열매가 열린다. 하루키도 그렇고, 가오리 씨도 그렇고, 소설 아닌, 에세이도 잘 나오던데, 온다 리쿠만 없다고 불평하면서, 아마도 소설 나무에서 열매 따는 것도 벅찬 나머지 다른 산문들은 쓸 시간적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첫 에세이가 나와다는 소식에 득달같이 사서 읽었다.
공포의 보수 일기,,  

최근 1년 중에 국내 번역된 것 빼고, 온다 리쿠 작품은 다 읽었는데, 그중에서도 제목이 뭐 이래,, 싶으나 내가 좋아하는 작품, "삼월은 붉은 구렁을" " 흑과 다의 환상" 이 있다. 이 때와 유사한 의아함에 빠지고 만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알아보든가~ 하는 것 같은 제목하고는 정말 온다 리쿠 당신은... 당신답네.  

2년전 네 살짜리와 생후 60여일된 아가까지 있는 주변머리임에도 불구하고, 국제도서전시회에 초청작가로 온다 리쿠가 온다는 말에 연이틀(하루는 사인회, 하루는 간담회) 삼성역으로 가 출근도장을 찍고 했었다. 

간담회 때 온다 리쿠는 자신이 하늘을 나는 교통 수단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 상기된 얼굴이었던 것도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래서 그랬구나 하게 된다.


이 책에서 보면, 온다리쿠는 글을 쓰게 된 뒤로 여행에 대한 생각이 가장 많이 바뀐 것 같다고. 일상 탈출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지만, 느긋하게 망상을 하러 가는 것이 주된 목적이 되었다고.

이야기를 지어서 먹고 살고 있으니, 평소에도 망상은 한다. 매일 똑같은 회로를 써서 생각하다 보니, 아무래도 마모되게 마련이고, 이윽고 경직되어 에너지가 늘 똑같은 부분만 통과하게 된다고. 또 그렇게 해서 나온 망상도, 기상천외한 것은 이야기로 꾸미는 데 노력을 요하기 때문에 자꾸만 쓰기 편한 것, 실용적인 것만 우선하게 된단다. 그러면 이미지가 빈곤해져 죄 이미 어디서 본 것만 같고, 난 이제 글렀구나, 하고 한숨을 쉬고 싶어진다단다. 아, 그렇군요. 당신도 절망하는 나날이 있군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작가가 여행을 많이 하는 것은, 평소 앉아서 하는 일이니 변화가 없는 단조로운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또 시간을 융통할 수 있는 직업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다들 여행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

라고 말하는 온다리쿠는 취재차 떠나는 영국 아일랜드 기행을 통해서 몇년후 영국과 일본의 전통이 혼합된 문화를 갖고 있는 가상의 나라 "V.파."가 나오는 작품 <네크로폴리스>를 낳은 것 같다.  

여행이 몇년 후 작품으로 지불이 된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가 그렇게 무서울 수 없었다. 끊어지지 않고 완벽하게 이어지는 선이 무서웠고, 군더더기 없는 플롯 바깥쪽에 있는 뭔가가 무서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데즈카 오사무 세계의 상층부에 있는 신의 시선이 무서웠던 것 같다.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에는 아주 높은 곳에서 인간을 내려다보는 냉엄하고 무색투명한 존재가 있다. 그 냉엄함이 어린 마음에도 무섭게 느껴졌던 것이리라. (중략)

그러나 논픽션이나 에세이의 경우는 다르다. 그곳에서 신은 그야말로 만물에 보편적인, 투명하고 냉엄하며 인간은 상상도 할 수 없이 높은 곳에 있는 존재이다. (중략)

나는 허구의 힘을 믿지 않는 작가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허구이기에 진실을 그릴 수 있다는 역설을 인식하지 못하고 ‘현실은 허구를 넘어섰다며’며 현실과 겨룬다든지, 허구 밖으로 나가 현실에 어중간하게 발을 담근다던지. 내 눈에는 ‘현실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은 되레 허구가 갖는 강한 힘을 부정하는 일처럼 보인다. "

"소재를 찾으러 가는 사람도 있을테고, 취재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처음 전업 작가가 됐을 때는 직접 여행지에서 본 것, 들은 것을 소재로 이용했는데, 근래에는 직접적으로 소재를 삼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오로지 뭔가 재미있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 돌아다닌다는 생각이 든다. "

"이상하게도 아이디어나 이미지는 늘 수면 밑에서 어른거리는데, 그것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은 우연히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다.

잡을 듯 말 듯 잡히지 않는다. 모양이 잡히지 않아 애가 바짝바짝 탄다. 그래 놓고 일단 잡히면 세세한 부분까지 한눈에 보인다. 그렇기에 그 순간부터는 기쁘지만, 그때를 제외하면 거의 언제나 어두운 절망감에 시달리며 지낸다.

“다나베 세이코가 그것을 일컬어 ‘고양이 쓰다듬는 것 같다’고 쓴 것이 인상에 남아 있다. 고양이가 거기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러나 고양이는 좀처럼 순순히 쓰다듬게 해주지 않는다. 손을 살며시 뻗어 고양이를 쓰다듬는다. 그러면 고양이는 훌쩍 달아나버리고 손 끝에 감촉만 어렴풋이 남아 있다. 쓰다듬게 해주면 그나마 나은 편이고, 이쪽에서 다가가는 낌새를 알아차리고 손이 닿기 전에 달아나버리는 일도 왕왕 있다. 소설을 쓴다는 행위는 그런 느낌과 비슷하다는 이야기이다. 동감이다.

여행을 떠나면 고양이가 내내 곁에 있으면서 쓰다듬게 해 주는 것 같다. 게다가 한 마리가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고양이가 다가온다. 그렇기 때문에 고양이가 쓰다듬는 황홀감에 빠져 기분이 고조된다. "


"나는 별로 치밀하게 생각해놓지 않고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 글을 쓰는 타입이다. 내내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처음부터 구상은 완성되어 있었습니까? 세세한 부분이 완성되도록 복선을 깔았습니까? 인터뷰에서 그런 질문을 자주 받는데, 거의 감에 의지해서 쓴다고 설명해도 이해를 못한다. "


"쓰지다 히데오 왈, 각본을 쓰는 것은 땅속에 묻힌 것을 파내는 일과 비슷하다. 그곳에 뭔가가 묻혀 있다는 것을 안다. 끄트머리는 보인다. 파다보면 무늬가 있다든지 돌기가 있다든지 한다. 그러나 전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끝까지 파봐야 안다. "


"하늘을 나는 교통 수단을 좋아하지 않는 탓도 있지만, 내가 철도를 좋아하는 것은 연속되는 감각이 좋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항상 중단되고 얼기설기 기워지고 누군가에게 시간을 빼앗긴다. 하나의 선을 이동하는 철도 여행은 자신의 인생이 연속된 한 순간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흔치 않은 기회다. 차창 밖 풍경에는 온갖 이미지가 숨어 있고, 평소 쓰지 않는 뇌의 부분을 자극한다. 밤의 차장에는 자신의 솔직한 맨 얼굴이 비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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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3 16: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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