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활의 발견
함성호 외 지음 / 현실문화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지방에서 나고 자란 어린이들이 대개 그러하듯 어릴 적 나에게도 서울은 환상의 도시였다. 서울에 친척을 둔 큰 축복(?)으로 내가 서울에 올라와 제일 처음 본 것은 초등 학교 1학년 때 갔던 창경원이다. 그리고 매번 방학을 맞을 때마다 외할머니와 외삼촌을 졸라 한 군데씩 6.3 빌딩, 과천 서울랜드(자연 농원), 남산 식물원 같은 데를 좋아라 하며 갔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릴 적에 본 것 중에 기억 속에 오래도록 아름답게 각인된 장면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밤에 난곡 근처를 자동차로 지나면서 차창 밖으로 보았던 금강석을 깔아놓은 듯한 백열 가로등 마천루였다. 산동네에 사는 사람들에겐 그 곳이 고단한 일상의 터전이었을 텐데, 그렇게 낭만적이고 서정적으로 봐서야 쓰겠냐고 누군가 일침을 놓을지도 모르겠으나, 서울에 뿌리를 두지 않은 어린아이에겐 참 아름답고 따뜻한 정경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내가 이제 서울이라는 부박한 토양에 얕으나마 뿌리를 내리고 살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서울 생활'을 조망한다는 이 책을 허투로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책의 제목이 서울 생활의 발견이니까, 서울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의' '식' '주'의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쉽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책에는 '주(住 : 살 주, 宙 : 집 주)'로서의 의미 접근을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다. 책의 앞부분은 60~70년대 당시 서울 중림동 흑석동 산동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내가 내 집을 지으려고 간선 도로에서 들어가는 골목길과 계단을 만들지만, 내 뒤에 이사오는 사람들은 이것을 딛고 올라 간 곳부터 제 나름의 계단 골목길을 연장시킨다.'던 작가의 산동네론(?)이 그럴듯하다. 달동네 골목의 길트기 방식을 '함께 사는 사회'로 연결시킨 것이다.

다음, 진양교의 '천변 시대'에서는 청계천 복원을 놓고 그것이 꼭 긍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는 이야기를 한다. 청계천변의 황학동 시장이 전면적인 도시 재개발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도시에서는 보기 드물게 '땅에 뿌리를 내리는 방식으로 서울의 척박한 땅에 적응한 계층들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고, 그런 계층을 지켜내는 것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현대적인 재개발 수법보다 훨씬 더 도심의 공간을 사람이 살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공간으로 바꾸는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나만의 북한산'에서는 정능에서 나고 자란 필자의 북한산 정경을 해치고 있는 도시 미관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이 담긴 글이다. 자아 형성이 '본다'는 기능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라캉의 이론에 도입하여 글을 풀어가고 있다. 필자는 정릉의 시민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의 모태를 북한산에 두고 있다 북한산을 보기가 점점 어려워짐에 따라 필자의 정체성에도 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다음으로 '북악스카이 웨이'를 세속 도시의 심리 지리라 하여 학술적이며 미학적으로 분석한 글은 솔직히 너무 어려워서 읽는 둥 마는 둥 하였다. 마지막으로 전용석, 윤정미의 '인사동 기억들 - 인사동 자영업자 인터뷰'는 인사동에서 자영업을 하는 세 사람과의 인터뷰이다. 그들에게 인사동은 전통의 자리가 아니라 생업의 장소이고 좋았던 옛 시절의 지나가버린 장소로 소개되고 있다.

이 책의 서문을 보면, 이 책이 서울을 보되 고급 미학으로 논의하고 역사 편찬의 시각으로 정리하는 것을 피했다고 했다. 하지만 평범한 독자가 보기에 전반적인 이 책의 내용은 '서울 생활의 발견'이라고 소박한 이름을 붙일 만한 성질이 것이 아니었던 듯하다. 즉 사진가 김기찬과 강상훈의 서울 산동네와 아파트 등 주거 형태를 다룬 사진 작품, 그리고 그들과의 대담이 읽기에 좋았고, 마지막 장에 인사동 점포 상인 세사람과 의 인터뷰가 생생하게 와 닿았을 뿐 나머지 내용들은 서문에 밝힌 내용과 달리, 다분히 고급 미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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