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 세계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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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날개로 소설가의 약력을 본다. 법대 교수다. 법학 전공자가 소설이라니, 이거이거 혹, 범죄 심리물이 아닐까 하는 뚱딴지 같은 생각도 해 보았다. 얼핏 유사한 제목의 프랑스 소설 <밑줄 긋는 남자> 때문이었을까. 가볍게 통통 튀는 내용이 전개되리라 여겼는데, 독일 소설인 이 <책 읽어 주는 남자>는 황달에 걸려버린 병약한 15세 소년과 그보다 스무살 정도의 연상의 여인과의 정상적이라 할 수 없는 애정 행각부터 전개된다. 음 만만치 않은 이야기들이 쏟아질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점인 1950년대 말에서 60년대 즈음이다. 전쟁 세대와 전후 세대와의 갈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치즘이나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회상의 문제이기보다는 인간의 자존심과 약점 그리고 한 사람의 인생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만남이란 무엇인가를 보여 주려 하는 것이 이 소설의 중심에 있다고 본다.

소년의 연상의 애인 한나는 자신이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문맹이라는 것을 소년에게 끝까지 숨기려 하였다. 모든 사건의 발단은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자신이 문맹이라는 것에 대해 그녀는 대단한 수치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훗날 자신의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이 사실을 감추려 하다가 그녀는 종신형을 선고받기까지 한다.

제목이 책 읽어주는 남자인 것도 여인이 문맹이라는 사실과 관련된다. (소년은 그녀에게 사랑 행위의 일종으로 책을 읽어 주었던 것이다.)이 책은 3부로 나뉘어져 있고, 그 부분들은 각각의 큰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주인공 소년과 한나(그보다 훨씬 나이 많은 여인)의 사랑과 그녀의 사라짐, 2부는 한나가 소년을 만나기 전 과거와 관련된 기소 사건으로 몇 년 후 법정에 서게 된 것과, 그 법정을 참관하게 된 대학생의 소년, 3부는 교도소에 있는 그녀를 위해 책 내용을 녹음해 보내 주는 주인공.

소년일 당시의 여인에 대한 사랑은 무조건적인 헌신이었다. 그러나 이제 외적으로는 어느 정도 성공을 한 상태의 성인이 된 소년 남자는 교도소에 있는 첫사랑의 여인에게 책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만을 보내 줄 뿐, 면회는 고사하고 편지 한 장 보내지 않는다. 왜? 소년은 그렇게 함으로써 여인을 과거 속에 묶어놓고, 그 이상화된 모습만을 사랑하려 하는 것이다. 결국 여인은 석방 예정일 새벽에 목을 매달아 자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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