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여자 명진 읽어주는 시리즈 1
한젬마 지음 / 명진출판사 / 1999년 9월
평점 :
절판


서점에 가서 보면 무척 탐은 나는데 끝끝내 내 돈으로는 사들게 되지 않는 책이 있다. 이 책을 펼쳐드니, 정말 좋은 그림들 옆에, 읽기 좋은 편집으로 마련된 글줄들이 있었는데, 왠지 보기 좋고, 듣기 좋고, 향기 좋은 꽃과 같은 이야기들만 풀어놓을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런 거라면 굳이 이 책이 아니더라도, 다른 어디에도 너절하게 많으니까. 그런데 어쩜, 이 책 안의 정말 잘 골라 놓은 그림들에 내 감성이 승복하고 주머니가 열리게 되는 상황이 결국 벌어졌다.

어떤 평론가가 이 책에 대해 평을 해 놓은 것을 보니, 남들과 다른 세상에 대한 관찰력과 애정으로 삶 속의 테마들을 그림을 빌어 얘기한다고 했지만, 글쎄 퍽이나 남다른 관찰력과 생활의 통찰력을 반영한 것인가, '에이~! 그건 아니다.' 라는 말부터 나온다. 뭐랄까. 그녀의 글들은 확 트인 너른 벌판을 앞에 두고 나즈막한 산자락을 뒤에 둔 아름다운 경관을 갖춘 전원 주택에서의 그림 같은 삶에나 어울릴 법하다. 가슴 한쪽이 떨어져 나가도록 애틋하기 그지없는 사람과 함께, 흔들리는 촛불 하나를 테이블 위에 켜고, 예쁘장한 머그컵 안에 향이 좋은 커피를 담아, 한 모음을 입 안으로 밀어 넣고 나서 곁들일성 싶은 글귀들이었다. 이러하니, 그녀가 국내 최초의 전문 미술 엠씨라 했던가, 정말 그림을 잘 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방송'은 잘 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의도는 아마도 그림과 관련된 개인 일화나, 개인적인 생각들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조명해 보고, 그렇게 엮여진 이 책이 독자들에게 예술의 또다른 이름인 '그림'이 친숙하게 다다갈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담긴 것으로 사려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글은 글들대로 겉도는 듯, 그럼에도 그림은 그림대로 퍽 잘 다가온다. 글과 그림의 매치가 나에게 유독 잘 안 되었던 건 아마도 그녀가 들려주는 목소리에 진심으로 빠져들지 못하기 때문인가 보다. 책의 뒷부분에 부록처럼 '젬마가 가져온 이국의 향기'라는 챕터가 있다. 그림 감상 하다가 뜬금없이 왠 이국타령이냐 싶었지만, 이 부분도 어찌됐든 눈은 즐겁다. 저자가 3주간 신혼 여행을 겸한 유럽과 미국 미술관 여행에서 찍어온 사진이라고 했다. 흠... 부럽군...

이 책이 마음에 드는 점은 '미술 작품 감상' 하면, 흔히 보아왔던 외국의 명화뿐만 아니라, 국내의 군소 작가들의 좋은 작품이 많이 소개되었다는 점이었다. 김성호의 '가을의 복병', 박항률의 '유혹', 강운의 '밤으로부터', 김재홍의 '거인의 잠', 김원숙의 '균형잡기' 라는 제목이 붙은 그림들이 이 책에서 만난 멋진 그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