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링
쭝청 지음, 김미란 옮김 / 다섯수레 / 1998년 9월
평점 :
절판


딩링이라는 사람을 처음 알았던 것은 <천안문>을 읽고 난 다음이었다. 여든 하나의 삶을 산 그녀의 인생은 독자가 보기엔 너무나 곡절이 많았다. 한 사람에게 인생의 희비의 순간이 그토록 천차만별로 오락가락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노릇일 정도였다. 그렇다. 딩링에게 자꾸만 마음이 갔던 것은 그녀가 이룬 문학적 성취가 존경스러워서라기 보다는 그녀의 전설과도 같은 일생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딩링은 1904년 망해가는 청제국 말기에 태어났다. 상하이와 베이징을 전전하며 무정부주의 사상도 접해 보고, 스물에 만난 남편과의 신혼 시절(달콤한 신혼이라고 표현하기 뭣한 것이 이들은 공산주의 사상과 생활의 실천을 위해 서로 떨어져 생활을 하는 둥 그립고 애틋한 시기 또한 보내게 된다.)에는 낭만적 감상주의 풍의 소설 < 소피의 일기>를 써서 세간을 집중시킨다.

그러던 중 1931년 국민당과 공산당의 결렬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계기로 남편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그녀는 점차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방향을 바꾸어간다. 원래 혼자 있기 좋아하고 남과 어울려 움직이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 작가 딩링이었지만 점차 단체의 임원으로, 주임으로 직책을 맡게 되면서 상황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한 선전 집회에서 강연도 하고 통솔도 하는 사람으로 바뀌어간다. 어제의 문학 소녀가 오늘의 전사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당시 그녀에게는 어린 두 남매가 있었지만, 아이는 어머니에게 맡기고 그녀는 이제 투사가 된 것이다. 그렇게 대중 사업의 탁월한 간부로써, 바쁘게 시간은 흐르다가 1960년,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에 그녀는 알량한 엘리트 작가주의를 표방한다는 이유로 갑자기 가혹하게 탄압을 받기 시작한다. 시골의 농장에 보내지게 되고, 예닐곱살짜리 소녀들에게 머리채를 휘어잡히고, 외양간에서 자는 둥 모진 고문과 탄압 감시의 나날을 십오여 년간 보내게 된다.

왜 이렇게 갑자기 그녀가 우파로 몰리어 수모를 당하게 되었나. 그것은 그녀가 젊은이들에게 한 다음과 같은 말 때문이었다고 한다. '신발을 만드는 일이라면 백 켤레를 만들어도 똑같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 오직 한 켤러만 잘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창작은 다르다. 오직 한 작품이 좋은 것은 괜찮으나, 백 개의 작품이 모두 비슷해서는 안 된다.'

1976년 드디어 문화 대혁명의 기간은 끝나고 새로운 중국의 역사를 맞이하게 되면서, 딩링에게 입혀진 혐의도 벗겨져 다시 옛날의 주목받던 작가 딩링으로 돌아간다. 그녀의 나이 이제 황혼, 70살에 말이다. 전국 각지에서, 서방에서 그녀에게 인터뷰가 쇄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수난받았던 작가 딩링은 공산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리고는 대부분 어려운 시기에 자신을 지탱하게 해 주었던 신념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딩링은 온갖 풍상을 겪은 지난날을 회고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사람이란 차라리 무명유실(無名有實)한 것이 낫지 절대 유명무실(有名無實)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명실상부(名實相副)한 것조차도 좋지 않다. 당시 나의 명성은 너무 눈부셨고, 그로 인해 재난이 뒤따른 것이다.'

이 시점에서 김진애의 에세이에서 보았던 구절이 생각나는 건 뭘까. 여자가 일을 일로써 하려면 넘어야 되는 몇 가지 고개들. 중에 이런 게 있다. 일단 일을 좀 한다 싶고 눈에 띌 만하면 '너무 크게 조명을 해서 더 크게 자랄 제목을 지레 말려 버린다.' 라는 구절이다. 물론 이 책을 통해서는 딩링이 겪은 그 모든 파란의 세월이 단지 그녀가 여자였기 때문에 겪었다고 보여지지는 않지만, 웬지 내 눈엔 다소간의 의심의 소지는 있어 보인다. 문혁을 계기로 기다렸다는 듯이 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여성 작가에게 내려진 비난과 죄목들이라니.

그러나 그녀는 이 모진 순간(느닷없이 우파로 몰리는)에, 난리를 당하고도 의연하게 대처했던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했다고 한다. 우리가 힘들 때 정녕 우리를 버티게 해주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모성'이라는 것을 또한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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