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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학 ㅣ 빛깔있는책들 - 즐거운 생활 115
조성우 / 대원사 / 1992년 1월
평점 :

지금에 와서 추억을 해보면 나도 한때나마 글 조각이라면 가리지 않고 미친 듯이 읽어대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요즘엔 세련된 디자인에 흥미진진한 내용이 담긴 서적들이 넘쳐나지만 그 시절엔 지금처럼 읽을 거리가 풍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을까. 중학교 1, 2학년 때로 기억한다. 그때 우리 집에 그런 책이 있었다. 그 책은 엄마가 시집올 때 마련해 온 '가정 백과 사전'이었다. 책 한 권에 두께가 10센티도 족히 넘었다. 거기엔 요리, 인테리어, 수공예, 육아 기타 등등 가정 생활과 관련된 내용이 수록되었는데, 맨 마지막 부분에 관상과 손금 그리고 꿈풀이에 관한 내용으로 꾸려져 있었고, 나는 그 부분을 너덜너덜 걸레가 되어 떨어져 나가기 일보 직전까지 들여다보았던 것 같다.
그렇게 읽은 것들을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입이 간질거려서, 나는 학교에 가, 친구들의 손금과 관상을 봐 주곤 했다. 복채도 없이..... 그렇게 손금과 관상을 핑계로 말을 터서, 새학기가 시작되는 봄에는 친구들을 여럿 사귀었던 것 같다. 해마다 변하지 않는 레파토리라, 책에서 본 내용을 거의 외울 정도였다. (지금은 그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래서 당시 내 별명이 'XX 도사'였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인생이 너무나 뜻대로 안 풀린다 싶을 때는, 자신의 앞날이 너무나 궁금해서, 살풀이하는 심정으로 사주 운세 풀이 같은 걸 시도해 보게 된다. 나의 경우 노골적으로 점집을 찾아다니는 건 아니고, 인터넷으로 오늘의 운세 같은 걸 보던지 토정비결을 찾아 해 보는데 요즘엔 웬만한 건 다 유료라서, 그나마 자제한다.
그런데 얼마전에 대원사에서 나온 빛깔있는 책들 시리즈 가운데 수상학이 있는 걸 알았다. 대원각의 빛깔있는 책들 시리즈는 말그대로 '빛깔 있는' 사진 자료가 풍부하고 민속학과 관련된 한국의 정취를 담은 책들이 잘 나오기로 유명하다고 들은바 있었다.
저자는 '수상학'이란 손금을 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손의 대체적인 모양, 골격 형성, 피부 형태 손가락 형태 등을 보고 여러 유형으로 세분화하여 한 사람의 체격, 적성, 수명, 성격 등을 다양하고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이 책은 유형별로 분석과 풀이의 사례가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사례에 해당하는 사람의 사진, 직업과 나이를 제시하고 그 사람의 손 모양과 손금을 보여 준다. (사례에 해당되는 사람으로, 유명 인사도 있는데 고르바초프와 옐친이다.)
수상학을 연구하고, 이를 십분 자신의 운명에 반영해서, 애경사에 미리 대비하겠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보면, 이 책에서 건질 것 하나 없을 것이다. 글쎄.... 수상학이란 더는 거창해질 수 없는 그저 손을 통해 자신과 남을 판단하는 통찰력의 일환일 뿐이라 여겨진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심심풀이 재미로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수상학이, 그것을 통해서 '고려 수지침'이 개발된 정도의 그 가능성에 비해, 아직 연구가 미미한 단계에만 와 있다고 아쉬워한다. 예부터 '운명을 아는 자는 하늘의 뜻을 알게 되고, 하늘의 뜻을 헤아리는 자는 운명 앞에 숙연한 마음으로 반성하고 참회하게 된다'고 했다. 내 손에 담겨진 나의 운명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며 '앞날의 길'이란 것에 대해 진지하고도 두려운 마음으로 더듬더듬 만져본다. 실로 오랜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