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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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내놓은 작품인 <자기 앞의 생>을 읽고 나서, 로맹 가리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자기 앞의 생>에서 나오던 주인공 꼬마 모모나, 한때는 예쁘고 젊어 '궁둥이로 벌어먹고 살았던' 뚱뚱하고 늙은 유태인 로자 아주머니, 맹인인 하밀 할아버지, 여성과 남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롤라 부인으로 등으로 미루어 짐작턴데 이 소설집, <새들은 페루~> 또한 가엾은 사람들의 배신과 슬픔에 대한 이야기일지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일까, 알라딘에서 이 책을 사고, 반년이 흐르도록 차마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새들은 왜 하필 페루까지 가서 죽었는지, 어쨌는지, 받아들이기 기꺼운 사연이 숨겨져 있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막상 책을 잡고도 끝까지 읽어내는 데 또한, 한 달이라는 시간을 필요로 했다. 이 작가는 왜 이렇게 씁쓸한 입맛이 도는 열여섯 편의 단편 이야기들을 지어냈나, 너무 지나친 페이소스다. 마치 최근 박찬욱 감독의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을 봤을 때의 느낌과 많이 일치한다. 물론 이 책은 앞의 영화처럼 잔인한 미학으로 승부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쓴웃음을 짓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는 이 소설의 내용에서 착안한 듯한 장면이 하나 있다. 그것은 <벽-짤막한 크리스마스 이야기>이다. 벽을 통해 흘러나오는 (혼자서 흠모하던) 옆집 여자의 환락에 차오른 듯한 신음 소리가 사실은 비소에 중독 되어 죽어 가는 소리였던 것이다. 영화에서도 위중한 병을 앓고 있는 누나의 신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 장애자인 남동생이 맛있게 라면을 먹는 장면과 이 신음 소리를 오해하여, 이 소리를 듣고 자위를 하는 옆집에 사는 네 명의 청년이 하나의 씬에서 처리된다.

각설하고, 이 책 속의 단편들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렇다. '인간, 그것도 허영과 위선적인 면모를 갖는 인간이라는 종에 깊이 천착한 작품들'이라고. 이 작품을 읽으면서 보고 싶지 않은 보아야 했고, 믿었던 무엇엔가에 뒤통수를 얻어맞는 듯한 감정에 사로잡혔던 것도 같다. 즐겁고 유쾌하진 못하지만, 그렇다고 불쾌하지도 않은 그런 남다른 여운을 내게 오랫동안 남겨준 그런 작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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