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뽀로 여인숙
하성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8월
평점 :
품절


조경란의 <나의 자주빛 소파>와 하성란의 <삿뽀로 여인숙>은 작년에 무지 읽고 싶어했던 소설들이다. 이 책들을 이야기하는 서평들과 광고에 혹했다고 해야 할까. 작가들의 약력이 너무 인상적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해서 두 소설 중에, 조경란의 소설부터 서점에서 구입해서 읽었다. 그런데 기대와는 어긋나게 소설에 몰두가 안 되어서 애를 먹었었다. 겨우 단편 몇 개만 골라서 읽었을 뿐이었다. 조경란의 소설이 주는 소리없이 강한 위력을 뿜는 그 우울한 맥빠짐 때문에, 곧이어 하성란의 삿뽀로 여인숙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집 근처에 있는 도서 대여점이 점포 정리를 했다. 거기서 <삿뽀로 여인숙>을 발견하고 헐값에 사와서 읽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나에게 참 좋았다. 왜 좋았을까. 주인공 진명이가 어디서 많이 본 친구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쌍둥이 동생이 고3때 죽고, 그 이후로, 집에서 버스로 여덟 정거장이나 되는 학교까지 아무 생각없이, 심장이 터지도록 늘상 뛰어서 다니는 진명이. 더는 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휴식 시간엔 문제집만 풀고, 퉁퉁 불은 라면을 먹고, 고3 이라는 시간을, 반쪽 같던 쌍둥이 동생의 죽음을, 묵묵히 견디는 그 모습. 진명은 선명의 죽음을 계기로의 생활들 때문인지 성적은 많이 올랐다지만, 대학 진학엔 실패를 하고 작은 회사에 경리 보조 사원으로 입사를 하게 된다.

한참 조명을 받는 이쁜 스무살을, 자신이 늘 신던 낡은 운동화처럼 남루하게 보내고 있다. 웬지 남같지가 않다. 으레 소설 속에 나오는 스무살이 그러하듯 뭔가 그럴싸한 척하는 느낌, 그런 게 이 주인공에게는 없다. 그래서 한없이 이 소설에 끌렸던 거 같다. 사실, 이 소설 속에 줄거리는 너무나 많은 우연과 같은 만남으로 연명해 간다. 하지만 이런
우연 남발이 소설 전체의 빛을 죽이지는 않는다.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 진명이가 동생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 그리고 동생과 연루된(직, 간접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헤어지고 혹은 그들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혹은 삿뽀로라는 공간을 직접 찾아가는 식으로 '운명'이라는 불리는 그 시간들을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발걸음의 고즈넉함에 더 큰 울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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