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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 욕심이 많은 나는 그렇다. 책을 사서, 읽는 것보다는 소유하는 데에 더 마음을 쓰는 사람같다. 그런 나는 남에게 책을 빌려 주는 일도 굉장히 인색하다. (못됐다.) 하지만 예외도 있어서, 국내 소설책 만큼은 내가 한번 읽은 것은 다른 사람들과 돌려보고, 나중에 돌려 받지 못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 이유는 국내 소설이 소장 가치가 없어서가 결코 아니다. 다른 장르의 책들과 달리, 국내 소설책은, 내 속에서 불러 일으키는 반향이 똑같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는 느낌을 준다. 왠지 같이 돌려보고, 같은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준달까?
각설하고,(나는 왜, 국내 소설 서평만 쓸라치면, 작품과는 관계없는 사설이 길어지는지 모르겠다.-.-;; ) 전경린의 이 소설은 삼십대 부부의 불륜에 대한 것이다.
후기에서 작가는 말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합법적으로 제도에 편입되어 기념비가 되는 사랑보다 삶을 무너뜨리고 얼굴을 다치며 내쫓기는 사랑에 매혹되었다.....중략....그리고 가급적 삶과 연루되지 않는, 관능적이고 부유하는 사랑을 미화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쾌락과 감상과 욕망의 비루함과 가벼움과 무상한 환멸을 기록하게 되었으니, 사랑이 왜 지리멸렬한 삶의 가랭이를 벌리고 그 살점 속에 뿌리를 박아 서로의 악성 종양을 만들어가야 하는지 이 글을 쓰면서 새삼 숙고하게 되었다.'라고.
나는 이 작가 후기가, 이 소설 전체를 이야기 해 준다고 생각한다. 본래, 작가는 작품으로만 말을 해야 하고, 기타 등등의 인터뷰나 후기에서 작품에 대해 중언부언 덧붙이는 일은 작품의 미완성을 작가 스스로 시인하는 행동이 되고 만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예외로, 이런 감성적인 멜로 소설(?)은 작가가 어떤 생각으로 이 소설을 썼는지, 무척 궁금해져서 어떤 땐 작품에 앞서 후기부터 읽어보곤 한다.
이 소설에는 주인공 '나'말고도, 우울하고 꿀꿀한 여러 유형의 '여자의 일생'이 나온다.
먼저, 소설의 초반에 잠깐 등장하는 주인공 '나'의 남편을 사랑하는 인쇄소 여직원 영우, 그녀는 이종 사촌오빠와 사랑에 빠지고, 사촌 오빠의 약혼녀가 자살하는 데 계기를 마련해 준 인물이었고, 주인공 부부의 두터운 애정에 틈을 벌이는 결정적인 사건의 단초를 제공하는 인물이다.
두 번째, 주인공 부부가 이사간 시골 동네의 어느 빈집, 안주인이었던 부희, (그녀는 과거의 인물이며, 주인공의 앞일을 암시해 주는 인물이다.) 그녀는 집에서 첫아이 아빠와 일을 벌이다가, 현재의 시아버지에게 발각되고, 시아버지를 살해하게 된다.
셋째, 휴게소 여인, 비구니가 되고자 절에 들어갔다가, 스님에게 내침을 당하고 속세에서 만난 전과자와 강제로 살다가, 남편이 교도소에 들어가는 걸 계기로 그와 이혼을 하지만, 현재 출감한 그에게 시시종종 구타를 당한다. 한편으로는 트레일러를 모는 한 가난하고 착한(?) 유부남과 순수한 사랑을 나눈다.
넷째, 주인공 '나'의 어머니, 어머니는 여고 시절에 만나 사랑하게 된 선생님인 아버지와, 원치 않은 임신 끝에, 친정에서 강력히 반대하는 불행한 결혼을 한다. 결혼 직후엔 시어머니로부터 모진 시집살이를 겪다가, 끝내 주인공인 딸마저 홀대하게 된다. 주인공은 어릴 적에 7년 동안, 엄마, 아빠 다른 자매들과 떨어져 할머니와 단둘이 살게 된다. 주인공은 어린 가슴에 엄마에 대한 원망을 키우며 자란다.
소설 전체적으로, 씁쓸한 뒷맛이 느껴지는 내용이다. 사랑이라는 것의 본질은, 이다지도 비루하고 환멸스러운 것이었나....... 마음 한 구석이 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