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의 모험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영표 옮김 / 하문사 / 1994년 10월
평점 :
절판


누구나 일상 생활을 살아간다. 최영미의 시대의 우울에서였던가, 삶은 때로 우리를 속일지라도 일상 생활은 우리를 속이는 법이 없다고 했다. 때맞춰 먹여주고 문지르고 닦아주기만 하면 결코 우리를 배반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일상 생활의 와중에 모험을 꿈꾸는 한 청년이 이 소설 속에 나온다.

일상 생활의 모험이라는 제목 자체에 아주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이 소설. 일상 생활에서 모험이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인공 청년은 일상 생활에서 모험을 꿈꾸었던 죄(?)로 좌충우돌 남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도 상처를 입다가,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 소설의 첫 문구는 이렇게 시작된다. '당신은 소중한 친구가 자살했다는 편지를 받았을 때의 고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 여기서의 친구가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데 즉, 주인공은 등장할 때부터 이미 죽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구성은 살아남은 '나'라는 존재가 죽어버린 모험가 친구와 얽힌 일담을 회상하는 구성 방식이다.

주인공 청년에 대해 좀더 이야기를 해 보자. 이 청년 사이키치는 '20세기 후반의 철학적 명상가'라 할 수 있다. 특히 노인과 동물들에게는 자상한 소년이었다. 하지만 그는 범죄자적 소질도 가지고 있었다. 작가가 그리고자 했던 주인공의 모습은 바로 '모랄리스트'의 면모였다. 말그대로, '도덕주의자'라는 말은 아니다. 여기서의 모랄리스트는 '인간에 대해 근본적으로 사유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사이키치는 이렇게 '나'에게 말하곤 했다. '나는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는 것을 좋아하지. 본질적인 문제는 모두 스스로 생각해보고, 자기만의 해답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해.' 즉, 그는 백과사전적인 지식에 의존하고 모든 사유에 있어서 역할 분담을 체계가 확실한 현대 사회와는 괴리되는 인물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의 머리만으로 생각해 낸 원칙과 도덕은 두 가지 성격을 갖곤 한다. 먼저, '반사회적인 성격'이 그것이다.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비인간적인 지배 원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년은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기 위해 많은 일탈 행위들을 저지른다. 둘째는 '행동적인 성격'이다.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도덕 원칙은 글자로 나타낼 수가 없다고 한다. 왜냐 하면 궁극적인 삶의 모랄은 인간의 근본적인 삶에 대한 방식이지, 글자로 나타낸 어떤 지식이 그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란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사이키치는 소설가인 '나'의 소설을 '갑옷과 투구를 걸친 무거운 글자들'이라고 폄하하고, '나'인 소설가가 자기 기만에 빠져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사이키치는 사상의 실천을 보이기 위해, 연극계에 투신하려 하며, 억지로 외운 대사를 앵무새처럼 외치는 연극을 타개하고 스스로 연극의 혁신을 구하기 위해, 재벌의 딸과 결혼을 감행한다. 성적으로 완벽한 결합을 이루었던 열여덟 살의 아내 히미코를 버리고 말이다.

일상 생활에서 모험을 꿈꾸었던 한 청년은 결국 스물다섯살의 나이에 죽음으로 삶을 완결지었다. 사상은 행동에서 나온다는 말을 실천하고 싶었던 치기어린 그 인물은 자신이 그토록 외치던 몸으로 보여 주는 혁신적인 연극 한 편을 끝마친 것이다. 이 소설은, 방금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나에게 다음과의 질문을 던져 주고 있는 것 같다. '모험의 끝은 죽음이었다. 그렇다면 죽음이 두려워 당신은 모험을 포기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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