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 한길로로로 6
얀코 라브린 지음 / 한길사 / 1997년 3월
평점 :
품절


한길 로로로 시리즈에서 나온 인물서들은 일단 표지 장정이 근사하다. 인간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한 헌사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있다. 루카치의 유명한 <소설의 이론>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서론 격으로 쓰인 것이라 한다. 그 책의 마지막 대목은 다음과 같다고.

"도스토예프스키는 단 한편의 소설도 쓰지 않았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다른 세계에 속한다."(루카치의 말인즉, 소설에서 본질은 시간과 함께 주어지는데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는 시간이 별 의미가 없기 때문. 따라서 그의 소설은 시간이 변수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소설과는 또 다른 장르라는 것.  1997년 슈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 그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서사시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나이 28세 때, 그는 공상적 사회주의 비밀 단체의 회원으로 기고 활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총살형을 언도 받게 되었다. 1849년 12월 22일 아침 3인씩 2조로 처형하게 돼 있는데, 앞 조가 총살되고 뒷 조에 속했던 그에게 총구를 겨누었을 때 황제 니콜라이 1세로부터 처형 중지령이 통달된 것이다.

이렇게 죽음 직전까지 가보았던 그는 이후에 인간의 선악 문제, 도덕의 이율 배반, 사회적 역사적 문제에 방대하고 심오하게 천착하여 극도의 내면 심리까지 파헤치는 불후의 명작들을 집필하게 되었다. 그 책을 읽고, 나는 그의 작품도 작품이려니와, 도스토예프스키라는 한 개인으로서의 삶과 인생에 대해 주목을 하게 되었고, 그의 일대기를 제대로 담아낸 책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도스토예프스키 관련 서적들은 출판사<열린 책들>에서 다수의 좋은 책들을 고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작품보다는 도스토예프스키라는 한 인간의 개인사에 더더욱 치중했던 만큼, 일대기와 사진 자료가 많이 수록되어 있는 책을 고르려 했었고, 한길로로로 시리즈에서 나온 이 책은 나의 구미를 제대로 맞추고 있었다.

이 책은 그가 작품을 쓰던 당시 상황과 작품을 서로 연결하여 기술하고 있다. 예를 들어, 투옥되어 사형 판결을 받았다가 가까스로 풀려난 후에 그는 <학대받은 자> <죽음의 집의 기록>을 집필한다. 첫결혼에서 실패한 후, 도박에 빠져 있을 당시에는 <지하실의 수기>를, 재혼을 하였을 때는 <죄와 벌>을, 마지막이자 세 번째 부인으로 그가 죽는 날까지 함께 했던 내조자 안나를 만나,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았을 시기에 너무나 모순되게도 다시 도박에 빠지게 된다. 이 때 그의 작품 <악령>과 <백치>는 그가 도박 자금을 담보로, 원고료부터 가불 받고 쓰기 시작한 작품들이다. 기한 내에 탈고하지 않으면 저작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계약에 서명하면서까지 그는 갈급히 도박 자금을 마련하려 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잘 읽히는 것은 그의 평생의 화두가 돈이라는 것에 있지 않을까.

이 책의 마지막 <작가 일기> 집필에 관한 부분에서는 그의 신앙관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신을 떠받치는' 러시아 민중의 종교적 본능을 신뢰했다. 그런 그는 신에 대한 믿음으로 보편적인 사랑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보편적인 죄책감 또한 강조하였던 것이다. 죽음 직전까지 그는 신과 인류에 대한 주제에 골몰했던 것으로 보인다.

도스토예프스키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도박이다. 그의 도박 행위는 전형적인 도박 중독자의 일면을 갖고 있었다. 도박 중독자들은 억제할 수 없는 도박 충동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 '비결'이나 '전략'을 믿는 특징이 있다. 그는 단순히 '정신을 바짝 차리고 흥분하지 않음으로써' 룰렛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돈을 땄을 때 계속하지 않고 도박장을 떠날 수 있는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던 그는 결국, 천문학적인 수에 가까운 돈을 잃었다. 둘째, 그는 시시종종 간질 발작을 일으켰다. 그의 작품 <백치>에서도 간질병 환자인 주인공이 등장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소설가들은 자신의 인터뷰에서 곧잘 이렇게 이야기한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아무데나 펼쳐 놓고 읽기 시작합니다. '라고 마치 글쓰는 사람들에겐 도스토예프스키의 저작들이 성경이라도 되는 양 싶게 말이다. 한 줄 읽기만 해도 영감을 주는 소설이라니 말이다. 그러나 참, 내 주제에 그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주고 싶은 마음을 어쩌지 못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의 힘은 그의 문체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가 겪어냈던 지병과 굴곡많은 체험들에서 나왔던 것일 거라고. 그리고 나는 이 책과의 만남을, 다음과 같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로 대신할 수 있겠다. '유일한 심리학자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증언으로부터 나는 무언가를 배워야 했다. 그를 발견한 것은 스탕달을 발견한 것 이상으로 나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행운이었다.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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