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산 1
가오싱젠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북스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정말 읽기에 쉽지 않은 책이다. '나'로 시작하던 서술이 어느덧 행위 주체가 그녀로 옮겨지고, 또, 당신('나'의 분신이며, 상상 속의 '나'이기도 하다.)으로 이동한다. 중반쯤을 읽다가, '나'로 시작하는 1인칭 시점과 당신으로 시작하는 2인칭 시점이 교차로 반복되어 장을 꾸려가고 있음을 정말 뒤늦게 알아차리게 되었다. 게다가 분량도 만만치 않다. 삼백 페이지 남짓되는 책이 두 권에 이른다.

나는 이 책이 여행기 소설이라고 소개를 받았다. 다시 말해, 이 책이 2000년도 노벨 문학상을 받았기 때문에 골라 읽게 된 것이 아니라, 특별히 멋진 중국 여행기 소설을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소설이 갖는 문학적이거나 정치적인 위상에 대해서는 메스컴과 미디어들과 학계 충분히 할말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더이상 덧붙일 지식이 없다.

다 읽고난 이 소설의 실체는 문학 종합 선물 상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중국 원시림으로의 여행을 꿈꾸게 하는 여행기로서, 문학을 사랑하고 그에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들려 주는 문학 이론서로서, 중국 지역 특히 서남부 지역의 풍물 및 설화 민요 소개집으로서, 보편적 남녀의 애정 행각 행각을 다룬, 연애 소설로서, 각각의 장르가 한 소설에서 제 목소리들을 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폐암 선고를 받았던 어떤 중년의 남성이 있었다. 그러나 폐암이 진단이 오진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리고 곧 죽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많은 이승에서의 삶이 남아있다는 것에서 깨달은 바가 있어, 이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남은 앞으로의 새로운 삶에 대한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그리고 여행의 목적지는 영산 곧 '영혼의 산'이다.

이야기는 주로 영산을 찾아가는 노정의 길에서 엮어진다. 어린 시절의 회상을 넘나들고, 여행길에 만난 소수 민족들과, 원시 종교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마지막 부분의 장에서 보여진 책 제목이기도 한 '영산'의 모습이다. '모든 것이 하얀 얼음의 세계 같은 상태, 즉 완전한 고독'으로 묘사하고 있는 이 세계 말이다.조정권의 '산정 묘지'가 라는 시가 연상되었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 얼음처럼 빛나고, /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를/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던 그 시구 말이다.

최근 나는 부쩍 이 갑갑한 직장 생활을 하루속히 접고 싶단 생각을 한다. 다 접고 여행을
떠났으면 하는 간절함. 언제나 그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기만 한 꿈이다. 어쩜 이 여행기 소설을 통해 대리 만족을 얻으려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나에게 이렇게 얘기를 했다. '여행이 낯선 곳에 자아를 열어 두는 행위라면, 삶 그 자체야 말로 여행이다.'라고. 사소한 일상이라도 여행지에서의 낯선 떨림처럼 대하라는 큰 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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