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 문성현 - 창비소설집
윤영수 지음 / 창비 / 1997년 5월
평점 :
품절


'착한 사람 문성현'.

이 책의 제목에는 어느모로 보나, 주인공의 신체적 장애를 암시하는 말이 들어 있지 않다. 그러나 책을 펼치고, 잠시 후엔 주인공 문성현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뇌성마비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착한 '이라는 수식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난감해진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착하다'는 말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집의 현관을 나서는 순간 경쟁 사회임을 실감하게 되는 세상의 문법으로 읽어 낸 '착함'이란, 특혜받는 계층으로 안락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요긴한 조건들의 '결핍됨'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나는 그런 의문이 들었다. '왜 작가는 착한 사람의 모델을 신체 건강한 보통 사람이 아닌 불구의 몸을 가진 문성현을 통해 보여 주려 했을까?' 그건 아마도, 곧이곧대로 착한 사람, 다른 사람을 곤경에 처하게 하는 것을 진심으로 미안해 하고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치며, 과실을 고쳐 가는 착한 사람을 성한 사람들 중에서는 찾기가 어려웠던 때문은 아닐까?

요즘 세상에 착한 사람은 드물다. 심지어 나조차도, 얼마나 시시때때로 다른 사람을 난처하게 하고, 세상의 명리, 번듯한 무언가를 좇아, 이리저리 휩쓸렸던지. 그러나 그저 이렇게 착한 심성을 끝까지 지키고 삶을 마감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 읽는 것만으로도, 그러한 따뜻한 인간됨을 만나는 것만으로 나는 감동을 받았다.

(이 책을 읽고 난 영향이 컸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12월을 마지막으로 다니던 회사를 조금은 홀가분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그만두었다. 곧이곧대로 본성을 잃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그리고 예전의 너그러움을 되찾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

내가 그동안 학교에서 읽고 배웠던 <백치 아다다>나 <벙어리 삼룡이>, 그리고 <난장이가 쏘아 올린...>에서도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겪는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그 소설들에서는 주인공의 '불구의 몸'을 시대의 암울한 분위기에 대한 일종의 상징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불구의 삶이 얼마나 불편하며, 그들의 삶이 얼마나 외로운가, 그의 불편한 신체에 대해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대한 얘기들은 접하기가 어려웠다.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무리 뛰어난 소설가라 할지라도 자기가 직접 겪거나 보고 들은 일이 아닌데도 마치 그 사람 속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실감나는 이야기로 풀어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작가는 '인간 문성현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그 불쌍한 삶 속에서 어떤 성취를 일구어 내는가를 그리고 그 소중한 인간적 성취와 더불어 길지 않은 삶을 어떻게 마무리하는가'까지 보여 주고 있다. 나는 이 소설의 작가가 정말 위대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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