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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엄마는 모딜리아니를 좋아했다. 그가 그린 여자를. 불행해 보여서 마음에 든다고 했다. 목이 길고, 안구가 없는, 불행해 보이는 여자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그녀들은 어쩌면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돈 많은 남편이 있었거나, 자랑 삼을 아이가 있었거나, 그래서 그녀들 모두가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또는 불행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리 엄마가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도.
그녀의 엄마는 화가였다. 괜찮은 아내였고, 두 딸의 괜찮은 엄마였고, 게다가 요리도 잘했다. 엄마는 딸들이 자신과 비슷한 인생-가정을 이루고, 아내나 엄마가 되어-을 살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38세 미혼이지만, 사귄지 6년이 되어가는 깊이 사랑하는 골동품 가게와 헌책방 두 가게를 운영하는 돈이 좀 있는 애인이 있다. 글의 중반에 스리슬쩍 애인이 자신의 딸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미루어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유부남이다.
애인이 유부남이라는 것이 작품 전면에 부각되지 않지만, 세상이 인정하지 않을 커플로서의 갖힌 듯한 폐쇄적인 느낌에 깊이 시달려 하는 ‘나’의 심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나’는 자신을, 애인의 인생의 사랑방을 빌려 더부살이하고 있는 사람처럼 느낀다. 그의 옵션으로, 그의 인생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격리되어 있는 것처럼, 현실에서 떨어져 나와 있는 것처럼. 애인은 친절하지만, 친절하면 할수록 ‘나’는 자신이 가공의 존재인 것처럼, 그의 공상의 산물인 것처럼 느낀다.
애인과는 주기적으로 여행을 떠난다. 필리핀의 섬 등등 해외 국내 가리지 않고. 한번은 애인이 맘조르카 섬에 둘이 가서 살자는 이야기를 한다. 그 섬에는 가본 일이 없다. 하지만, 애인과 함께라면 거기서도 잘 해내 갈 수 있으리란 것을 안다.
그들은 그곳에서 꿀처럼 행복하리라. 파도처럼 자유롭고, 바람처럼 고독하리라.
‘나’와 애인의 계획은 완벽하다. 아무 문제없다. 다만, 그날이 영원히 오지 않으리란 것을 ‘나’가 알고 있다는 그 한 점만 제외하면.
사치스럽고 달콤하고 가냘프고 고독한 ‘나’
한없이 다정한 애인에게 매몰되어 가는 자신을 보면서 애인과 헤어지려 하고, 죽으려도 해본다. 우산 디자인과 스카프 염색을 주로 하는 화가인 나. 일에 빠져 있는 시간을 그러저럭 좋아한다. 그러던 나는 가을 학기부터 대학의 강의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좋은 돌파구가 될 수 있을려나.
‘나’는 자신이 가르치는 입장에 서려 한다는 것에 우선 놀란다. 그렇지만, 학생 시절에, 미래가 없는 중년 여성이라 여겼던 여선생이 자꾸 떠오른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