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거리스 러브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한희선 옮김 / 창해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사랑에 설탕이 없다. ‘사랑’이 들어갈 자리에 ‘인생’을 넣어도 된다. 시대에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

여기 열 명의 여자 각자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여자들이 안고 있는 특유의 고민과 질병에 공감한다. 질병은 여성에게 인내의 한계를 알려 주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 이들의 이야기에는 어느 것 하나 행복한 앞날이 펼쳐지겠구나 하는 느낌으로 끝나는 것이 없다. 하지만, 당신의 결단에, 서툴게나마 품어보는 용기에 동지로서 박수를 보낼 따름이다. 평화롭게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왔다고, 누가 자부할 수 있나, 전쟁이 없는 게 곧 평화는 아닐 거다. 

평화와 행복을 가장하지 말자고, 껍질을 깨뜨리고 밖으로 나오자고 말하는 것 같은 이야기들.

그녀의 냉장고 _ 골다공증

도회에 사는 스물다섯살의 아름다운 여자, 그런데 골다공증이 있단다. 그것은 흡사 그녀가 사는 방처럼, 겉보기에는 아름다워 사람들의 눈을 끌지만, 냉장고 문을 열면 안쪽에는 커다란 공허함-인스턴트 냉동 식품 외엔 먹을거리가 없다. 살 찌면 안 되니까.-이 가득 들어 있다.

나는 말야 어릴 때부터 점점 못생겨지는 엄마의 모습을 봐왔어. 게다가 아빠에게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어. 엄마는 일도 취미도 없이 매일 텔레비전 앞에서 뒹굴며 과자 따위를 먹을 뿐이었지. 점점 엄마의 얼굴이 변했어.

그런데 당신이 온 거야. 처음 봤을 때 어쩜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나 했어.

그녀란, 골다공증을 앓는 여자의 열 살 연상 새엄마.

추하거나 약하거나 쓸모없는 것은 매장된다. 그 원인이 뭐든 간에. 그것이 도태다. 그녀는 결코 도태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게 틀림없다. 지방을 쌓아두지 않을 것, 동성에게도 이성에게도 매력적인 여성이 될 것. 나도 그렇게 해온 것이다. 장난이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한 싸움이었다.

새엄마는 아름답고 상냥하게 행동하는 것으로 행복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나날을 보낼 작정이었다. 하지만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일을 열심히 하는 남자’는 변함없이 일에 열중해서 젊은 아내나 딸에게는 관심이 없다. 그리고 남편에게 젊음으로만 어필했었는데, 나는 ‘젊음’을 잃어가고 있다. 열 살 어린 딸의 냉장고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냉장고에도 제대로 된 것이 들어 있지 않다.


돌고래 요법 _ 돌발성 난청

그 여자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담임을 몇 번이나 했었지만, 어느 반이나 반드시 그런 아이가 있었다. 부잣집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교풍에 익숙해지지 못하는 아이나, 어떤 계기로 성적이 오르지 않게 된 아이. 그리고 부모에 대한 반발심으로 일부러 공부를 안 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 여자는 지금은 그런 아이를 도와주려고 했던 게 잘못이었다고 느낀다. 이렇게 귀가 안 들리게 된 후 비로소 노력하라는 말의 잔혹성을 알게 되었다.

억지로 착한 사람인 척 하는 바람에 무리가 갔다. 그래서 귀가 들리지 않게 된 것이리라. 그녀는 그렇게 해석했다. 그래서 자진해서 외톨이가 되어 고독한 일상에서 평온을 찾았다. 타인과 관계하지 않으면 자신의 약한 면을 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름 하늘색 _ 알코올 의존증

일류 고등학교의 열등생인 주인공은 알코올 의존증이 심하다.  현에서 최고 명문인 이 학교에 모인 우수한 아이들이 그녀를 친구로 보아 주는 것은 그녀의 소꼽친구 사키가 있기 때문이다. 사키는 귀엽다. 사키는 사람이 좋고, 센스가 좋다. 그들은 장장 13년간 소꼽친구다. 사키와 같은 고교에 들어가기 위해 중학교 때는 죽어라 공부했다. 우리 집은 아빠가 없다. 어려서는 할머니에 의해 키워졌다. 할머니가 이모집으로 가시게 되고, 엄마와 둘어서만 생활하게 되니까 처음에는 좀 쓸쓸했다. 하지만 가족애로 묶여 있던 부분이 해방되는 것을 느꼈다. 방이야 어질러져 있다 한들 사람이 죽는 것도 아니고, 열여덟에 그녀가 그 나이에 이렇게 술을 마실 수 있게 된 것은 엄마도 술을 아주 좋아해서 어릴 적부터 때때로 같이 반주를 마셨기 때문이다. 마시는 동안에 시시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재미있게 느껴지고, 화장실에 갈 때마다 평형 감각이 이상해지는 것을 자각한다. 그녀에게는 류이치라는 남자 친구가 있다.

고등학생과의 섹스에만 연연하는 삼류대학생 류이치. 처음에는 그의 바보스러움에 질렸지만 요즘에는 그런 그에게 편한함을 느낀다. 사실 주인공은 우월감을 남자 친구에게 갖고 있다. 당연히 자신이 훨씬 머리가 좋은 좀더 나은 인간일 거이다. 해서, 이 남자는 절대 사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만나게 해도 둘이 사랑에 빠질 일은 없다. 그래서 그를 친절히 대할 수 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그녀는 공부에 대한 노력을 그만두기로 했다. 머리가 나쁘다. 그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받아들이기로 했다. 필사적으로 공부하고자 했던 마음을 포기하니 갑자기 주위를 냉정하게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구나. 이런 사람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좋은 기업에 취직하거나 관료가 되어 나라를 움직이는 거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 묘하게 감탄했다.

그들이 사회라는 체스를 두는 사람이고 그녀나 류이치 같은 인간이 체스의 말이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돈을 잔뜩 써서 면밀하게 마케팅 회의에 회의를 거듭해 만든 상품을,  같은 인간이 ‘이것 굿인데,’ 라고 말하면서 사들이고, 그렇게 해서 경제라는 녀석이 발전하는 것이다.

사키는 최고로 강한 체스를 둘 수 있는 사람이다. 그녀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째서 친구가 되어버린 걸까. 어째서 좀더 빨리 깨닫지 못했을까. 좀더 빠른 시기에 그래서 고교 입시 때 떨어졌다면 지금의 이런 기분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사키가 그녀를 보는, 먼 나라의 굶주린 아이를 보는 듯한 눈.

같은 여자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여자인 그녀는 평생 사키의 친구로 남을 수 있으니까.

 

저울 위의 작은 아이 _ 비만

'나'는 화려한 동급생들과 친구 되기에 성공했고, 패션 잡지를 매번 샅샅이 읽으면서 공부햇다. 조금씩 체중을 줄이고 화장품과 구두를 사들였으며 남자와 잘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배웠다. 친구 미나미는 남자들이 말하기를, 별로 미인(비만 타입)은 아니지만 아주 상냥하고 성격이 좋다. 그애와 있으면 남자들은 안심을 한다. 도회적인 타입의 여자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려면 구실이라든지 데이트 코스 같은 걸 생각해야 하지만, 그녀는 방긋방긋 웃으면서 들어주며, 화를 내거나 짜증내는 일이 거의 없고, 언제나 만나도 그녀는 기분이 좋다.

미나미는 말한다.

“세상에 맛있는 음식과 재미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데, 그걸 즐기지도 않고 굶고 있다니.” “있지 정말 재미있어. 세상은 인기를 끌고 싶으면 살을 빼라고 여자들을 부추기잖아.하지만 마르든 뚱뚱하든 미인이든 추녀든 인기 없는 여자는 인기 없어.” “맞아 나한테는 내가 없으니까.”

“있지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 사랑받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은 하나도 없어. 다들 사랑을 받고만 싶어해. 이야기를 들어주고, 긍정해주고, 머리를 쓰다듬고 귀엽다고 말해주길 바라지. 난 그걸 해주는 거야 단지 그것뿐이야.”

그녀는 생각한다. 살이 찌더라도 미나미처럼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게다가 미나미도 그저 ‘인기가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이 뭔가를 넣지 않으면 그녀는 그저 껍데기 뿐이다. ‘내가 없다’는 말은 그런 의미일까. 그들은 자각을 못했지만 병들어 있다. 누가 우리들을 선별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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