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평균 수명대로 산다면, 난 살아야 할 날이 살아온 날보다는 조금 많지 않을까. 그러니까 아직은 젊다고 말할 수 있을 거다. 누군가, 나이 지긋한 양반께서 "세상 사는 게 딱 귀찮다. 늙어서 좋은 점은 세상을 귀찮아 할 수 있어서다" 라고 했다는데,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 나는 - 아니 혹여 나이를 먹더라도- 삶의 범위를 확장시켜 보려, 애쓰면서 사는 노선을 택하려 할 것 같다. 책읽는 행위에 있어서 말이다. 근데 그렇게 애쓰려 노력하다면, 소위 관심권은 아니지만, 세상돌아가는 것에 무심해지지 않기 위해 관심 있는 척 애쓰며, 읽게 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이런 소설처럼 사랑과 일상의 본질을 좀더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책은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손이 가는데, 사실 이 부류는 흔히 사람들이 명명하기로는 시간 때우기용 독서다. 근데, 그거 아나, 우리 삶에서 시간 때우기용 소설은 분명 필요하다. 그것의 최고봉은 각자의 취향마다 다 다르기 마련인데, 나의 경우 대체로 온다 리쿠와 전경린 쯤.   

실은 별점이 5점 만점에 3.5점이다. 4점은 소설에 대한 점수고, 0.5점을 깎은 건 편집에 대한 것.

오타가 작렬한다. 그리고 제본도 형편없으니(험하게 읽다보면 책이 절반으로 박쪼개지듯 쩍하니), 냉정한 눈으로 보지 않으면, 작품마저도 덩달아 허접해보이게 될 거다.  일일히 기록할 시간에 밑줄긋기 워드 작업이나 하련다.

 

p.20

삶이란 아귀를 맞추는 것을 단념하고 해독을 유보한 채 다만 자신의 진실을 경험해야 하는 것이다. 혜규는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는 이유가, 이 세계에 새겨진 원전과 원전 사이에서 저마다 하나씩의 이야기를 만들어 신에게 바치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p.136

"생물학자들은 사마귀들이 교미하는 동안 암놈이 수놈의 머리를 먹어 치우는 이유를 오랫동안 몰랐어. 사실이 발견된 지 50년이 지난 뒤에야 수놈의 머리를 제거하면 교미 능력이 증진하다는 사실을 알아냈지. 머릿속에 있는 식도하신경절이 복부의 교미 운동을 방해하는 거야. 수놈 사마귀는 머리가 먹혀야 사정한다는 설도 있어."

 

p.147

"간통죄가 엄연히 있다. 안 됐지만, 이 나라에선 그릇이 더 중요하지."

"몇 개의 나라에만 남아 있는 법이 이 나라에서 유독 완강해. 형식이 더 중요시되다 보니, 이 나라에선 삶이 너무 박약해. 삶의 많은 내용이 이중성 속에서 유실되지. 사랑은 국가에서 통제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 법과 제도와 질서의 문제 이전에 개인적 진실의 문제야. 극히 사적인 범주지. 제도와 질서가 사랑을 보존할 수도 없고 사랑을 박탈할 수도 없어. 우리나라의 간통법도 정서적으로 편들어 주는 정도이지 실제론 법이 성인들의 사랑을 통제하지는 못해. 진실 앞에선 종이 호랑이일 뿐이라고."


p.273

"저마다 제 갈 길을 가면서 흩어져도 근본적으로 함께인 것이 더 진정한 유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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