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나를 부르는 숲
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몇일전 “빛의 속도로 일을 하시네요.” 라는 말을 들었다.

요즘 내가 붕붕거리는 벌처럼 일하게 된 데에 화근이 되는 말이다. 

당시 그렇게 무섭게 속도를 내서 해야만 했던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는데(하루 휴가 쓰려고), 그 말에 순진하게(?)도 탄력 받고는 그 이후로도 일의 의뢰한 사람의 기대치를 만족시키기 위해 열심히 팽이를 돌렸다. 오늘 문득 바보짓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계절이 계절이라 굳이 내장산이 아니고, 지방 국도로 차를 몰고만 나가도, 산의 때깔이 정말 다르다. 산 중에 으뜸은 가을산이라는 생각을 한다. 사향 냄새가 나고, 빠삭빠삭하며 톡 쏘는 가을 대기. 푸른 하늘, 햇빛에 선명하게 반짝이는 나뭇잎들을 올려다보며, 숲길을 걷는 게 요즘의 로망인데. - 이걸 실천하는 데 발목 잡는 것들이 마치 수학 공식처럼 꾸역꾸역 발생한다. 

나를 부르는 숲.

참 근사한 제목이다. 약간은 멜로 분위기가 나면서, 수목원 같은 데서 광합성하는 사람들의 무리가 떠오르게도 하는. 사실 그런 느낌 때문에 빌 브라이슨의 이 책과 나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을 읽고, 빌 브라이슨의 이 책이 두둥 존재감을 짙게 드러내었다. ‘나’를 읽지 않으면 후회할 걸.  


살아남을 수 있다는 보장을 전제하고, 일생에서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정면으로 죽음과 대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지.


나는 그냥 민둥민둥 심심한 산들을 좋아하지, 절경에다가 험악한 악산을 등반하는 것은 좋아하지도 즐기지도 않는다. 험악한 악산이라, 기억나는 등반은 지당하게도 13년 전 2박 3일 코스로 지리산 등반이다. 같이 갔던 선배들이 사고 위험이 많은 험한 등반이 될 거라고 엄포를 놔서, 크고 작은 봉우리를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매순간을 긴장하며, 발을 디뎠던 기억이 난다. 엄청난 양의 땀을 쏟고, 갈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마어마한 물을 마셔대고, 배낭은 무겁고, 힘들게 정상에 올라서서 고목에 걸린 운무를 내려다보며 철푸덕 앉아서 담배 한 가치를 피우는 사람들이 무지 부러웠던 기억도. 잠은 텐트를 치고, 별빛 아래서 잤다. 한여름이었지만, 겨울 파커를 껴입고, 냉기가 올라오는 바닥에 이랑곳하지 않고, 눈감기가 무섭게 잠이 들곤 했다. 

노고단에서 시작해 돼지평전, 토끼봉, 새석평전을 거쳐 뱀사골(당시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라마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난 후라 많이 유명해져서 찾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천왕봉으로 해서 마지막 날 산을 내려오다가 진주 어디메쯤, 일듯 사람이 사는 작은 마을을 처음 봤을 때, 그 반가움은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살아 돌아와 만나는 것과 맞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크고 작은 등산 혹은 등반 경험 이후로, 완주! 정상 정복! 이런 데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악산을 정복하는 희열 같은 거 굳이 내가 체험해야만 맛인가, 이런 식(빌 브라이슨의 책을 읽는 등의, 하긴 이 아저씨도 엄밀하게 말하자면 애팔래치아 종주에 성공했다고 보긴 어렵다.)의 대리 만족으로도 감지덕지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책은 지적이고, 우스꽝스럽고, 간결하며, 구비구비마다 기막힌 반전까지 갖추고 있다. 게다가 이 책에서 양장피 겨자 소스와 같은 역은 브라이슨의 등반 동반자 ‘카츠’다.

이이가 산에서 펼치는 대책없는 어떻게 보면 엉뚱한 돌아이 같은 짓. 하하....! 처음엔 브라이슨의 동반자로서는 맞지 않는 우려하는 마음까지 들었으나, 점점 브라이슨에게 뿐만 아니라, 카츠에게까지 감정 이입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등반의 마지막(중도 하차)이 될 것임을 예고하던 날 브라이슨과 카츠의 대화다.

“하지만 나는 술을 좋아하거든. 어쩔 수가 없어. 내 말은, 브라이슨, 나는 그걸 사랑해. 그 맛을 사랑하고 2병을 마셨을 때 취하는 기분을 사랑하고, 냄새와 선술집의 분위기를 사랑해. 나는 음담패설과 주변 당구대에서 공이 부딪치는 소리. 밤에 술집의 어둠 침침하면서 푸른빛 도는 분위기를 그리워했어. 내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의 전부는 TV 디너뿐이야. 마치 만화속의 한 장면처럼 끊임없이 늘어선 그게 춤추며 나한테 다가와. TV 디너 먹어 본 적 있어? 정말 쓰레기야. 그리고 정말 삼키기 힘들어. 그걸 보면 때때로 내가 바보 멍청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된 줄 아니? 지금은, TV 디너를 먹을 수 있다면 살인이라도 저지를 기분이야. 정말 살인을 할 수 있다고.”


그렇게 해서, 그들은 트레일을 포기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시도를 했다!!!!! 어쨌든 많은 경험을 축적했다. 비록 짧은 기간이나마 자랑스럽게도 몸이 날렵하고 튼튼해졌다. 삼림과 자연, 그리고 숲의 온화한 힘에 대해 깊은 존경을 느꼈다. 그게 중요하다.


인생이 그러하듯 트레일 또한, 지겹지만 여전히 이상하게도 그것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 지루하고 힘든 일인 줄 알았지만 불가항력적이 되버리는, 끝없이 펼쳐진 숲에 신물이 났지만 그들의 광대무변함에 매혹되고 마는, 그만두고 싶지만,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싶기도 한 것. 침대에서 자고 싶기도 하고, 텐트에서 자고 싶기도 한 것, 봉우리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으면서도 다시는 봉우리를 안 봤으면 싶은 것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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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11-07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산이 바라다보이는 곳에서 막걸리 먹는 것이 제일 좋아요. 정상에 오르거나 하는 것은 무지 싫어합니다.ㅎㅎ

icaru 2007-11-07 17:23   좋아요 0 | URL
기왕이면, 도토리묵 무침도 껴 주세요 ^^
정상에 오르고 나면, 뿌듯 뭐 이런 맛도 무시못하겠지만, 죽자사자는 글쎄, 산악인이 아니라선지요.흣

2007-11-07 1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07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