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컬렉션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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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공부는 익히 우리에게 두뇌 회전을 가르친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문학은 더 좁혀들어가서 소설은 우리에게 익히 경험하지 못한 삶을 살게 해 준다는 멋과 맛이 있다. 전엔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읽으며 생각한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수학(수식) 또한 우리에게 삶을 받아들이고 느끼며 설계하는 방식을 가르쳐 주기도 한단다. 라고. (아마, 수식을 재인식하게 만든 소설가의 역량 또한 높이 사야 할 것이다.)

20대 후반의 파출부와 그의 열 살 난 아들과, 어느 한 시기에 기억을 멈춰 80분밖에 기억을 지탱하지 못하는 수학 박사, 세 사람의 모습.

간만이다. 이런 느낌.

책을 읽고 있는데, 사방이 조용하다. 일요일 밤 집에서는 메디컬법정드라마에서 양측 공방이 진행 중이었었고, 월요일 출근길 지하철 안에는 사람들로 붐비었다. 그런데 분명 바깥의 소리가 끼어들지 못하는 마음 속의 빈터가 생긴 듯하다.

“아아 조용하군.”

수학 잡지의 현상 문제를 풀어 리포트 용지에 깨끗하게 옮겨 쓰고서 다시 한번 훑어볼 때면 박사는 자신이 도출해낸 해답에 만족하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정답을 얻었을 때 박사가 느끼는 것은 환희나 해방이 아니라 조용함이었던 것이다. 있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할 장소에 정확하게 자리하여, 덜고 더한 여지없이 오랜 옛날부터 거기에 한결같이 그렇게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게 있으리란 확신에 찬 상태.

이 소설은 그러니까, 음 일상 언어가 수학에 등장하는 순간 낭만적인 울림을 띠게 하는 작품이다. 어째서일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힘까지 있다. ‘우애수’, ‘쌍둥이 소수’도 그렇고, 물론 시의 한 구절에서 빠져나온 듯한 수줍음이 느껴진다. 수식이 아름다울 줄은, 몰랐다 예전엔 미처.

"한 가지 의아한 것은 그가 '모른다. 알 수 없다'는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는 점이다. 모른다는 것은 수치가 아니라 새로운 진리를 향한 도표이다."

"그래, 하염없이 걸어도 소수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지. 사방이 온통 모래의 바다야. 태양은 쨍쨍 내리쬐고. 목은 바싹 마르고, 눈은 가물거리고, 정신은 몽롱하고. 앗 소수다! 하고 뛰어가 보면, 그냥 신기루일 뿐.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는 것은 뜨거운 모래바람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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