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 인터뷰 특강 시리즈 3
김동광, 정희진, 박노자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지나가던 A모씨 무슨 책이냐며 관심을 보여서, “거짓말”을 주제로 각계의 사람들을 불러다 인터뷰식 특강을 하고 그 내용을 책으로 낸 거라고 간략 설명해 주자, 이런 말을 한다.

“책 만들기 참 쉽네.”

이 책 만들기 쉬웠을까? 연사가 말한 것을 정리만 하면 되니까, 어쩌커나 책 만드는 사람들 수고의 경중은 논외로 치고, 이 책은 유익했고 재밌었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출전은 기억하고 있다. 장정일의 <공부> 서문에서였을 거다.

말이 좋아 “중용”이지, 사람이 어떤 입장을 제대로 표명하지 않고 중용을 지키는 것은 무식해서(사안에 대해 지식이 없기 때문에)인거라고... 그래서 “공부”를 해야 한다며 블라블라의 포문을 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 나는 내 자신의 모호함과 우물쭈물하는 것 같은 태도에 마뜩해하던 차, 도무지 나란 사람이 명쾌하지가 않은 거. 장정일은 "네가 무식해서 그랬던 거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또 드는 생각, “모호한 것 참아내지 못하는 건, 파쇼가 되는 지름길이다.”


정혜신 편

이 사람의 특강부터 수록된 것(특강 인터뷰 일자 순서로 차례를 구성했겠지만)은 참 적절했다. -지금껏 정혜신을 주말 아침 방송에 고정 패널로 나와서 웰빙 식단을 강조하는 피부과 의사와 혼동하고 있었는데...  첫 장부터 마음 관리가 부족해서 겪는 불쌍한 현대인들이 빠지기 쉬운 딜레마를 잘 짚어 주고 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숨통을 불어넣어주고.


“사람이 모호한 것을 못 참다 보면, 친숙한 것에 매달리고 미리 가지고 있는 단순한 고정관념만 더 강화시키는 일종의 질병 상태가 됩니다.”는 내가 꼽은 명문. 


또 하나, 파커라고 하는 유명한 포도주 감정사가 있는데, 이 사람은 본래 변호사였는데, 아주 섬세하게 발달한 타고난 미각의 소유자라고 한다. 그래서 이 사람에게 세계 최고의 와인 권력이 주어졌고, 아예 이 사람이 포도주에 매기는 등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고 한다.

 결국에는 그 사람의 입맛에 맞춘 포도주가 만들어졌다는 것. 맹목적으로 추종하거나 심리적으로 지나치게 몰입하는 경우를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 




김동광 편

황우석 사태에 대해 진단할 수 있었는데 “과학에 대해 다양한 가치가 부여되지 못하고 오로지 경제 개발을 위한 도구로만 인식되다 보니, 거기에 너무도 쉽게 애국주의와 민족주의가 결합하면서 상승 작용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면역이라고 하는 현상은 나와 남을 구분하는 현상.. 즉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해서 내가 아닌 것이 내 몸속으로 들어올 경우에 그걸 공격하는 현상.. 이것은 생명의 본질.. 그러니까 기술적으로 피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명의 본질과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에 극복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할지도 모름." 


한홍구*박노자 편

자신이 진보적인 인물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역사의 굽이굽이에서 굉장히 진보적인 역할을 했던 백범에 대해서, 안창호와 신채호에 대한 재조명, 역사 교과서 문제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우리 역사 교과서에 소수자 문제가 역사 속에 포함돼야 한다는 건 아주 당연한 건데, 문제는 역사학이 소수자 문제에 관해 쓸 내용을 과연 얼마만큼이나 갖고 있느냐는 것... 예를 들어 역사 속에서 여성들의 모습을 찾아내 역사 교과서에 실을 만한 수준으로 구체화하고 가공하는 작업, 역사 논문화시키고 책으로 내는 작업들이 축적되어 있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여성에 대한 역사가 없음을 지적했다. 장애인에 대한 역사도 없고, 소수자에 대한 역사도 없다. 



“역사 교과서 안에서 여성의 위치가 분명히 격상되어야 합니다. 실제 역사 속에 나타나는 사람들이 거의 남성 일색 아닙니까. 교과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성은 너무나 적습니다. 남들에게 그것도 부정적인 타자들에게 희생당한 유관순이 민족주의적 담론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나타나든지 아니면 왜장을 안고 뛰어내렸다는 논개처럼 실제로 임진왜란 당시 기록에는 전혀 보이지 않다가 17세기 초반에 유몽인 선생이 쓴 내용이 조금 각색돼서 영웅으로 나타나는 정도”


결국 말을 하면서 생기는 거짓말도 있지만, 언급하지 않고, 그냥 입을 닫아버림으로써 생기는 거짓말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무서움을 알게 된다. 그런 식으로 한국의 역사는 친일파들에게 지배당하고, 인권이나 생존권 같은 부분들이 계속 짓밟혀 왔다는 말이다.


“저는 일본과 관련된 역사에서 느끼는 콤플렉스 같은 것들은 우리가 얼마만큼 민주화를 이루고, 평화를 이루고, 지금까지 이룬 경제 발전 위에 평등과 복지를 쌓아올리고 소수자들에 대한 인권을 담아내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거라 생각합니다.”


아차차 그리고 이들의 대화 속에서 알게 된 사실...

호떡집 불났다는 말의 유래. --기니까 생략


김두식 

실제로 강연을 들었더라면 폭소를 연발하며 즐거워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기억을 복원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것이 자기 성찰과 고백이라고 한다. 거짓말 중에 가장 위험한 것은 자기를 속이는 거라고... 자기 기만이 계속되다 보면 나중에는 자기가 누군지조차 잊어버린다. 이런 사람을 정신적 외계인 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살다 보면 이처럼 자기가 누군지도 잊어버리고 정신이 아예 안드로메다로 출장을 떠나는 경우가 생긴다고.


지하철 파업했을 때, 우리들이 흔히 갖는 생각을 지배 계급이 피지배 계급에게 교육이나 선전을 통해서 끊임없이 강자의 입장을 주입하고 강자와 동일시하게 해서 결국 그렇게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도록 세뇌시킨 것과 연관지어 설명한 것이 그럴 듯 했고, 다른 강의자들도 강조한 것이긴 하지만, 다시 반복하자면 합리적인 의심... 근거가 있는 의심을 하자고. 


그런데 다른 강의자들에게서 보다 더, 거짓말 안 하고 사는 것, 거짓말에 속지 않고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느끼며, 잘 해보자! 라기 보다는 되려, '무력감'이랄까 하는 것이 심히 느껴졌다. 거짓말 안 하고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의심하는 것은 바깥으로부터 나에게 주입되는 모든 것을 내 기준으로 재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니까. 그게 좀 힘든가? 그렇게 해서 진실을 말했다치자. 그러나 그 진실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는, 그런 사회니까.

실천을 위해서는 왕따가 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용기의 근원이 될 수 있는 뭔가를 갖는 것이 중요한 듯 여겨졌다. 김두식은 자신에게 그것이 신앙이라고 했다. 나에게는..



정희진 편

 

기존의 사회를 왕따시키자!

이들의 인터뷰 강의 중에서 정희진 선생님 편은 보았다. 현장에서 본 건 아니고 한겨레 문화 센터의 동영상으로, 아무튼 사진과 글로만 상상하던 인물과는 많이 달랐다.( 현장 강의가 주는 재미와 만족일 거다. ) 김미화 씨하고 스텐딩 개그를 해보자는 제의를 방송국 피디로부터 받기도 했다는데, 조금은 촐싹 맞다 싶게 하이톤의 발랄한 목소리. “제가 소심하고 권위에 또 잘 복종적이거든요. 모임에서는 제가 나이가 많아도 회계나 총무를 하고 그래요.” 하던 웃긴 정희진 선생님. 

 

“너의 고통이 내게 지혜와 통찰을 준다거나, 너보다 내가 더 희생자라는 식으로 불행을 경쟁하는 소통 방식, 즉 결핍을 부정하고 메우려는 생각보다는 너의 결핍과 나의 결핍을 우리 자신의 일부로 긍정하고, 서로의 타자성과 연대하고 소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자 또는 다른 언어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아쉬운 것. 정희진 선생님은 강의 중에 그런 말을 한다. 자신은 강의할 때, 자기 강의를 한번 들은 사람과 다섯 번 들은 사람이 있다면, 후자에 맞게 강의를 한다고 했는데...

강의를 듣고 나서 그의 책 <페미니즘의 도전>은 강연의 해설본 같았다.  아, 책하고 강연은 다르지?

 


프리풀 비드와이


인도가 현재 당면한 사회적 문제들의 가장 큰 이유가 인도의 지도자들에게 있다고 지적한다. 인도의 지도자들은 토지 개혁을 감행할 용기가 없었고, 그나마 있는 자원들을 빈곤층에게 분배할 욕구도 없었다고.  무엇보다도 부자들에게 세금을 물릴만한 그런 용기가 없단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 부문에서 식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사실상 공공 의료 체계를 만들지도 않았고 심지어 인도 사람들이 마시고 있는 식수의 80퍼센트는 오염된 물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금도 걷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문제들이 우선 순위마저 뒤로 밀리다 보니까, 나라 재정도 엉망이고 공공 부문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라고.

인도의 지도자들을 항상 어떤 문제에 당면했을 때 지름길로 가려고 한단다. 구조적인 개혁을 추진한다기보다 단기적으로 처방해서 어떻게든 빨리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에.


특권층과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싸움에서 일반인들이 승리를 한다면 인도의 미래를 밝아지겠고, 비단 인도만이 아닐거라.  

 

"저는 여러 사람들이 각 분야나 계급, 어떤 부문을 넘어서서 좀더 전체적인 접근법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하루하루 삶을 위해서 생계형으로 싸우는 사람들도 있겠고, 시민 단체도 있겠고, 더욱 숭고한 인간의 이상을 위해서 싸우는 단체들도 있겠지만, 그들이 다같이 힘을 합쳐서 진정한 진보를 이루는 데 함께 나갔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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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11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읏-
김두식 교수님 참 좋아라하는데... ^^ 리뷰 잘 읽었습니다 춧천!!! :)

icaru 2007-04-10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고양2 님 그러게 요롷게나 재밌는 분인줄은 저도 몰랐죠 . 기쁨 두배 고맙슴다.
핫푸드 님 에 씨도 그랬군요. 님도 기쁨 두배 고맙슴다.

책읽기는즐거움 2007-04-10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드는 생각.....
모호한 것을 못참으면서 동시에 친숙한 것에 매달리지 않을 수는 없나요?;;;

icaru 2007-04-10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읽기는즐거움 님...^^ 댓글 주셔서 반갑고 또 고마워요....혹시 님이 그런 상태신가요? 모호한 것도 못 참고, 친숙한 것에 매달리지도 않는다...
대단히 쿨한 상태인 건가요? 잘 몰겠시요..ㅡ.ㅡ

책읽기는즐거움 2007-04-10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 현재 그런 상태이기보다는 이 글을 읽기 전부터 저도 모르게(잠재의식 속에서?;;;) 그런 상태를 지향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이게 쿨한 상태이면 저는 좋은 거죠ㅋㅋ^^
저도 댓글 고맙습니다ㅋ

잉크냄새 2007-04-11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이군요. 나인것과 내가 아닌것, 친숙한것과 모호한것...모두를 담고 있네요.
아, 근데 안드로메다 라는 표현도 쓰시다니...쿄쿄쿄 -,.-

icaru 2007-04-11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는 게 아무리 팍팍해도 정신을 안드로메다로 출장 보내는 일은 없으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종합선물세트! 딱 맞는 표현입네다. 이 책 읽고,, 거짓말 하지말고 거짓말에 속지 말자 눈부릅뜨게 됐구요. 쪼금 똑똑해진 것도 같은데...
그게 머 착각같은걸지라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