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저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배우자가 한눈을 팔면 분노가 치밀거다. 마찬가지로 좋아하는 작가가 다른 방식의 글쓰기를 시도한 작품을 내놓아도 그 작품에 정이 떨어지게 되는 것일까.

글쎄, 뭐 대답은 보류하고, 이 작품은 기법(영화적)이나 주제(교훈적) 면에서 외도를 했는데, 어쩐지 신입사원 연수 들어갔을 때 흔히 듣는 사장님 훈화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인 일인지.


가난한 이탈리아 여대생과 결혼한 하버드 법대생이 여자 때문에 아버지와 의절하지만 고생 끝에 변호사로 성공하고, 둘은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해피엔딩으로 영화 <러브스토리>를 본 스토리와 달리 기억하고 있는 다카하시를 긍정적이고 진취적이며 건강한 인물로 보여 주고 있는 걸로 보았을 땐.  그리고 에리와 마리 자매의 상반되는 삶의 모습에서 보여 주려 했던 것도 같은 맥락 같다. 어릴적부터 CF 모델이었고, 출중한 외모덕에 대중의 시선을 한몫에 받았던 만큼 자신의 의사대로 살 수 없었던 언니. 그리고 그런 언니의 그늘에서 주목을 받지도 못하고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도 못했지만, 자신의 판단과 뜻대로 행동하며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동생.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 언니처럼 군중의 욕망의 대상이 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욕망의 주체가 되라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235쪽

 

"인간이란 결국 기억을 연료로 해서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 그 기억이 현실적으로 중요한가 아닌가 하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아무런 상관이 없지. 단지 연료일 뿐이야. 신문의 광고 전단지나, 철학책이나, 에로틱한 잡지 화보나,  만 엔짜리 지폐 다바이나, 불에 태울 때면 모두 똑같은 종이 조각일 뿐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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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7-03-21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유가 유쾌해라. 훈화라니. 하루키도 늙은 거군요.-.-

비로그인 2007-03-21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사람이 너무 분명하게 나뉘는 것이 되레 불편했어요.

미설 2007-03-22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첫번째줄 비유^^;;;;
음.. 전 저 책은 안 읽어 봤는데요 점점 갈수록 하루키 책이 시들해지는게 내가 나이가 들어서가 아닐까 해요...

히피드림~ 2007-03-22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하루키 안 읽은지 너무 오래됐어요.
너무 유명한 작가의 작품은 왠지 점점 손에서 멀어지는... 그런거 있잖아요^^;;
하지만 인간이 기억을 연료로 살아간다는, 인용해주신 문장은 맘에 와 닿네요.
바로 위에 이카루님리뷰의 마지막 문장도요 ^^

icaru 2007-03-23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유라면 나무님 따라가겠냐마넌.ㅋㅋ
하루키 답지 않게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상을 전면에 내세웠지 뭐예요 ^^ 사장님 훈화처럼 ^^

바람난 책 님~ 그렇죠... 노골적으로 상반되게 대비시키는 것.. 전의 작품에서 보았든가??

미설 님.. 나이가 참으로 궁금하여요.. 작가도 나이먹어가고 우리도 나이를 먹어가네요~

펑크 님! 인생은 과거의 좋은 기억들이 미래를 살아가는 연료가 된다는 요지 같죠?
그럴려면 과거 정리를 잘 해야 할 듯도 하고요~ 그러고 보니, <포레스트 검프> 생각도 나네요~ 인생을 초콜렛에 비유하면서... 사람은 과거 정리를 잘 해야한다고... 엄마가 그랬었죠.


미설 2007-03-26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궁금할 것 없슈. 찍찍!

icaru 2007-03-26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흥~! 그렇군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