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거인
프랑수아 플라스 글 그림, 윤정임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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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 소리와 북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여섯 마리의 송아지가 끄는 마차에 실려 다가오는, 아름답고 숭고한 거인 안탈라의 머리가 보였습니다. 나는 갑자기 온갖 소란 속에서 분노와 공포와 고통에 사로잡혀 침묵에 빠져 들고 말았습니다. 깊이를 모를 심연의 슬픔, 그 밑바닥에서 감미로운 목소리가, 아! 너무도 익숙한 그 목소리가 애절하게 말했습니다.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74쪽

거인들이 실재하고 있다는 달콤한 비밀을 폭로하고 싶었던 내 어리석은 이기심이 이 불행의 원인이라는 것을 나는 마음 속 깊이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써낸 책들은 포병 연대보다 훨씬 더 확실하게 거인들을 살육한 것입니다. 별을 꿈꾸던 아홉 명의 아름다운 거인과 명예욕에 눈이 멀어 버린 못난 남자, 이것이 우리 이야기의 전부입니다.-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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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을 권리 -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강신주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6월
구판절판


자본주의는 각자의 노동을 통해서 살아가고 유지되는 체계입니다. 물론 노동의 대가로 임금이나 보너스가 제공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우리를 노동으로 계속 내몰기 위해 지속적으로 돈을 쓰도록 유혹하는 장치를 함께 고안했습니다. 끊임없이 화폐를 소비하게 하려면 유혹의 장치는 그만큼 강력할 수밖에 없겠지요. 가장 상징적인 그 유혹의 공간이 바로 백화점입니다. -19쪽

도시인들은 자신의 속내를 타인에게 드러내거나 나아가 타인이 자신의 속내를 나에게 털어놓는 것도 피하려고 합니다. 만나는 타인들 모두와 이처럼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면, 도시인들은 신경과민으로 쉽게 지쳐버리겠지요. 그런데 신경과민을 피하기 위한 이런 거리두기라는 도시인 특유의 삶의 태도가 바로 '자유'라는 감정의 중요한 기초가 됩니다. 타인에 대한 냉담한 거리두기가 삶의 양식이되어 대도시에서 나와 타인은 서로의 삶에 거의 간섭하지 않습니다. 서로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한, 다른 이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바로 도시의 암묵적 윤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90쪽

욕구나 욕망은 모두 어떤 결여를 전제로 하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욕구가 단순히 부족함을 총족시키는 것을 의미한다면, 욕망은 단순한 충족을 뒤로 미루고 여전히 충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욕구보다 좀 더 복잡합니다. 욕망이란 욕구가 기묘하게 뒤틀려서 발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욕망은 동물에게는 없고 오직 인간에게만 있지요. 인간과 달리 동물은 단순한 욕구만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144쪽

내가 자유롭듯이 내가 사랑하는 타인 역시 자유롭습니다. 이것은 그에게 나를 사랑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선택의 힘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선택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사랑해"라고 사랑하는 사람이 내 귓가에 속삭인다고 해도, 나는 역시 불안하기만 합니다. 그것은 나를 위로하기 위한 단순한 거짓말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사람을 꿈꾸면서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타인의 내면, 즉 그의 자유를 엿볼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애인에 대해 항상 불안해합니다. 사랑하는 그 사람은 언제든지 나를 떠날 수 있고, 나를 보면서 다른 제3자를 꿈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타인의 자유, 곧 타인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까요?-197쪽

가라타니 고진은 영화나 소설을 미적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은 문화적 학습 덕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무관심'하게 보는 능력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학습되어야만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흔히 상류계급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하류계급에게 보이는 오만한 태도입니다. 다소 도식적이지만, 자신은 저급한 문화수준에 있지 않다고 자부하며 동시에 다른 계급의 사람들로부터 모방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간단히 상류계급이라고 가정해봅시다. 상류계급은 자신이 드라마는 드라마로, 연극은 연극으로 본다고 자신합니다. 그래서 상류계급은 드라마와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하류계급 사람들을 비루하거나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하지요. 그렇지만 그들은 상류계급과 하류계급 사이의 이런 차이는 선천적 차이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합니다. 다시 말해 상류계급 사람들은 자신의 미적 능력이 자신들이 가진 돈과 생활의 여유에서 비롯되었음을 잊고 있습니다. 만약 자신과 같은 물질적 조건을 갖추었다면, 하류계급에 속하는 사람들도 자신과 유사한 순수한 미적 관심을 공유했겠지요.-277-278쪽

타인으로부터 주목과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과 허영 같은 감정이 있기에 산업자본의 기호가치가 작동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소비사회에 대한 보드리야르의 통찰이 중요한 이유도 그가 인간에게는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려는 욕망 혹은 허영이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점은 벤야민이나 부르디외의 통찰과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인간의 구별짓기 욕망에는 다음과 같은 의식이 깔려 있습니다. 부당하게도 자신의 현재 삶은 행복하지 못하다는 일종의 피해 의식 말입니다. 또한 이런 피해 의식의 이면에는 모든 인간에게 행복, 위세 혹은 안락함에 주어지지 않는다는 비판도 함께 깔려 있지요. 그래서 행복, 위세 혹은 안락함은 선택받은 소수에게만 허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가능한 것입니다. 스스로 그런 소수에 속하고 싶다는 욕망, 다시 말해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려는 욕망은 바로 부르디외가 말한 귀족적 취향에 대한 욕망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333-334쪽

자본주의하에서 돈은 분명히 자유라는 감정에 물질적 기초를 제공합니다. 호주머니에 돈이 두둑하면 자유의 감정, 두려움 없는 당당한 감정을 느낍니다. 그러나 원하는 상품을 마음대로 구매할 자유, 즉 이러한 소비의 자유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사람의 생존에 필요한 물품들을 적절히 생산할 수 있는 '생산의 자유'가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생산의 자유'란 결국 자본가 자신이 독점하는 것이지요. -363쪽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사실 앞으로도 영원히 행복할 수 없는 법입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 삶이 다른 어떤 시간의 삶으로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4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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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서재 - 그리고 그들은 누군가의 책이 되었다
한정원 지음, 전영건 사진 / 행성B(행성비) / 2011년 5월
절판


"공부하는 능력, 다시 말해 수학 능력을 키우기 위해 제일 좋은 건 책을 읽는 겁니다. 그게 제일 확실하고 쉬운 방법이에요. 독서가 취미라고 하는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독서는 취미라고 할 수 없습니다. 독서는 일입니다. 독서는 전략이고 독서는 치열한 삶의 현장입니다."(최재천)-56쪽

"글을 쓰는 것이 사람을 스스로 귀하게 만드나요?"
"그렇지. 글을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글쓰기를 통해서 이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야. 왜냐하면 세상을 자세히 보아야 글을 쓸 수 있거든. 자세히 본 것을 쓰다 보면 더운 자세히 보여. 그러면 급속도로 발전이 되지. 정신적으로 풍요해지는 거야. 글쓰기가 중요한 이유는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모든 것이 글이기 때문이야. 자기 분야에서 앞서가는 사람들은 모두 글을 써. 글을 쓰기 때문에 앞서가는 거야. 글쓰기란 세상을 보는 눈을 갖게 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힘을 주지."(김용택)-115쪽

"독서라는 것은 자기를 중심에 두고 다른 영역에서 일어나는 것을 흡인하는 사이에 일어나는 역동성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독서라는 게 즐거울 수 있는 거죠. 낯설음이나 신비함, 호기심은 독서의 방법이 아니라 본질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철학책을 읽는다고 하면 점점 철학의 중심으로 다가가면서 그 흡인력에 나를 맡기는 거죠. 하지만 디자인이라는 내 본질적인 것을 바꾸지 않고 내가 중심을 잡고 가게 하는 거예요. 내가 중심을 잃고 철학을 하게 되면 전공이 바뀌어버리는 거죠."(정병규)-132쪽

남들이 권하는 삶을 살지 마라. 자기만의 삶을 살아라. 자기가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해라. 그래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천재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야 몰입이 일어난다. 그래야 뭔가를 이룰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생각을 맡기는 것이다. 그것은 그 어떤 것보다 굴욕적이다.(박원순)-283-284쪽

"분노를 가지고 살아야 해요. 자기가 다스릴 수 있는 분노가 있지 않으면 부패하게 되니까 부패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기가 다스릴 수 있는 나름대로의 분노를 품고 있는 게 중요해요. 요즘 젊은이들은 분노가 없는 것 같아요. 모든 걸 쉽게 해결할 수 있어서 그런지 욕망을 배출하는 게 너무 쉬운 세대로 보여요. 분노라는 것은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이 억압되고 배출이 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현상인데, 그게 없으니 스스로 부패하고 나아가 타락하기도 해요. 어떠한 분노든 분노를 가지고 사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승효상)-309쪽

그 느낌을 아는가? 틈만 나면 읽고 싶어지고, 다 읽어가는 것이 너무나 아까운 그런 책들이 있다는 것을, 시간이 얼마큼 흘렀는지 알 수도 없을 만큼 흥미진진한 책, 잠시 덮었다가도 그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또 펼쳐보게 되는 책, 전철에서 책을 보다가 내릴 역을 그만 놓치게 만드는 책, 약속장소에 한 시간을 먼저 와도 그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리는 책,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때까지 책을 덮지 못하게 만드는 책, 그런 책들을 만났을 때의 행복과 희열이란 좋은 친구를 만났을 때만큼이나 짜릿하다.(김성룡)-324-325쪽

"전통! 케케묵은 것이 아니라 켜켜이 묵힌 것입니다."(진옥섭)-4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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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다, 책을 펼쳐놓고 읽다 - 허아람의 꿈꾸는 책방
허아람 지음 / 궁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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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배고픈 눈이 아니면 보이지 않는 풍경이 있고, 애정어린 눈이 아니면 띄지 않는 모습이 있다. -38쪽

자존심은 자신의 값어치를 억지로 '부여잡고''잃지 않으려는', '쥐어 잡음'의 표현이다. 그러나 고귀한 사람의 천진한 자신감은, 근육에 그 긴장감이 자연스럽듯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것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장점을 그 실질 그대로 그리고 모양 그대로 받아들인다. -50쪽

사랑은 내 안에 잠자고 있던 태풍이 몰아쳐 나로 하여금 뭔가에 강렬하게 집중하도록 하는 일대의 사건이다. 그때 일어나는 집중력은 실로 놀라운 수준이어서, 그 정도의 힘이라면 내 몸에 쌓인 낡은 흔적들을 일거에 몰아낼 수 있다. 만약, 그 정도가 아니라면, 그건 사랑이라고 할 수도 없다. 예컨대, 사랑을 하고 있는데, 자신의 몸과 일상에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단언컨대!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을 하고 있다면, 사랑을 꿈꾸고 있다면 먼저 동선을 바꾸라. 동선을 바꾼다는 건 "일상의 차서次序를 재배치하는 것이다. '차'란 시간적 순서, '서'란 공간적 질서다"(농담)차서를 재배치한다는 건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순서를 바꾸고 하루의 활동들을 시공간적으로 다르게 안배한다는 뜻이다. 삶은 몸의 에너지들이 서로 교환하는 물리적 장이다. 내가 리듬과 강도를 바꾸면 당연히 내 주변에 이전과는 다른 물리적 작이 형성된다. 인연조건이 달라진다는 뜻. 그렇게 되면 그걸 바탕으로 새로운 관계와 활동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게 바로 새로운 신체의 창조며 삶의 창조다. -52-53쪽

즉, 한 사람이 무언가를 소유하면 다른 사람은 그것을 소유할 수 없다는 것, 어떤 종류의 물건이든 사용되거나 소비된 물건에는 꼭 그만큼의 인간의 생명이 소비되었다는 것, 그렇게 사람의 생명을 소비한 결과 현재의 생명을 구하거나 더 많은 생명을 얻게 되면 그것은 좋게 소비된 것이고, 그렇지 못한다면 그만큼 생명을 방해했거나 죽인 결과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119쪽

우리가 잘 아는 [해리 포터]의 저자 조앤 롤링이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연설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날 졸업생들에게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인간의 힘을 기초로 세상을 바꾸라. 또 그대들이 가진 지위와 영향력을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해라. 힘 없는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해라. 자신과 같은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늘 간직하라."라고 요청하면서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마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 속에 우리가 필요한 모든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더 나은 것을 공감하고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154쪽

"시의 목적은 놀랄 만한 사고로 우리를 눈부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한 순간을 잊히지 않는 순간으로 또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값하는 순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라고 밀란 쿤데라의 정의는 정당하고 타당하다. 이러한 순간이야말로 우리를 보다 더 사람답게 만든다."라는 문장입니다. -183쪽

주체적인 삶에 가치를 둘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편리와 이익에 가치를 둘 것인가 하는 문제 말이에요. 지금 우리는 더 편리해지고, 더 쉬운 일을 하고, 경쟁에서 이기는 그런 데 가치를 두니까 다른 삶이 보이지 않는 거예요. 일단 경쟁 위주의 가치에 빠져 있으니까 다른 가치가 안 보이는 거죠. 주체적인 개성을 추구하지 않으면 상대적인 비교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누구는 냉방 잘된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보고 앉아 있는데 누구는 두엄간에서 퇴비를 손보고 있다고 하면, 누가 그 냄새나는 일을 하려고 하겠어요? 상대적인 비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해답은 없어요. -242쪽

조셉 캠벨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이 삶의 의미라고 사람들은 말을 하는데 그러나 나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순수하게 육체적인 차원에서 우리의 삶의 경험은 우리의 내적인 존재와 현실 안에서 공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실제로 살아 있음에 황홀을 느낍니다."-303쪽

우리 젊은이들이 꼭 다시 재정의하고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짦은 정지.... Kindness라고 생각해. 다른 사람들에게 nice한 거, 다른 이들의 입장에서 느끼고 생각해보는 거, 관대한 거, 존중하는 Kindness. 평생을 사회 정의를 위해 저항하고 투쟁하며, 엘리스 워커의 말대로 그는 항상 우리와 함께 있었다, 라고 말했던 그가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라는 질문에 정의도, 평등도, 자유도 아닌 Kindness라나, 가슴이 울컥했다. 나의 좋은 선생님, My kind teacher,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의 어떤 것도 놓치지 않고 싶던 그 시간, 한 인간의 존엄과 겸손과 아름다움 앞에서 눈물이 났다.

+여기서 그는 Howard Zinn이다. 보스턴대학에서 저자가 인터뷰한 내용이다. -312쪽

절차의 어려움, 영어를 모른다면 어떤 경우라도 지구 안에서 공항을 통해서 국경 넘기라는 것은 아예 불가능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과연 공항을 이용한다. 또는 세계시민주의다. 그래서 여행을 할 수 있는 상위 몇 퍼센트의 사람들만을 위한 시스템이나 문화나 윤리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좀 어불성설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전 세계를 다니며 느꼈던 것은 태어나서 그 땅을 단 한 번도 떠나보지 않은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란 겁니다. 내가 태어났고, 살고 있는 이 도시를 단 한 번도 벗어나지 않은 채, 일생을 사는 그 수많은 사람들의 삶, 그 삶들이 자본의 세계화가 아닌 어떤 인간적 가치, 존귀함으로 존중받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329쪽

샤비 사와르카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실제로 카스트제도는 사라졌지만 아직 현대 사회에서는 뿌리 깊은 카스트제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차별과 억압이라는 정신병이 활개를 치고 있는 듯합니다. 세계 곳곳에 돈이나 명예 따위의 부질없는 기준으로 스스로를 또는 타인을 저울질합니다. 돈과 명예가 있으면 브라만이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불가촉천민 달리트가 됩니다. 그러나 과연 누가 브라만이고 누가 달리트일까요? 고귀한 돈이란 이 세상에 없습니다. 하지만 눈보다 깨끗하고 고귀한 영혼은 있습니다. 카스트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마음과 영혼의 몫입니다. 이제 당신의 영혼의 계급을 알아야 할 때입니다. 당신의 카스트는 무엇입니까?"-426쪽

"오늘날의 독재는 범세계적인 권력구조인데 그것은 소비와 폭력으 우선시하는 보편가치를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으로 정의됩니다. 아무것도 갖지 못한 사람은 존재조차 않습니다. 존재할 권리는 무엇을 살 수 있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으로 정의됩니다. 차가 당신을 운전하고 슈퍼마켓이 당신을 삽니다. 텔레비전이 당신을 보고 컴퓨터가 당신을 프로그래밍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도구의 도구가 되고 말았습니다."-4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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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 인생도처유상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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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에 연륜이 생기면서 나도 모르게 문득 떠오른 경구는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였다. 하나의 명작이 탄생하는 과정에는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수많은 상수(上手)들의 노력이 있었고, 그것의 가치를 밝혀낸 이들도 내가 따라가기 힘든 상수들이었으며, 세상이 알아주든 말든 묵묵히 그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필부 또는 인생의 상수들이었다. -5쪽

경복궁의 각 권역을 이어주는 길에는 아름다운 소나무, 버드나무, 때죽나무, 마가목, 산딸나무 등 각 건물에 어울리는 나무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 종류가 100종이 넘는다. 경복궁과 자금성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자연과의 어울림이다. 자금성은 자금성이고 경복궁은 경복궁이다. -17쪽

배를 건조하고 싶으면 사람들에게 나무를 모아오고 연장을 준비하라고 하는 대신 그들에게 끝없는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르켜라.(씽떽쥐뻬리의 말)

왕조의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에 왕궁이 남아 있지 않으면 말할 수 없이 큰 상실감을 일으킨다는 것을 베를린왕궁 복원사업이 웅변해준다. 왕궁은 그 민족, 그 나라의 역사적. 문화적 정통성에 대한 확인이자 상징이다. 우리에게 경복궁은 정년 그런 존재다. 이 점은 외국인들이 경복궁을 보는 시각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우리가 중국의 자금성, 프랑스 베르쌰유 궁전, 오스크리아 빈왕궁, 헝가리의 부다왕궁 앞에서 느낀 감정과 똑같은 맥락에서 외국인들은 경복궁을 보면서 우리 역사의 만만치 않은 저력과 현재적 삶의 역사적 뿌리를 보게 된다. 상처받은 문화유산을 복원하는 것은 후손된 자의 임무이며 그 임무를 다함으로써 우리의 과거와 미래가 밝게 드러난다. 경복궁을 더 아름답고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20-121쪽

선암사의 사계절
선암사는 1년 365일 꽃이 없는 날이 없다. 춘삼월 생강나무, 산수유의 노란 꽃이 새봄을 알리기 시작하면서 매화 살구 개나리 진달래 복숭아 자두 배 사과 영산홍 자산홍 철쭉이 시차를 두고 연이어 피어난다. 그것도 여느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늠름한 고목에서 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감히 예쁘다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때가 되면 선암사는 열흘마다 몸단장을 달리한 것처럼 우리를 새롭게 맞이한다. 봄의 빛깔이란 어제와 오늘은 비슷해도 열흘을 두고 보면 확연히 다르다......-177-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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