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 - 장정일의 독서일기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
장정일 지음 / 마티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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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가장 잘 읽는 방법은 '그 책이나 지은이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세계'라 어떤 것이었나를 파악하고, 다른 책이나 지은이들의 이상 세계와 비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고전을 비롯한 진짜 좋은 책에는 '인간이 살았으면 싶은 이상 세계'에 대한 설계도가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25쪽

너와 나는 연대가 필요하지. 서로에게 친절 '노동'을 요구할 게 아니다. 내가 당신에게 친절을 강요하면,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짜낸 친절을 보상받으려 할 게 뻔하다. 그런 사회에서 친절은 상대방을 베는 칼이다. 하므로 우리는 감정노동자들의 친절에 대해 '쿨'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건 감정노동자들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나 역설적인 사회 안정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오로지 나를 위한 이유도 있다. -33쪽

앞서 프랑스혁명이 쟁취한 시민권 얘기를 했지만, 프랑스혁명은 사회적 강자인 부르주아들이 혁명을 주도하면서 그들 계급의 재산권이나 정치적 권리만 챙겼고, 노동자나 여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권은 배제되었다. 인권이라면 자동적으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나 집회. 결사의 자유만 떠올리게 된 것은, 정작 중요한 시민권 가운데 하나인 사회권이 망각되었기 때문이다. 사회권은 분배의 정의를 핵심으로 하면서 그것의 이행을 요구할 권리, 일할 수 있는 권리, 실업을 보호받을 권리, 일정 기간의 유급휴가 등 휴식과 여유를 가질 권리, 건강 및 행복에 필요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 학비 걱정 없이 교육을 받을 권리, 노령 보호 등을 포함 한다. -40쪽

아버지에게 억압당했던 도스토예프스키에겐 있었지만 히들러나 스탈린에겐 없었던 그것. 간접적 보호자란 학대받는 어린아이를 편드는 사람으로, 어린이 주변에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될 수 있다. 간접적 보호자는 폭력에 노출된 아이에게 '너는 나쁜 아이가 아니며, 보살핌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믿음을 주고 자긍심을 갖게 한다.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우는 아이를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 할 이유다. -82-83쪽

스포츠에서 쇼핑에 이르는 온갖 편의가 제공되어 그 자체로 자족적이고 폐쇄적이 되어버린 특권 계층의 프리바토피아(privatopia, 사적유토피아)는 여러 가지 문제를 낳게 된다. 특히 열린 공동체에서 자라날 권리가 있는 아이들이 공간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분리되어 같은 계급끼리 동질성을 키우는 한편, 다른 계급을 불관용으로 대하는 것이 우려된다. 부유층 전용 주거구역은 "다양한 문제가 산재한 세계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지 못한 세대를 생산"하게 되므로, 사회의 불안전성을 높이고 도시를 상시적인 내전 상태로 몰아넣는다. 특권 계층은 자신의 재산 형성은 물론이고 온갖 문화적 향유와 재생산이 "이름 없는 하인들의 미등록 이주 및 노동과 분리 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127쪽

정부나 기업의 요청으로 이루어지는 용역 연구나 연구비 지원을 염두에 두고 행해지는 전문가들의 연구는 거의 다 긍정을 위한 연구다. 전문가들은 '4대강의 경제 부양 효과'나 '막걸리가 성인병 예방에 미치는 좋은 영향'을 연구하지, 아무도 부정적인 효과나 영향을 입증하기 위한 연구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보다 더 흥미로운 점은, 뉴스를 만들는 언론이나 전문가의 조언을 바라는 대중들 역시 부정보다 긍정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즉 언론은 논문의 질보다 선정성과 흥미를 더 높이 사면서, 과학상의 획기적인 발견이나 경제 효과를 과장한다. 마찬가지로 대중들은 듣기 싫거나 고려 사항이 많은 조언보다, 간결하면서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전문가를 좋아한다. -154-155쪽

한정된 의제를 가지고 다투기 때문에 정당들 간의 변별력이 상실되면서, 신념에 찬 카리스마형 지도자보다는 기득권이 다루기 좋은 탤런트형 지도자가 더 많은 표를 얻는 꼴불견은 현대 정치의 그늘이다. '정치적인 것'을 정당과 의회에만 국한하면, 정치는 발전하기보다 답보한다. -178쪽

헬렌 칼디코트는 [원자력은 아니다]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맺는다. "결국 도덕적 삶을 사는 것은 개인의 결정이다. 그것은 당신의 방을 나갈 때 불을 끄고 밤에는 컴퓨터를 끄며 집을 단열하고, 겨울에는 더 많은 스웨터를 입고 집안의 열을 내리도록 조정하며, 여름에는 땀을 흘리더라도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에어컨을 끄고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희생과 책임감은 대다수 사람들이 동경하는 고상한 특성이다. 또한 이것들은 세계를 공정함과 지속적인 생존으로 이끄는 자질이기도 한다." 좋은 말이다. 여기에 한 마디 덧붙인다. 헬렌 칼디코트가 권하는 저런 행동은 도덕적 개인이 되는 것에 멈추지 않는다. 저런 행동은 개인의 도덕적 삶으로 수렴될 뿐 아니라, 오래 지속하면 필경엔 무수한 기업과 결탁한 정치엘리트를 향해 '너 그만해!'라고 소리칠 수 있는 덕(힘과 용기)으로 화한다. 내가 먼저 저렇게 해보지 않으면, 끝내 그런 말은, 목구멍에 막혀 나오지 않게 된다. 이게 중요하다. -195-196쪽

지역과 시대를 막론하고 "뛰어난 지도자와 그렇지 못한 지도자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의 하나가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사안을 정확히 구분"하는 능력인데, 연산군은 능상의 척결을 자신의 욕망을 채울 자유로 곡해했다.

*(p214)연산군대의 조선왕조실록인 [연산군일기]를 보면, 연산군이 가장 많이 내뱉은 말 가운데 하나가 능상(凌上)이다. '윗사람을 능멸한다'는 뜻의 이말에는, 그만큼 대간들에 의해 왕권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국왕의 열패감이 녹아 있다. 연산군은 부왕이 만들어 놓은 국왕.대신.삼사의 정치적 분립을 왕권의 퇴보이자 조정의 폐단으로 여겼다. -215쪽

가부장제가 전제된 대부분의 남녀 관계에서 남자는 가해자고 여자는 피해자다. 이때 남자는 자신의 죄책감을 벗기 위해, 일종의 반성문이거나 석명서를 쓰게 되는 데, 그것이 연애소설의 기원이다. "그러므로 남성이 연애 소설을 읽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남성의 반성문이나 변명으로 상처를 치료하고 사랑을 기억해야 할 사람은 여성이다. 연애 소설은 남성이 낳고 여성이 기른다. 그것을 통해 상처를 입힌 사람은 자신의 수치와 회환과 약점을 위장하고, 가해자로서의 자책감에서 벗어난다."-264쪽

저항적 지식인들은 항상 민중을 앞세우지만 서발턴은 항상 '지식인-저항엘리트'의 계도를 받거나 자신들과 통합되어야만 의미를 갖는 존재다. 그래서 민중이나 계급으로 회수되지 않는 서발턴은 충동적이고 무모한 부화뇌동자로 간주되며, 결정적인 시기에 운동 역량을 왜곡시키는 분열분자로 배척한다.

*(p350)서발턴(subaltern)은 하위(sub)와 타자(altern)가 결함된 조어로, 우리말로는 하층민. 하위 주체. 하위 집단 등으로 번역된다. -352쪽

새마을운동은 노인들이 마을의 어른 역할을 하던 전통적인 공동체질서를 완전히 전복하고, 상대적으로 젊은 청. 장년층이 마을의 주도권을 쥐게 된 계기가 되었다. 또 국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던 농촌에까지 국가권력이 파고들게 된 것도 새마을운동의 성과로, 작중에 나오는 이장이 행한 역할이 그런 것이다. -3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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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새 책 - 절판된 책에 바치는 헌사
박균호 지음 / 바이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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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가 필요한 것은 새만은 아닌 것 같다. 책도 날개가 필요하며 항상 읽혀져야 한다......

한 사람의 서재는 그 주인의 운명과 함께한다. -59쪽

이런 성자 같은 삶을 살아온 분이기에 2003년 당시 베스트셀러의 보증수표처럼 여겨졌던 문화방송 <느낌표>에서 그의 산문을 묶은 [우리들의 하느님](녹색평론사)을 선정하려고 했을 때 "아이들이 자라나는 과정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 도서관이나 책방에 가서 혼자 책을 고르는 순간이다. 그걸 왜 방송에서 막느냐"며 프로그램 사상 처음으로 거부하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성자 같은 삶을 살아온 분 = 권정생 선생님.

-111쪽

나는 서점에 들어와서 "요즘 어떤 책이 잘 팔려요?"라고 묻는 독자보다는 서점에서 한 시간 이상을 책 구경을 하다가 마침내 뿌듯한 표정으로 책을 고른 뒤 사가는 독자가 많아야 한다고 믿는다. -167쪽

차창 밖 풍경 속의 '소'는 여유롭고 고향의 향수를 전해주지만 현실 속의 소와 농부는 향기롭지 못하다. '소'를 단지 고향의 향수를 상징하는 '소'로만 노래한다면 그는 더 이상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시를 쓰는 시인이 아니다. -183쪽

어찌 보면 문학작품의 '음란한 내용'은 TV에 나오는 여러 범죄의 모습보다는 훨씬 덜 해롭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로지 음란한 내용을 구경하기 위해서 장정일이나 마광수 교수의 책을 사서, 그 영향을 받아 '문제아'로 변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장정일 [내게 거짓말을 해봐]/ 마광수 [즐거운 사라]-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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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 루나파크 : 훌쩍 런던에서 살기
홍인혜 지음 / 달 / 2011년 9월
구판절판


언제나 이렇다. 내 책상은 늘 현실안주로 뒤덮여 있고, 내 가방은 집착으로 가득 차 있다. 언제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는커녕, 짐 더미에 묶여 오도 가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29쪽

차별하지 않고, 타자화하지 않고, 없는 사람인 양 모르는 척하지 않고, 그저 '보통 사람'의 범주에 모두가 속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자기를 드러내며 한길을 자유로이 다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121쪽

장기여행의 좋은 점은 어딘가로 향할 때 시간에 대한 초조함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월요일에 못 가면 화요일에 가면 되고, 수요일에 문 닫은 곳은 목요일에 찾으면 된다. 죽어도 오늘 가봐야 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몇시까지 가지 않으면 큰일나는 것도 아니다. 어딘가로 가려고 최단 루트를 찾으려 애쓸 필요도 없고, 돌아 돌아 가도 가는 길 자체가 속 편한 여행길이다. 차가 막혀 수십 분째 껌처럼 길바닥에 붙어 있어도 좀처럼 시계를 보지 않는다. -158쪽

'모든 것을 날씨처럼 생각하기'는 큰 효험이 있어서, 여행 기간 내내 큰 힘이 되어주었다. 심란한 일이 생겨도 그저 어쩌다 맞이한 흐린 날인 거고, 문제가 발생해도 그저 소나기일 뿐이었다. 숱한 문제가 생겨도 예전처럼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그저 적당히 떨어져서 보는 여유를 얻었다. 문젯거리를 늘 보물처럼 끌어나고 소일 삼아 걱정하던 내가 그 모든 트러블을 슬며시 내려놓는 사람이 된 것이다. 언제 다시 도질지 모르는 '안달병'이지만, 이런 회복 가능성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190쪽

내 취향이 아니면 그저 무관심하면 그만인 것을, 일일이 주의를 기울이고 하나하나 짚어가며 험담까지 했다니 그야말로 유치한 행태였다. 단지 토를 달기 위해 관심을 두고 그에 몰두하다니 모순적인 '싫음'이었다. 뭔가를 싫어하며 마치 자신이 미욱한 대중과는 취향의 수준이 전혀 다른 고상한 사람인 양 착각했다니 얼마나 우스운가. 실제로는 나라는 존재에 자신이 없고,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두려웠기에 남을 '까면서'존재감을 확립했던 거다. 어떤 창작인이라도 나보다 노련하고, 나보다 노력해온 사람이라는 걸 인정했어야 했는데 어설픈 식견으로 그를 무시하고 비판하며 내가 그 사람보다 잘난 것같은 희열을 맛봤던 거다. -267-268쪽

불친절은 그저 불친절, 가해자의 품성을 탓하면 되는 일이지 내 처지를 반추하며 하루를 망칠 이유가 없다. 여행에서의 보석 같은 하루를 그렇게 허비하기엔 너무나 아까우니까. 작은 불친절에도 쉽게 마음이 쪼글쪼글해지는 나 같은 사람들이 모두 씩씩하게 마음을 슥슥 다려서 다시 매끈한 기분으로 여행했으면 하고 바라본다. -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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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김수정 지음 / 달 / 2009년 8월
절판


[링빙 라이브러리]의 콘셉트는 단순했다. 도서관에 와서 '책'을 빌리는 대신 '사람'을 빌린다는 것, 대출시간은 30분, 독자들은 준비된 도서목록-사람들목록-을 훑어보며 읽고 싶은 책-사람-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책-사람-과 마주앉아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의 인생을 읽는 것이다. 도서목록에 올라 있는 사람들은 다양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리 주변에 언제나 존재해왔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적이 없었던 살마들, 남들과 약간 다른 독특한 이력 덕분에 '오해의 시선'을 받아온 사람들. 즉, [리빙 라이브러리]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대화하고 소통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서로 잘 알지 못해 가질 수밖에 없었던 타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 고정관념을 줄이자는 의도로 기획된 행사였다. -9쪽

[리빙 라이브러리]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 사람 입장이 되어보자는 것. 그러면 그 사람의 처지를 헤아릴 수 있다는...-16쪽

"선생님이 결코 가져서는 안 될 게 바로 선입견과 편견이에요. '저 아이는 아마 이 정도 수준인걸' '이런 가정 형편이니 여기까지만 기대해야지'. 이런 선입관이 아이의 미래를 망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해요. 그런 의미에서 선입관과 편견을 깨자는 [리빙 라이브러리]에 매료됐어요. 아이들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하는데, 타인에 대한 편견을 타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이 '살아 있는 도서관'이야 말로 완벽하게 아이들을 위한 교육기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죠."-77-78쪽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노년이 그런 거예요. 적당히 돈을 벌었으니 나머지 인생은 조용한 곳에서 쉬면서 보내겠다, 뭐 이런 거.
전한테 그건 이미 죽은 삶이에요. 왜 죽는 걸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내죠? 나는 죽는 그 순간까지 도전하면서 살 거예요."-155쪽

우리는 자주 자신의 가치 기준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를 나눠놓고 산다. 영국 사람이 영국에 살지 않고, 아프리카에 살면 비정상인 걸까. 그렇다면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우여곡절 끝에 영국에 사고 있는 나는 비정상인가 정상인가. 어쩌면 '특별하다'와 '평범하다'는 개념은 우리가 멋대로 만든 허상일지도 모른다. 정상, 비정상이라는 말조차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개념일 수도 있다. 런던을 보면 딱 그렇다. 코스모폴리탄이라는 표현이 너무 잘 어울리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복작복작 어우러져 살고 있다. 자신을 런던이라는 용광로에 녹여 출신, 나라, 인종을 떠나 세계 시민 런더러로서 살아간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역사와 민족, 개인 취향을 고집스럽게 지키는 개성 만점의 사람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의 범주에 드는 런던 사람들이다. -233쪽

"어휴, 저 책상이 좀 낡았네. 내다 버려야지"라고. 하지만 만약 그 책상을 본인이 며칠 동안 공을 들여서 직접 만들었다면 그런 생각을 쉽게 하지는 못할 거라는 거다. 혹은 그 책상이 어린 시절 아버지가 열심히 대패질해가며 만들어서 선물한 거라면 그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 사용된 수고와 에너지를 쉽게 저버릴 수는 없다는 거다. 그런데 돈을 사용하면서부터 우리는 그런 마음을 잃어버렸다. 물질 만능주의 사고방식과 습관에 길들여져 언제부터인가 아무 고민 없이 물건을 버리고, 새로운 물건을 구입하게 되었다.
그렇게 물건의 진짜 가치를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돈이 표시하는 숫자에 따라 가치를 매기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에게 물건 자체보다 어느 브랜드인가, 가격이 얼마인가가 더 중요할 뿐만 아니라 사람도 그가 소유한 물건으로 재단하고 평가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마크는 우리의 삶이 이렇게 변질된 게 너무 슬펐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돈은 우리 인생에서 주인공이 될 정도로 그리 대단한 존재는 아니라고. 돈에게 중요한 역할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돈이 행복을 좌우할 수는 없다고.-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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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몸으로 말을 한다 - 과학과 종교를 유혹한 심신 의학의 문화사
앤 해링턴 지음, 조윤경 옮김 / 살림 / 2009년 2월
품절


그러나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언제나 질병이 안겨주는 고통의 의미를 납득하려 애썼다. 서양의 문화사 속에는 종교, 도덕, 사회를 다룬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가 존재하며, 환자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 '왜'라는 중대한 질문의 답을 얻고, 자신의 경험을 연결하여 자기 자신과 자신의 운명을 더 잘 이해해왔다. 전통적으로 어떤 질병은 죄가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고, 질병을 통해 그 사람의 인생을 바꾸려는 신의 메시지가 담겨 있기도 했다. 현대 물리주의 의학은 모든 종류의 질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극히 일반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환자가 아니라 전적으로 질병에 대한 이야기이며, 여기에는 언제나 조직, 혈액, 생화학과 같은 전문 용어가 사용된다. -9-10쪽

우리 스스로에게 장난질을 하는 마음의 망령은 현실이 아닌 것을 경험하게 만든다. 이처럼 퇴마사에서 최면술사로 다시 스벤갈리로 이어지며 암시를 통해 사람들을 조종하고 속이는 망령은 지금도 인간의 상상력을 강하게 장악하고 있다. 이러한 망령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통합 의학, 대체 의학, 그리고 심신요법과 별 관계가 없다. 심지어 이들은 마음과 몸의 연관성을 믿지 않는다. 또한 환자에게 실제로 도움을 주는 방법, 즉 무의식 속의 트라우마를 드러내는 긍정적인 기원을 담은 만트라, 명상, 서포트 그룹, 심리요법도 모두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일지라도 암시의 존재는 믿는다. 암시의 본질은 심신요법이 아니라 돌팔이 의사의 가짜 치료법이기 때문이다. -73-74쪽

저명한 문화비평가 수잔 손택(Susan Sontag)은 1970년대에 암이 발병했다. 막상 자신이 암에 걸리고 보니 감정적으로 억압된 사람들이 암에 걸린다는 낡은 정신분석학적 믿음이 아직도 대중 속에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 사실에 기겁했고, 이것이 터무니없는 생각이라고 못 박았다. 또한 사람들은 결핵에 잘 걸리는 특정한 성격 유형이 있다고 믿곤 했다. 이런 믿음은 현대 의학에 의해 결핵이 박테리아 때문에 발병한다는 사실이 발견될 때까지 이어졌다. 아직 정확한 발병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지만 암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손택은 영향력 있는 책 [은유로서의 질병(Illness as Metaphor)]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질병은 은유가 아니다. 질병을 바라보는 가장 진실한 방법이자 가장 건강하게 질병을 앓는 방법은 은유적 사고를 가장 많이 걸러내는 것이며 대부분은 이에 거부감을 느낀다."-119쪽

"플라시보와 관련한 논쟁이 수그러들지 않는다는 것음 무슨 의미일까?" "오늘날 인간은 왜 그토록 긍정적인 사고의 마법에 대한 낡은 관심을 플라시보라는 마술에 대한 새로운 관심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것일까?" 그 한 가지 해답은 그렇게 하면 긍정적인 사고와 자기치료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실험실, 역학연구 등 믿을 수 있는 데이터를 통해 지지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비록 뇌 촬영기술을 사용해서라도 긍정적임과 플라시보를 연결함으로써 우리는 실험을 통해 믿음의 치료 효과를 연구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게 되었다. -173쪽

세상에 의해 각 개인마다 주어지는 스트레스의 절대적인 양보다 개인이 세상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대처하느냐는 기능으로 재정의할 경우 새로운 의문이 발생했다. 특정 유형의 사람들은 삶의 도전에 대한 적응 능력이 평균보다 못할 수 있지 않을까? 즉,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어 건강을 해치는 성격도 있지 않을까?-207쪽

사회적 지원이 완충제라면 비축해두었다가 언제든, 특히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꺼내 사용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사회적 지원이 정보라면 사실상 의식적으로 믿는 것에 불과하며, 이 경우 누군가 진짜 사랑받고 존중받았는지의 여부나 다른 사람들과 실제로 교제를 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주관적인 믿음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관점이 '인지적 사회적 지원'이 된다. -239-240쪽

"사랑과 친밀감음 건강과 질병에 가장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요소이다. 내가 아는 한 식습관, 흡연, 운동, 스트레스, 유전, 약물, 수술 등 그 어떤 의학적 요소도 삶의 질, 질병의 발생, 질병으로 인한 모든 조기 사망에 사랑만큼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다."-252-253쪽

[사랑, 의학, 그리고 기적]의 저자이자 암 전문 외과의 버니시겔의 말

나는 결국 모든 질병은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하거나 조건부 사랑만을 받은 사람의 면역계가 지치고 우울해져 몸이 약해지기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한다. 또한 모든 치유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능력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낟. 내가 생각하는 진실은 사랑이 병을 치유한다는 것이다. -255쪽

하지만 희망은 있다. 사회의 잘못을 우리 스스로 고치는 일은 고사하고 우리를 괴롭히는 것조차 바로잡을 수 없을지라도 이런 일을 해내는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누구인지 궁금한가? 이 기사에 따르면 이들은 동쪽에서 왔으며 서쪽에 사는 사람들이 지니지 않은 면을 모두 갖춘 사람들이다. 우리는 현대적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고대의 전통과 맞닿아 있다. 우리는 스트레스 때문에 곤경에 처하고 긴장하지만 이들은 일부러 유도한 평정과 명상을 바탕으로 현명하게 말하고 행동한다. 우리의 의학은 공격적이고 마치 고장 난 기계처럼 인간의 몸을 치료한다. 그러나 이들의 의학은 부드럽고 인간을 몸과 마음 모두를 지닌 통합체로 인식하여 환자가 받는 고통을 가늠한 뒤 치료방법을 선택한다. 우리는 마음과 몸이 별개라는 생각을 끈질기게 고수하는 반면 이들은 마음과 몸이 서로 어디까지 밀접하게 작용하는지 이해하고, 이 지식을 독특하고도 효과적인 치유법으로 변환하는 방법을 찾았다. 놀랍게도 해결책은 간단하다. 이들을 통해 가르침을 얻는 방법을 배우고, 그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를 치유할 방법을 발견하면 된다. -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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