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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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이도 게으름이나 거짓말 같은 사회 부적응자의 징후들을 부모는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또래 아이들에 비해 언어 구사력이 뛰어난 편이라는 것을 자랑흐러워했을 가능성이 높다. -41쪽

한때 가까웠던 누군가와 멀어지게 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어른이 된 다음에는 특히 그렇다.-63쪽

-사랑한다고 해서, 다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야.

......

-만나지 못한다고 해서, 볼 수 없는 건 아니야.-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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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책읽기 - 명로진이 읽고 걷고 사랑한 시간
명로진 지음 / 북바이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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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걷는다. 걷기 때문에 인간이다. 동물은 긴다. 기기 때문에 동물이다.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걸어야 한다. 배를 땅에 깔고 움직이지 않는 것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수많은 복지부동하는 존재들은 인간이 아니다. 기지도 않으므로 동물도 아니다. 그럼 아메바? 말미잘? 무생물?-93쪽

'절실하게 필요할 땐 가질 수 없고, 가질 수 있을 땐 그 필요가 절실해지지 않는' 쌍곡선의 비애가 바로 삶인 것을 그땐 몰랐다. '인간에게 유보시킬 행복은 없다'라는 걸 진작 알았어야 했다. -135쪽

누군가 손가락을 들어 가리키기 전까지는 우리가 무엇을 본다 해도 보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설명하기 전까지는 우리가 무엇을 안다 해도 아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산에 오르기 전까지는 산은 있다 해도 있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미망에 사로잡힌 인간에겐 그렇다. 존재가 문제가 아니라 인식이 문제인 것이다. 산에 오른다는 것은 존재에 대한 인식의 도전이며 실체에 대한 감각의 탐구이자 객체에 대한 주체의 대응이다. -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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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世設, 첫 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절판


사내의 한 생애가 무엇인고 하니, 일언이폐지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이다. 알겠느냐? 이 말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서 돈보다 더 거룩하고 본질적인 국면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얘야, 돈이 없다면 돈보다 큰 것들이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 부(否)라! 돈은 인의예지의 기초다. 물적 토대가 무너지면 그 위에 세워놓은 것들이 대부분 무너진다. 그것은 인간 삶의 적이다. 그런 허망한 아름다움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없다. 이것은 유물론이 아니고, 경험칙이다. 이 경험칙은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 공히 유효하다. 돈 없이도 혼자서 고상하게 잘난 척하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아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말아라. 추악하고 안쓰럽고 남세스럽다. -13-14쪽

정치적 언어는 사실에 바탕하지도 않았고 의견에 바탕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흔히 욕망이나 이득에 바탕하고 있었다. 욕망과 이득에 바탕한 말들은 사실을 지운다. 그 말들은 거대한 명분을 뒤집어쓰고 뻔뻔스러워진다. 말은 무기로 변한다. 무기로 변한 말은 적에게 허상을 부여하고 그 허상을 친다. 그때 적의 언어도 똑같은 전략에 따라 무장된다. 그렇게 해서 전면전을 치르는 말들의 신기루가 당대 현실 위에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아무것도 소통되지 않는다. -67쪽

언론의 자기 검열은, 이념이나 지향성에 의한 통제행위가 아니라, 우선은 사실과 의견을, 존재와 가치를 구별하는 통제행위이다. 이것은 쉬운 말이 아니다. 이것은 아마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거의 불가능 쪽에 가까운 일이다. '사실'이 갖는 층위는 다양하고 복잡하다. '사실'은 그것을 관찰하고 전달하는 자의 주관 속에서 재편성되고 재해석되며, 의미를 부여받거나 의미를 박탈당한다. '사실'이 객관적이고 '의견'이 주관적이기에 앞서서, '사실'을 만지고 거기에 다가가는 인간의 시선이 이미 주관적이다. 단순한 교통사고나 화재사건, 살인사건조차도 그 전후 맥락과 의미 내용을 완전무결하게 객관적으로 전달할 수는 없다. 나는 '사실' 앞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의견' 앞에서 식은땀을 흘린다. 사실과 의견은 적대적이다. -91쪽

모든 죽음은 끝끝내 개별적인 각자의 죽음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자들의 의식 속에서 그 죽음은 통계화된 사회현상일 뿐이다. 죽음이 그렇게 사물화될 때, 삶 또한 우연성 속에 방치된 사물로 전락한다. 사물화된 죽음은 더 이상 삶의 시간들을 긴장시키지 못하고, 삶과 죽음의 자리매김은 불가능해진다. 죽는 일은 무섭지만, 죽음과 구분되지 않는 일상의 삶은 더욱 무섭다. -137쪽

빠른 속도는 출발점과 도착점 사이의 과정을 챙기지 않는다. 속도의 꿈은 길을 버리고, 오직 시간 속을 달려가는 것이다. 땅에 붙어서 달리는 자에게 그 꿈은 불가능한 꿈이지만,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매혹적이다. 자동차가 빨리 달릴수록 속도감각은 무디어지고 시야는 좁아지낟. 시야는 전방으로만 집중되고, 풍경은 인간의 외곽을 겉돌아 백미러 뒤쪽으로 장난감처럼 소멸한다. 빠르게 질주하는 자동차 안에서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물리적 공간으로부터 소외되고, 그 공간을 삶의 영역 안으로 끌어넣을 수가 없게 된다. 자동차는 나쁘고, 자전거는 착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미 자동차가 없이는 이 세상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전거의 덕성은 그 속도와 힘이 사람의 몸의 허용치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계장치가 그것을 조작하는 사람의 몸과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속도는 능률이고 절약이며, 많은 젊은이들의 꿈이지만, 속도의 본질은 공간으로부터의 소외다. 저렇게 빠르게, 어디로들 가는 것인가. 가는 과정을 저렇게 다 버려도 되는 것인가.-193쪽

사물을 사물 그 자체로서 직접 이해할 것, 사물과 인식 사이에 잡것이 끼어들지 않도록 늘 경계할 것.-198쪽

여름의 강은 가득하다. 가득한 물이 아득히 흐른다. 흐르는 것은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 흘러오는 것도 아니다. 흐르는 것은 오고 또 가는 것을 잇대면서 늘 신생한다. 그러므로 강은 지속이고 또 명멸이다. 가득한 여름가은 젊은 날의 시간과 생명의 모습을 닮아 있다. 가을이 와서, 여름의 거센 힘을 모두 버리고, 맑고 또 낮아질 때까지 젊은 여름의 강은 산과 들의 모든 굽이를 다 휘돌아가면서 가득히 흐른다. -246-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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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떠나보내기
이승욱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9월
구판절판


본격적인 심리치료사로 일하기 시작한 지 벌써 십 수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는 내담자와의 '관계', 내담자라는 '화두'로 인해 뜨거워지기도 서늘해지기도 환희하기도 좌절하기도 한다. 고통스러워 이 직업을 그만두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그러나 그것은 관계를, 내 삶의 화두를 버리는 일이었다. 그것과 함께 가는 것이 내 삶을 책임지는 방식이라는 것을 나는 이미 알아버렸다. 그리고 내담자들과의 분석은 내게 단순한 돈벌이로서의 전문적 활동이 아닌 삶의 본질과 접촉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바로 내 스승들이 내게 해준 마지막 가르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내 스승들이 전수해준 관계와 화두에 관한 깊은 이야기다.-6쪽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계가 아니라 공간이 아닐까요? 경계는 오직 하나의 선이어서 바로 눈앞에 두고도 넘어갈 수 없게 하는 장벽, (투명한)차단막입니다. 따라서 경계는 관계의 균열입니다. 하지만 관계 사이의 공간은 공명을 가능하게 하죠. 공간은 심리적이고 정서적인(때로는 물리적인) 영역이고, 그것은 사생활의 존중이라는 방식으로, 또는 정서적 여유를 회복할 수 있는 시간적, 또는 특수한 환경으로서 공간의 제공이라는 형태로 나타납니다."-46쪽

모든 내담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사실 내담자들은 전혀 변화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내담자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그들이 진정으로 변해야겠다고 결심하게 하는 것이 어렵다." 심지어 라캉은 "내담자들은 변화하기 위해 분석을 받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유지할 방법을 찾기 위해 분석가에세 온다."고까지 말한다. 그저 고통을 계속 지킬 수 있는 방식으로써 분석가를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라캉은 계속 말한다. "내담자가 정말 변해야겠다고 결심하는 그 순간부터 내담자는 진정한 분석관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진정한 결심, 과거로부터 벗어나겠다는 변화의 결심, 이 자체만으로도 많은 것은 해결된다."-103쪽

성인이 되면 한 여자로서, 한 남자로서 인정받는 경험이 필요하다. 육체적 매력을 포함한, 한 여성으로서 인정받는 경험 말이다. 일반적으로 그것은 연애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한 남자의 온전한 사랑을 받음으로써 여자가 되는 것이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사랑받음으로써 자기 안의 여성을 확인하며, 인정받음으로써 그가 날 사랑한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연애는 아직 덜 자란 소녀와 소년을 여성과 남성으로 성장시킨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여성, 남성이 되기도 전에 바로 아내와 남편, 엄마와 아빠가 되어버리는지 나는 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자신의 여성성을 언제 확인했냐는 질문을 가끔 한다. 많은 여성들이 '아이를 낳았을 때'라고 답한다. 그건 어머니로서의 생산성, 모성을 확인한 것이지 여성을 확인한 것은 아니다. 여성성을 확인하는 경험은 한 남자로부터 온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충만감을 느낄 때 가능하다. 물론 여성으로서 한 남자를 온전히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가 된다. -135쪽

부모와 가족들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낄 수 없을 때, 보통 사람들은 어떤 감정을 느낄까. 부모에게조차 존재를 인정받지 못해 자신이 가치 없게 느껴진다면, 그런 못난 자신에 대한 분노와 무기력함이 필연적으로 뒤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5쪽

외로움이란, 내가 말할 대상이 없는 데서 비롯된 상처가 아니라, 내가 누구에게도 말 걸어지는 대상이 아니라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말 걸어지는 대상이라는 것은, 존재감의 확인이다. 우리에게는 말 걸어주기를 진정 원하는 사람, 오직 한 사람, 또는 소수의 몇 명이 있다. 그들은 대체로 부모들이다. 그들의 말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수용적이어야 한다. 어루만지는 말이어야 한다. 그것이 최선이다. 많은 부모들은 따뜻하지도 부드럽지도 수용적이지도 않지만, 그래도 말을 걸어준다. 이것은 차선이다. 말을 걸지 않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러나 자신의 일부만이 받아들여지는 느낌은 어중간한 외로움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많은 이들의 외로움은 대체로 어정쩡하다. 절절히 외롭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드러운 말과 어루만지는 대화와 수용되는 느낌을 원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 받을 수도 있다. -217쪽

우리는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상투적으로 내뱉지만, 사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건덕지'가 있어야 한다.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이 있어야 하고, 그 자격 역시 자신이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스스로에게 내준 시험을 통과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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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 0시 5분
황동규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3월
품절


비릿한 냄새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이맘때가 정말 마음에 든다.
황혼도 저묾도 어스름도 아닌
발밑까지 캄캄, 그게 오기 직전,
바다 전부가 거대한 삼키는 호흡이 되고
비릿한 냄새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초밤 화성시 궁평항 中-10쪽

있는 것과 가는 것이
서로 감싸고도는 고요,
때늦은 수국과 웃자란 풀들이 마음대로 시들고
사람들이 목젖에서 끄집어내며 여미는 소리
문득 빈 말이 된다.

-이런고요 中-12쪽

세상에 헛발질해본 사람이면 알지,
저 소리,
밖으로 내놓지 않고 마냥 안으로 끌어만 당기는
저 음성.
'이 저녁 견딜 만하신가?'

-늦가을 저녁 비 中-14쪽

별 하나가 스르르 환해지며 묻는다.
'그대들은 뭘 기다리지? 안 올지 모르는 사람?
어둠이 없는 세상? 먼지 가라앉은 세상?
어둠 속에서 먼지 몸 얼렸다 녹이면서 빛 내뿜는
혜성의 삶도 살맛일 텐데.'
누가 헛기침을 했던가.
옆에 누가 없었다면 또박또박 힘주어 말할 뻔했다.
'무언가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 곁에서
어둠이나 빛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별들이 스쿠버다이빙 수경(水鏡)밖처럼 어른어른대다 멎었다.
이제 곧 막차가 올 것이다.

-겨울밤 0시 5분 中-21-22쪽

이 세상 뜰 때
제일로 잊지 말고 골라잡고 갈 삶의 맛은
무병(無病) 맛이 아니라 앓다가 낫는 맛?
앓지 않고 낫는 병이 혹
이 세상 어디엔가 계시더라도.

-삶의 맛 中-29쪽

그냥 초록도 아니고 빛나는 연초록도 아닌
그 둘을 보태고 뺀 것도 아닌
초록 불길 속에서 막 나온 초록 불길 같은,
슬픔마저 빼앗긴 밝은 슬픔 같은,
이런 색깔이 이 세상 어딘엔가 있었구나.

-안성 석남사 뒤뜰 中
-67쪽

그래 그 가을의 문턱에서 지금 뭘 해?
여름내 속으로 미워한 자 하나
내처 미워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지.
그 할까 말까가 바로 피 말리는 일,
아예 소매 걷어붙이고 나서 미워하는가
마음에서 슬쩍 지워버리는 거야.
아니면 어느샌가 바위의 따스함이 그리워지는 저녁,
바위의 피부를 간질이는 가벼운 햇볕,
볕이 춤춰, 하면 드리워진 그림자처럼 가만히 춤추다가
생판 상관없는 사람이 되어 한번 헛헛하게 웃든가?

-헛헛한 웃음 中-112-1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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