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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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면서 꼭 만나야 할 사람, 내 인생에서 꼭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을 삶의 고비고비마다 경험했었다. 늘 함께 했으면 하는 그 소중한 사람들은 나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었고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내 삶에서 자신들의 역할이 다하면 약속이나 한 듯이 그렇게 내 삶의 영역에서 사라져 갔다. 만나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지금, 내 삶에 누군가가 나타나면 그 만남의 끈을 영원으로 생각지 않는 여유가 생겼다. 언젠가는 헤어질 만남인 것을 알기에 끝까지 붙들어두고픈 욕심을, 내려놓는 법도 알게 된 것이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내 힘으로 되지 않는 것이기에

그저 너와 내가 만난 것, 그 자체가 감사하고 소중한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인생에서 꼭 만나야 할 사람... 주인공 '마리오 히메네스'에게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그의 인생에서는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아니었을까.

 

어부로 평생을 살아갔을 마리오는 고기잡이에 정을 못붙인다는 이유로 우연히 우편배달부라는 직업을 갖게 되고 마리오가 맡은 구역의 수신인이 오직 한 사람, 시인 '파블로 네루다' 뿐인 운명을 만나게 된다. 네루다와의 만남으로 인해 마리오의 삶은 점차 변화를 겪게 되고 여자 앞에서는 부끄러워 말 한마디 못하던 그가 네루다의 시를 거의 외우다시피하여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제법 그럴싸한 시적 언어를 구사하여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하고 노동자 모임에서는 시낭송을 하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한다. 한 사람과의 만남으로 인하여 사람의 삶이 바뀔 수 있다는 것, 그것처럼 멋진 만남이 있을 수 있을까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인 네루다와 진심어린 절친이 되어 가는 그 과정은 읽는 이로 하여금 웃게도 하고 애절하게 만들기도 하고 마리오의 입장에서 네루다를 존경어린 눈빛으로 보게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파리에서 머무르던 네루다가 마리오에게 편지를 보내어 녹음기를 가지고 자신이 머물렀던 섬, 이슬라 네그라의 모든 소리를 녹음해 달라고 하는 부분. 네루다의 편지에선 마리오에 대한 신뢰가 담겨 있어 내가 마리오인 것 마냥 기분이 좋았고 마리오가 새소리, 파도소리, 바람소리까지 섬세하게 하나씩 녹음하는 부분들은 정말 이 책에서 놓칠 수 없는 감동이다.

 

또 한 가지, 네루다를 가까이 하면서 마리오의 메타포(시적비유)는 일취월장하게 되고 여자 앞에선 말도 못하던 마리오가 그 메타포로 아름다운 아가씨 베아트리스의 마음을 빼앗았으니 네루다가 마리오에게 어쩌면 생명의 은인이기도 한 것이다. 여자 때문에 마음이 불타 죽어가던 한 남자를 살렸으니 말이다.

 

하룻밤, 그리고 단숨에 읽어버린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변화되어가는 마리오를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고 네루다와 친해지는 과정, 사랑하는 여자 베아트리스와의 이야기. 조금 야한 묘사도 많지만 아주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어서 그마저도 재미로 다가온다. 그리고 훈훈한 감동들.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이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며 그 만남으로 인해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큰 변화를 이룰 수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의 인생에 빛이 되어 가는 그 과정이 참 소중하게 다가온다. 나 또한 그런 사람들이 내 인생의 꼭지점마다 존재했었다는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리게 되는 시간들이어서 의미가 깊다.

 

"네가 뭘 만들었는지 아니, 마리오?"
"무엇을 만들었죠?"
"메타포."
"하지만 소용없어요. 순전히 우연히 튀어나왔을 뿐인걸요."
"우연이 아닌 이미지는 없어."
마리오는 손을 가슴에 댔다.

혀까지 치고 올라와 이빨사이로 폭발하려는 환장할 심장 박동을 조절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리오는 걸음을 멈추고 고귀한 수신인의 코앞에 불경스러운 손가락을 바짝 들이대며 말하였다.
"선생님은 온 세상이, 즉 바람, 바다, 나무, 산, 불, 동물, 집, 사막, 비……."
"…… 이제 그만 '기타 등등'이라고 해도 되네."
"……기타 등등! 선생님은 온 세상이 다 무엇인가의 메타포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네루다의 입은 턱이 빠질 듯이 떡 벌어졌다.
"제 질문이 어리석었나요?"
"아닐세, 아니야."

 

<p.31>

 

 

*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영화화한 '일 포스티노'도 꽤 잘 만들어진 영화이니 함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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