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나이에 대하여

나이에는 세 가지가 있다. 세월의나이, 육체와 관습의 나이 그리고 정신의 나이다. 처음 웃는 어린 아이를 가르키는 해제(2세)나 한자를 파자하여 자획을 풍어 나눈 파과(여자 16세), 상수(48세), 희수(77세)와 뜻을 풀이한 망팔(80을 바라보는 71세), 망구(90을 바라보는 81세로 할망구의 어원)는 세월이 가면 절로 먹는 나이.

‘인생 열살은 유幼니 배우기를 시작하고 스무 살은 약弱이니 관례를 올리고 마흔 살은 강强이니 벼슬을 한다는 육체와 관습의 나이다.‘

세월의 나이와 정신의 나이는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지금의 이 시간들이 쌓여 어떤 삶의 모습으로 자리잡아 갈지는 누구도 모르지만, 결국 그 시간시간들은 나라는 삶의 클리셰를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을, 하여 세월에는 쓸모가 없다. 세월의 흐른다고 하여 정신이 성숙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월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시간의 창고안에는 나라는 삶의 클리셰가 완성되어 가고 있다.

오늘은 대구에서 시험이 있다. 늘 그렇지만 나이가 들어 공부를 한다는 것이 마냥 녹록하지 만은 않다. 생활에 쫒기고 일상에 쫓기고 시간에 쫓기면서도 공부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세월의 나이와 정신의 나이를 같게 하고 싶은 노력인지도 모르겠다.
본디 하루살이 버섯은 저녁과 아침을 알지 못하고 쓰르라미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하니 작은 지혜는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 짧게 사는 자는 길게 사는 자에 미치지 못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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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비록 네가 똑똑하지도 정직하지도 않고,
비록 네가 거짓말쟁이고,
이기적이고,
개자식이라도
난 널 미치도록 사랑해.

-밀란 쿤데라,<느림> 중에서

 ⚘⚘⚘⚘⚘⚘

우리는 자주 다 알지 못한 채 마음을 내어준다.
상대를 다 알고서도 사랑할 수 있을까.
알면 멀어지는 것이 사랑이다.
가까워지면 찔러대는 고슴도치처럼...
알지 못하기에 내어준 가슴에 가시가 박히더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건.
우리의 생이 사랑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오랜 습관처럼 사랑에 길들여져
마음을 내어주지만
다가가면 찔려대는 가시에
상처받고 슬퍼하는 숙명 같은 존재인 것이다.
이제는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나의 사랑이 깊다고 하여 헤어짐이 오지 않는 것도 아니며
나의 사랑이 깊다고 하여
어그러진 인연의 조각을 다시 맞출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때로는 기억처럼 흐르는 강같은 사랑이 더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을
사랑했던 기억이 비록 허상일지라도
깨지 않는 꿈으로 남겨두어야 하며
누구나 다 그렇게 사랑을 하고
헤어지는 아픔 하나 정도는
가슴에 품고 산다는 것을
다 알지 못한 채 마음을 내준 것을 후회하기 보다는
어두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추억처럼 빛을 내듯이
길고 어두운 생의 터널을 밝혀줄 사랑 하나 정도는
가슴속 깊은 곳에 남겨 두어야 한다는 것을

-2019.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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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작심삼일

기해년이 밝았다. 신년에는 作心작심이라 하여 마음을 새로이 다짐하는 계획을 세우곤 하는데 작심은 보통 3일천하로 끝나곤 한다. 새해에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며 떠오르는 일출을 바라보며 새로운 시작을 향한 희망을 꿈꾸기 마련이다. 그러나, 내 오랜 경험에 비추었을 때 자신의 계획과 목표를 세우며 그것을 실행하려 애쓰는 것보다는 오히려 無心무심이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가짐으로 더 도움이 된다. 삶에 희망이나 목적을 가지면 그것을 이루지 못한 실망으로 자신을 비하하거나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작심 삼일로 스스로를 폄하하기 보다는 무심으로 삶의 온전함을 이루는 것이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 말하는 최고의 삶에 가깝다.

나홀로 등산을 한지 햇수로 8년이 되어간다. 처음 등산을 시작했을 때 산에 오르는 것이 너무 힘이 들어 한 번에 오르지 못하고 중간 중간 쉬어가며 올라갔다. 그런데 산에 잘 오르는 사람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매우 여유롭고 빠른 속도로 올라가곤 했다. 그래서 몇 분들께 여쭈어 보니 산을 오를 때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마음을 비우듯이 어떤 목적이나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의 움직임에 모든 것을 맡기고 걷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다달아 있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항상 정상에 오르기 위한 시간계획과 목표를 채우기 위한 생각에 가득차 시간 안에 오르지 못할 때는 어떤 초조함을 가지고 있었다. 목표한 시간 안에 정상에 이르기 위해 코스를 돌아가기도 하였는데 그것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어 정작 중요한 내 몸의 움직임에는 집중하지 못하였던 것이었다. 삶도 등산과 똑같다. 신년 계획을 세우고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세우지만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초조와 포기로 좋은 삶을 위한 노력을 작심삼일의 형편없는 다짐으로 만들어 버리곤 한다. 신년이라 해서 목표를 갖고 버킷리스트를 습관적으로 만들기보다는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삶, 나에게 집중하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신년을 멋지게 향유하는 방법이다.

철학자 강신주는 다상담에서 이런 말을 했다.
‘지금의 삶을 꿈이 없는 상태로 만드세요. 일체의 꿈도 없이 있는 그대로 현실을 향유하는 수준에 이르면 아무 생각 없이 산 정상에 올라있는 것처럼 삶도 목적 없이 어느 순간 최고의 삶에 올라있을 것입니다. 그냥 비 오면 우산을 펼치듯이 그렇게 가는 것이 삶이예요. 인생은 소요유처럼 목적이 없이 걸어 다니고 목적이 없이 살아가는 거예요.
비록 불행도 찾아오겠지만, 매너리즘에 빠진 삶이 아니라 드라마틱한 삶이 펼쳐질 거예요
위대한 사람들이 삶을 여행에 비유할 때 목적지를 정하고 체크인하고 체크아웃하는 여행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예요. 비도 만날 수 있고요, 멋진 남자도 만날 수 있다고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그래서 내가 어떻게 변할 예측할 수도 없는 거예요. 그 설렘 그 위기 그 긴장을 사랑하는 거죠. 삶이란 원래 그런 드라마틱한 것으로 가득 찬 것이니까요.

새해이지만, 너무 거창한 계획을 세울 필요는 없다. 목표를 세워 작심한 후, 3일 천하로 무너지고 말 삶을 살기보다는 그저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충분히 향유하며 즐길 권리가 있다. 새해에는 그저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밤은 깊어서 눈만 내리어
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 오는 밤도
하루의 일을 끝낸 작업장 부근
촛불도 꺼져가는 어둔 방에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슬픔도 없는 이 슬픔의 세상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눈이 온다

– 정호승 시인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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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광인의 수기 열린책들 세계문학 238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석영중.정지원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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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모리, 언젠가는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삶이 소중한 이유는 죽음이라는 유한성 때문이다. 죽음이 그닥 실감나게 다가오지 않더니 어느 순간부터 동료나 지인들의 부고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하면서 죽음이 이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한다. 톨스토이도 그러했을까. 인간으로 누릴 수 있었던 최고의 삶(부와 명예와 같은 모든 것),에 이르렀을 때 죽음에 관한 성찰을 하면서 그의 삶은 바뀌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으며 톨스토이가 천작하였던 죽음의 성찰이 무엇이었는지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문학은 삶과 죽음에 대한 도덕적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죽음에 관한 천착 이전에 톨스토이는 삶을 즐겼고 사랑했고 하고 싶었던 모든 것들을 거리낌 없이 하였다. 귀족이었으며 작가로서의 명성은 그를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위대한 작가였던 톨스토이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버리고 금욕적인 생활과 빈민굴에 들어갔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죽음’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삶은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했으며, 그래서 대단히 끔찍한 것이었다.-p26


상테르부르크의 중간급 치안 판사였던 이반 일리치는 매우 평범한 사람이었다. 탐욕적이지도, 욕망에 충실하지도, 그렇다고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나쁜 짓을 일삼은 사람도 아니었다. 단지 매일매일 돈걱정을 하며 사는 그저 보통의 사람이다. 자잘한 봉급과 승진에 대한 걱정과 아내와의 잦은 다툼에 지쳐 일에만 몰두하는 아주 전형적인 중년 남성이다. 때로는 판사라는 직위가 주는 우월감에 도취되어 고위층 인사들과의 위선적인 만남을 즐겼고 상류층으로서의 평온한 삶에 안도하는 그런 평범한 남자. 하지만 그에게 불행은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차라리 불행의 전조라도 있었다면 그는 덜 불행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너무 급작스레 찾아온 불치병은 유쾌하며 지적이기까지 했던 그를 우울하고 어두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결혼……. 뜻하지 않게 했던 것. 환명, 아내의 입 냄새, 애욕, 위선! 이 생명력 없는 업무, 그리고 돈 걱정, 그렇게 보낸 1년,2년, 그리고 10년, 20년. 언제나 똑같은 삶. 살면 살수록 생명은 사라져 가는 삶. 그래, 나는 산에 올라가고 있다고 상상했지. 하지만 일정한 속도로 내려오고 있었던 거야. 그래, 그랬었던 거야. 분명 사람들 눈에 나는 올라가고 있었어. 하지만 정확하게 그만큼씩 삶은 내 발아래서 멀어져 가고 있었던 거야……. 그래, 다 끝났어. 죽는 것만 남았어! -p110


이반이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주위를 가득 채웠던 사람들이 자신을 진심으로 동정하지 않을 뿐더러 자신의 고통을 털끝만큼도 이해해주지 않음에 그는 더욱 좌절한다. 이반의 병을 위해 돈으로 저명한 의사들을 불러 모았지만 대답은 한결같았다. 고통에 무너지는 육신과 상황이 좋아질지도 모른다는 허황된 희망이 수시로 교차하며 그의 머릿속을 고통이 갉아먹을 동안 죽음의 공포는 더욱 격렬해져 간다. 이반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성찰되는 죽음의 성찰은 톨스토이의 뼈아픈 자각이었을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죽음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는 듯이 이반은 임종 전에서야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로워진다.  


『어느 광인의 수기』는 정신병을 가지고 있지만 서른 다섯까지 보통사람으로 살아온 ‘나’의 이야기다. 어쩌면 광인이란 세상을 살아가는 한 미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 의미로 읽혀지기도 한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이반이 평범해서 끔찍한 삶을 살며 끝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잠든 것과는 달리 광인의 수기에서 ‘나’는 다른 결말을 암시한다. 이반과 ‘나’는 톨스토이의 자화상이나 다름없으며 이 두 캐릭터를 통해서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야하는 가에 대한 질문을 하는 듯했다. 광인의 수기 ‘나’역시도 이반처럼 판사이며 육체적 노동을 등하시하였으며 기름진 음식을 좋아했고 여자가 주는 쾌락을 즐겼으며 , 돈을 사랑했다. 또한  매우 건강했다. 그런 그에게 찾아온 죽음의 공포, 그것이 ‘나’를 깨웠다.


죽음이 끔찍한 것인 줄 알았는데, 삶을 떠올리며 생각해 보니 끔찍한 것은 죽어가는 삶이었다.-p139


나는 현재 살아있고, 과거에도 살았으며 앞으로도 살아야 한다. 그런데 갑자기 죽음이 찾아와서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가? 죽기 위해서? 그렇다면 당장이라도 죽어야 하나? 두렵다. 죽음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그건 더 두려운 일이다. 그럼 반드시 살아야만 하는가? 어째서지? 죽기 위해서?-p145


죽음의 공포와 대면한 ‘나’는 이후, 많은 것들을 포기해 간다. 가난한 농민들을 위해 농지구매를 취소하고 교회 입구에 있는 걸인들에게 자신이 가진 재산을 모두 내어준다. 마치 톨스토이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이후 톨스토이 역시 광인의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간다. 


고통가운데 몸부림치며 죽었던 이반과 광인의 ‘나’는 대조되는 면이 있다. 톨스토이는  『어느 광인의 수기』의 ‘나’가 두려워했던 것처럼 ‘죽어가는 삶’을 가장 경계하였으며 가장 끔찍이 생각했다. 아마도 죽음을 성찰하지 못하는 이들의 삶을 빗대어 무의미한 생을 살아온 이반에게 죽음이라는 삶의 파도가 어떤 방식으로 생을 휩쓸어 가는지를 알려주고 있는 것만 같다.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인 동시에 광인인 ‘나’이다. 죽음을 기억하지 못했던 이반과 죽음을 기억하였던 ‘나’, 이반은 고통가운데 죽어갔지만 ‘나’는 가난한 노동자들의 고통을 나누어 사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난다. 삶의 유한함을 깨닫는 것은 현재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 죽음이 있는 것을 기억하는 자는 삶을 덧없게 보내려 하지 않으며 의미 있는 것들로 삶을 채우려하기 때문이다. 메멘토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삶과 죽음은 하나이며 그것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삶이 더욱 가치 있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찍이 죽음을 성찰하며 삶에서 의미 있는 일에 눈을 떴던 광인의 ‘나’와 불치병에 걸려서야자신의 삶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깨달아가는 이반. 누구나 ‘나’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이반’이 될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삶을 살든 선택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것이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아름다운 것임을 깨닫는 이는 ‘나’처럼 보다 의미있는 일에 마음을 쓸 것이고 죽음을 성찰하지 못하는 이는 이반처럼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가며 자족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노쇠해가는 육체와 질병에 대한 공포와 나이듦이라는 비극앞에서는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단순하지 않더라도, 비록 평범하지 않더라도 죽음을 기억하며 현재의 삶을 보다 가치 있는 것들로 채워가는 삶이 덜 끔찍하다는 것을. 메멘토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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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가지 인생의 법칙 - 혼돈의 해독제
조던 B. 피터슨 지음, 강주헌 옮김 / 메이븐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세상의 고요를 가르며 세상에 나왔을 때, 삶의 고행은 시작된다. 천혜의 요새인 에덴동산에서 삶에서의 위험요소들을 제거해 주는 보호막은 선악과로 인해 깨어져버렸다. 인간에게 천형과 같은 삶이 시작된 것이다. 한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말을 철떡 같이 믿으며 나라는 존재에 대한 무한긍정의 피드백으로 존재자체에만 의미를 두던 시절이 있었다. 허나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말은 태어나면서 씌워주는 또 하나의 페르소나에 불과하다.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되기보다는 사랑을 하는 존재로 사는 것이 인생을 더 의미있게 만들어준다. 우리는 누구나 존재로서 의미를 부여받고 싶어 하지만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천형으로 혼돈의 세상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아 삶을 완성해가야만 한다. 방황 속에서 나름의 질서를 찾아가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무의미한 삶을 의미있게 해준다.

 

 

태초는 혼돈에서 출발한다. 그 혼돈 속에서도 질서를 추구하며 질서정연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인생의 칙이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쌓아온 질서라는 규범 속에서 고통을 느끼는 이유는 서로 다른 삶의 규범들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로간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삶을 지킬 수 있다면 충돌에서 오는 고통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질문에서 시작된 것이 바로 12가지 인생의 법칙이다. 질서정연한 사회 구조 안에서 나만의 삶을 견고히 쌓아 올릴 수 방법을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인 조던 B. 피터슨은 12가지 법칙으로 소개하고 있다.

 

 

자연의 이치는 인생의 법칙보다 더 오래된 필연의 법칙이다. 인류는 엄청 오랜 시간을 자연과 공생하여 왔으며 자연의 이치를 통해 삶을 체화하는 과정을 거쳐왔다. 그 가운데 공룡보다도 더 오랜 생명력을 지닌 바닷가재의 이야기가 인생 법칙 첫 번째인 어깨를 펴고 똑바로 걸어라이다. 무려 35천만 년을 넘게 이 땅에 살고 있는 바닷가재의 생존법에는 인생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정립해야 하는 이치가 있다. 생명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든 존재하는 서열 구조. 그 가운데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뇌에서 먼저 자각한다. 수컷의 우두머리가 된 바닷가재는 스스로를 권력자로 인식하며 위풍당당하며 세로토닌 수치가 높게 나타난다. 반면 짝짓기에 실패한 바닷가재는 어깨가 위축되며 세로토닌 수치도 낮다. 이것은 인간의 법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서열이 낮은 인간은 스스로를 패배자로 인식하며 짝짓기에 실패한 바닷가재와 같이 세로토닌 수치도 낮다. 이는 서열구조를 뇌에서 먼저 인식하고 있기 때문인데 스스로를 서열 구조에서 상위에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충분히 인생을 더 나은 방식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서열 구조 상위에 있는 존재로 인식하며 어깨를 펴고 똑바로 걷게 되면 뇌에서 승리자로 인식하여 세로토닌 수치를 높여주며 질병과 고통을 겪을 확률도 낮추며 수명도 길어진다는 것이다. 지배 구조에 익숙한 사회 구조 속에서 서열 1위가 된다는 것은 육체보다 정신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스스로를 서열 상위로 여기며 어깨를 당당하게 걷는다면, 다음은 어디로 갈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지금 현재의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게 된다면 나아갈 방향이 정해지게 된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 삶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니체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아는 것, 좋은 삶의 출발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인생의 법칙 4당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어제의 당신하고만 비교하라.’이다. 우리 내면에는 우리를 잘 아는 비평가가 살고 있다. 내면의 자아는 시시때때로 선택의 기로에 있거나 갈등에 봉착하거나 삶의 난관에 부딪혔을 때 목소리를 높이곤 한다. 그러나 이때 자아비평가는 내편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가혹한 자기 부정과 비관적인 말을 쏟아내며 스스로를 가혹한 채찍질을 해댄다. 이런 냉혹한 자기비판에 휘둘리다보면 좌절과 부정이라는 현실에 굴복하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신념이나 자신이 바로 서 있지 않으면 결국 자아 비평에 빠져 자신의 삶을 부정하여 더욱 고통에 빠지는 것이 인생의 법칙이다. 그것을 이겨내려면 다른 사람과의 비교와 내면의 자기비판에 귀기울이지 말며 오직 어제의 나만을 비교대상으로 삼아야 마음이 병드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기 스스로의 삶에 충실하며 첫 번째 법칙 어깨를 바로 세우고 당당해야 하는 것이 인생의 뼈대처럼 견고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이반 일리치의 삶은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했으며, 그래서 대단히 끔찍한 것이었다,’

 

삶에서 어쩌면 가장 성공한 삶이라 할 수 있었던 판사 이반의 삶을 왜 톨스토이는 단순하고 평범해서 끔찍한 삶이라 하였을까. 여기에 피터슨이 정답을 말해준다. 아무 문제없이 잘 사는 사람은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이라 한다. 모두에게 미소를 짓고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해 본 적은 없으며 부당한 일을 당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으며 자기 생각을 표현할 줄도 모르고 물고기 떼의 작은 존재처럼 살아가는 사람은 이미 노예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한 번도 타인에게 솔직한 적이 없는 사람은 자신 스스로에게도 솔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단순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던 이반 일리치의 삶은 그래서 끔찍하다 표현된다. 이반은 귀족으로 가장 순탄한 삶을 살았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자신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진실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진짜 모습조차도 알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자신에게 진실한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고 새로운 도전에 목말라하며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인생의 법칙 7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라가 왜 중요한지를 새삼 떠올려보게 된다.

 

 

미친 사람만이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한다.”

 

 

사상누각이라는 말이 있다. 모래 위에 지은 아름다운 집이라는 뜻인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우리의 외관은 사상누각처럼 포장될 수밖에 없다. 인생 제 1법칙에서 뇌에서 스스로를 상부 구조에 위치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들라는 말은 정신적인 면이 곧 인생을 지배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 스스로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내면에서의 변화로부터 시작된다. 사랑받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며 살아왔는가. 하지만, 그것조차 사상누각이었다. 타인의 욕구에 맞춰주기 위해 시간을 탕진해 왔다는 것을, 그래서 우린 종종 상처받은 아기새처럼 굴었다. 나 스스로를 바로 세우지 않은 채 나 스스로를 먼저 사랑하지 않는다면 인생의 법칙은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한 존재이기 이전에 사랑하는 존재이다. 12가지 인생의 법칙은 라는 존재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시금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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