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작심삼일

기해년이 밝았다. 신년에는 作心작심이라 하여 마음을 새로이 다짐하는 계획을 세우곤 하는데 작심은 보통 3일천하로 끝나곤 한다. 새해에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며 떠오르는 일출을 바라보며 새로운 시작을 향한 희망을 꿈꾸기 마련이다. 그러나, 내 오랜 경험에 비추었을 때 자신의 계획과 목표를 세우며 그것을 실행하려 애쓰는 것보다는 오히려 無心무심이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가짐으로 더 도움이 된다. 삶에 희망이나 목적을 가지면 그것을 이루지 못한 실망으로 자신을 비하하거나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작심 삼일로 스스로를 폄하하기 보다는 무심으로 삶의 온전함을 이루는 것이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 말하는 최고의 삶에 가깝다.

나홀로 등산을 한지 햇수로 8년이 되어간다. 처음 등산을 시작했을 때 산에 오르는 것이 너무 힘이 들어 한 번에 오르지 못하고 중간 중간 쉬어가며 올라갔다. 그런데 산에 잘 오르는 사람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매우 여유롭고 빠른 속도로 올라가곤 했다. 그래서 몇 분들께 여쭈어 보니 산을 오를 때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마음을 비우듯이 어떤 목적이나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의 움직임에 모든 것을 맡기고 걷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다달아 있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항상 정상에 오르기 위한 시간계획과 목표를 채우기 위한 생각에 가득차 시간 안에 오르지 못할 때는 어떤 초조함을 가지고 있었다. 목표한 시간 안에 정상에 이르기 위해 코스를 돌아가기도 하였는데 그것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어 정작 중요한 내 몸의 움직임에는 집중하지 못하였던 것이었다. 삶도 등산과 똑같다. 신년 계획을 세우고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세우지만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초조와 포기로 좋은 삶을 위한 노력을 작심삼일의 형편없는 다짐으로 만들어 버리곤 한다. 신년이라 해서 목표를 갖고 버킷리스트를 습관적으로 만들기보다는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삶, 나에게 집중하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신년을 멋지게 향유하는 방법이다.

철학자 강신주는 다상담에서 이런 말을 했다.
‘지금의 삶을 꿈이 없는 상태로 만드세요. 일체의 꿈도 없이 있는 그대로 현실을 향유하는 수준에 이르면 아무 생각 없이 산 정상에 올라있는 것처럼 삶도 목적 없이 어느 순간 최고의 삶에 올라있을 것입니다. 그냥 비 오면 우산을 펼치듯이 그렇게 가는 것이 삶이예요. 인생은 소요유처럼 목적이 없이 걸어 다니고 목적이 없이 살아가는 거예요.
비록 불행도 찾아오겠지만, 매너리즘에 빠진 삶이 아니라 드라마틱한 삶이 펼쳐질 거예요
위대한 사람들이 삶을 여행에 비유할 때 목적지를 정하고 체크인하고 체크아웃하는 여행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예요. 비도 만날 수 있고요, 멋진 남자도 만날 수 있다고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그래서 내가 어떻게 변할 예측할 수도 없는 거예요. 그 설렘 그 위기 그 긴장을 사랑하는 거죠. 삶이란 원래 그런 드라마틱한 것으로 가득 찬 것이니까요.

새해이지만, 너무 거창한 계획을 세울 필요는 없다. 목표를 세워 작심한 후, 3일 천하로 무너지고 말 삶을 살기보다는 그저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충분히 향유하며 즐길 권리가 있다. 새해에는 그저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밤은 깊어서 눈만 내리어
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 오는 밤도
하루의 일을 끝낸 작업장 부근
촛불도 꺼져가는 어둔 방에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슬픔도 없는 이 슬픔의 세상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눈이 온다

– 정호승 시인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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